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경전달물질의 포로인가요?

로즈메리 케네디의 편지, 그리고 이른바 ‘우울증’의 과학

by 동동이 할아버지


잊혀진 편지, 그리고 비극의 시작


"아빠, 아빠를 행복하게 해드리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어요. 어떤 식으로든 아빠를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아요. 저를 보러 빨리 와주세요. 매일매일 너무 외로워요."


1934년, 16살의 로즈메리 케네디(Rosemary Kennedy, 1918-2005)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입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여동생이었던 그녀는 약간의 지적 장애와 감정 기복이 있었지만 글을 쓰고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랑스러운 소녀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의학은 그녀의 '다름'을 '질병'으로 규정했습니다. 23살이 되던 해, 그녀는 전두엽 절제술(Lobotomy)이라는 끔찍한 수술을 받습니다. 뇌의 일부를 잘라내어 마음의 병을 고치겠다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의학'의 결정이었죠. 수술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로즈메리는 거의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평생을 요양원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야만의 역사를 보며 혀를 찹니다. "어떻게 뇌를 함부로 건드릴 수 있지?"라고요.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그 야만에서 완전히 벗어났을까요? 오늘날 우리는 뇌를 수술용 칼로 도려내는 대신, '약물'이라는 화학적 칼을 들이대며 여전히 똑같은 믿음을 설파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마음의 고통은 뇌의 기계적 고장 때문"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마음의 병'이라는 거짓말


정신과 의사 토마스 사즈(Thomas Szasz, 1920-2012)는 그의 저서에서 현대 정신의학의 근간을 뒤흔드는 도발적인 선언을 합니다.


정신병은 신체 질병과 같은 '질병'이 아니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는 현대 사회가 삶의 문제나 갈등, 혹은 병을 앓는 척하는 행위(malingering)를 의학적 질병으로 둔갑시켰다고 비판합니다.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사람을 '환자'라고 부르고, 실제 질병을 치료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치료사'라고 칭하는 이 기이한 거래를 그는 "거짓말과 거짓말하기의 기술이자 과학(the art and science of lies and lying)"이라고 불렀습니다. (Szasz, Psychiatry: The Science of Lies, xf.)

우리가 겪는 마음의 고통은 뇌세포의 반란이 아니며, 오히려 치열한 삶의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상처, 그리고 관계의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입니다.




우연히 발견된 ‘기적의 약’


현대 정신의학을 떠받치는 향정신성 약물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1950년대, 제약회사 연구원들은 말라리아와 결핵 치료제, 신 항생제를 개발하다가 우연히 이상한 부작용을 발견했습니다. 환자들의 기분이 좋아지거나 차분해지는 변화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렇게 소라진(Thorazine), 밀타운(Miltown) 같은 1세대 향정신성 약물이 탄생했습니다.

"Yes, We Have Miltown!" 당시 이 광고 문구가 대유행했습니다. 뇌엽절제술 대신 이 약 한 알이면 된다는 거였죠. 저명한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Salvador Dali, 1904-1989)까지 동원한 광고까지 등장했습니다.





우울증은 세로토닌 부족?


"당신의 뇌에는 세로토닌이 부족해요."

너무나 익숙한 이 설명, 과연 과학적 사실일까요?

의학 전문 기자였던 로버트 휘태커는 『전염병의 해부학(Anatomy of an Epidemic)』에서 15년간의 연구 역사를 추적,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1969년, 예일대의 맬컴 바우어즈 교수가 우울증 환자 8명을 연구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세로토닌 대사물질(5-HIAA) 레벨이 '의미 있는 수준'으로 낮지 않았던 겁니다. 2년 후 맥길 대학 연구팀도 우울증 환자와 정상인 사이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찾지 못했습니다.

1974년 다시 바우어즈 교수는 항우울제를 먹어본 적 없는 순수한 우울증 환자들을 연구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죠. 그들의 세로토닌 레벨은 완전히 정상이었거든요.

세로토닌 이론의 유력한 근거였던 레서핀(혈압강하제) 연구도 재검증되었습니다. 이 이론을 처음 주장했던 조셉 쉴드크라우트는, 이 약이 뇌 안의 모노아민들, 즉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도파민 등을 감소시키며, 따라서 이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정규적으로 우울 증세를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펜실베니아 대학의 조셉 멘델스와 알랜 프레이저 교수가 연구문헌을 뒤진 결과, 레서핀을 복용한 고혈압 환자 중 실제로 우울해진 사람은 고작 6%뿐이었습니다. 두 교수는 명확하게 결론 내렸습니다. “뇌의 세로토닌 감소가 그 자체로 우울증을 설명할 수는 없다.”


1975년 스톡홀름의 매리 아스버그 교수가 이 이론의 불씨를 되살리고자 새로운 희망을 제시했지만, 그녀의 데이터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울증 환자의 28%가 낮은 5-HIAA 레벨을 보였고, '정상인'의 25%도 거의 똑같이 낮았습니다. 문제는 그녀가 이 전자의 결과에만 주목했고 후자는 무시했다는 겁니다. 결국, 15년 동안 과학자들을 바쁘게 만들었던 연구에도 불구하고, 세로토닌 부족이 우울증을 일으킨다는 과학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이 털어놓는 진실


노스 웨일즈의 방고르 대학교(Bangor University) 정신의학과 교수이던 데이비드 힐리(David Healy)교수는 2005년 PLOS Medicine에 세로토닌 가설을 비판하는 연구(Lacasse JR, Leo J (2005) Serotonin and Depression: A Disconnect between the Advertisements and the Scientific Literature. PLOS Medicine 2(12): e392. https://doi.org/10.1371/journal.pmed.0020392)가 발표되었을 때, 공식 논평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울증에 관한 세로토닌 이론은 정신이상에 관한 자위행위 이론과 비슷하다. 둘 다 반박 증거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중요한 건 '이 이론이 맞는가?'가 아니다. '누구의 이익을 위해 이런 이론이 널리 퍼지고 있는가?'이다.”


또 DSM-IV(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의 주요 편집자였던 앨런 프랜시스는 2014년 자신의 책 『정신의학적 진단의 핵심』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현재 정신의학에는 치매를 제외하고는 생물학적인 검증 방법이 없다. ... 정신과적 진단은 완전히 주관적인 판단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른바 ‘정신의학 진단의 성경(=DSM)’ 만들기를 주도했던 사람이 스스로 그 한계를 인정한 겁니다.




약 vs 운동, 놀라운 실험 결과


듀크 대학의 제임스 블루멘탈 연구팀은 우울증 환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관찰했습니다. 약물로만 치료를 받은 환자들, 약물+운동으로 치료 받은 환자들, 운동 치료만 받은 환자들.

4개월 후 세 그룹 모두 비슷하게 좋아졌습니다. 약이 특별히 더 효과적이지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6개월 후 추적 조사에서는 운동만 한 그룹의 재발률이 가장 낮았고, 약물을 복용한 그룹은 재발률이 더 높았습니다.


(Robert Whitaker, Anatomy of an Epidemic에서 재인용)




“But I'm not a king.”


https://youtu.be/Zihdr36WVi4?si=yP85mDPjNKHaCgma

유튜브에서 클릭하세요.


브라운 대학 의대의 월터 브라운 교수가 CBS 인터뷰에서 한 말을 들어볼까요?


"지난 10년간 항우울제 처방이 엄청나게 늘었어요.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경증 우울증 환자들에 대한 처방이 급증했다는 거죠. 이 사람들은 약으로부터 거의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합니다."

진행자가 묻습니다.

"항우울제는 세로토닌 부족을 치료한다는 이론에 기반한 거 아닌가요?"

브라운 교수가 답합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제 그 이론이 지나친 단순화이며, 아마도 틀렸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럼 항우울제의 기본 이론 자체가 잘못된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이 인터뷰를 보면 더 기가 막힌 건 FDA의 승인 기준입니다.

약이 위약(가짜 약)보다 효과적이라는 걸 단 두 번의 임상시험에서만 보여주면 통과된답니다. 10번 실패해도 상관없고, 2번만 성공하면 승인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세요?"하고 진행자가 묻습니다.

그러자 브라운 교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합니다.

"제가 왕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 저는 왕이 아니죠."




우리 뇌는 스스로 치유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캐나다의 철학자 피터 라베(Peter Raabe) 교수가 10여 년 전 제게 보낸 메일에서 주장한 내용인데 제가 보기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설명 같습니다.


“삶의 어려운 상황이 정신적 고통을 일으키고, 그게 뇌의 화학적 변화로 이어지는 건 맞아요. 하지만 신경학 연구를 보면, 이 변화는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삶의 상황이 나아지면 뇌는 자연스럽게 정상적인 균형으로 돌아가요. ... 문제는 약물을 투여하면 뇌가 그 약에 익숙해진다는 겁니다. 약의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스트레스 화학물질을 더 많이 만들어내죠. 그래서 약을 끊으면 갑자기 화학물질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뇌가 비정상 상태가 돼요. 그러니 '정상'으로 돌아가려면 계속 약을 먹어야 하는 거예요. ... 이것이 역설입니다. 비정상성은 정신질환 때문이 아니라 약물 복용 때문에 생기는 거예요. ... 대화 치료는 다른 접근을 합니다. 약으로 증상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일으키는 삶의 문제를 함께 들여다보는 거죠. 문제는 삶에 있지 뇌의 화학물질에 있는 게 아니니까요. 삶이 변하고, 이해가 깊어지고, 관계가 회복되면 뇌도 자연스럽게 균형을 되찾습니다.”



약물인가, 삶의 회복인가?


물론 약물이 당장의 증상을 무뎌지게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진정한 치유로 인정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듀크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 치료 6개월 후의 상태를 비교했을 때 운동 치료만 받은 그룹(재발률 8%)이 약물(Zoloft) 치료만 받은 그룹(재발률 38%)보다 훨씬 낮은 재발률을 보였습니다.

이는 라베 교수의 주장, 즉 약물이 장기적으로 뇌의 항상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 뇌는 외부에서 들어온 약물에 대항해 반작용을 일으키는데, 약을 끊으면 억눌렸던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이 요동치며 더 큰 비정상 상태를 초래할 수 있겠죠. 그 결과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 평생 약에 의존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빠지게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의 감정을 신경전달물질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집중이 안 돼? 도파민 부족이야.”


“기분이 안 좋아? 세로토닌 탓이야.”


하지만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정말 신경전달물질의 포로에 불과한 존재일까요?"


로즈메리 케네디의 뇌를 잘라낸 칼날이나, 오늘날 우리의 감정을 조절하려는 알약이나, 그 바탕에 깔린 생각은 같아 보입니다. 인간의 마음을 기계 부품처럼 다루려는 오만함 아닐까요?

당신의 우울함은 뇌세포의 반란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삶이 당신에게 보내는, "지금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간절한 신호입니다.

80년간의 연구에도 과학자들은 정신질환의 명확한 생물학적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 한 알로 신호를 꺼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삶의 문제들을 직시하고,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몸을 움직여 건강한 삶의 감각을 되찾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정말 원하는 것은,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일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일 테니까요.




이 글은 정신의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으며, 그 내용은 주류 의학계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현재 정신건강 문제로 고통 받고 있다면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의학적 조언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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