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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ff Dec 03. 2024

4. 중년 심리예보 4

'이 나이 먹도록' - 자기 비난

아이가 컵을 깨고 엄마를 돌아본다. 울기 직전이다. 황급히 눈치를 보고 살핀다.

"아이고. 너는 어째 매사에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 암튼 "

아이 안전을 묻지 않는 모질고 무서운 말. 이 말로 고작 컵 하나 깨진 상황은 역전된다. 무심하고 야박한 말, 결과로 과정을 덮어버리는 말에 아이가 살아온 시간, 습관, 마음이 와장창 깨진다. 실수는 이제 몸이 아닌 마음에 새겨진 사건이 된다. 이후로 아이는 더 이상 실수 하지 않았을까? 깨진 컵은 '짠'하고 붙었을까?


어른이 되면 듣기 싫은 심한 말을 피할 수도 있다. 혹은 죄다 주변에 나보다 어리니 말 자체가 종종 사라지기도 한다. 실수를 꾸짖는 말은 사라졌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야 하지 않나? 왜 마음은 아직 팽팽하게 긴장이 되는 거지? 이 나이 먹도록?


평가, 비교, 결과가 버무려진 시간을 살다 보니 남이 아닌 내가 나를 타박한다. 급작스런 외부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방어는 습관이 되었다. 살아야 하니까. 방어를 하는 자는 매 순간 긴장한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먼저 내가 비난을 하고 행동을 꼬투리 잡는다. 똬리를 튼 서슬 퍼런 뱀이 마음속에서 눈에 광기를 품고 맹렬한 독기를 뿜는다. 이런 말들을 쏟아내면서

 ' 어떻게 이 나이에 이것도 못하냐.'

 ' 사람들이 나이 값도 못하게 보는 거 아닌가.'

 ' 내가 체면이 있지. '

 ' 이렇게 행동하면 사람들이 우습게 볼 텐데..'

불혹을 거쳐 지천명으로 들어서면 뭔가 짠하고 마음이 편할 줄 알았는 데 오늘도 '이 나이 먹도록'을 생각하느라 긴장되고 지친다. 개도 밥그릇을 차면 주인을 문다고 하는 데 이 나이 먹고서 그릇에 뭐가 담기든 족족 내면의 목소리는 걷어 차기에 바쁘다. 살아온 세월만큼 그냥 나를 봐줄 수는 없는 걸까.


이런 생각이 어리석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나이에서 오는 짠 밥의 바이브 아니겠나. 들은 것도 많고 본 것도 많아 서둘러 마음을 피신한다. 조급하게 일을 더 하며 잊기도 하고 더 나를 사랑해 보기 위해 피부과도 예약한다. 불편한 마음을 피하고 싶어서 요리조리 취미도 기웃거리다.

아직 마음속 시커먼 뱀은 똬리를 풀 생각은 없나 보다.

'이 나이를 먹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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