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는 누가 지운거야?
#본격 직장·가족 판타지 소설
“좋은 아침! 타 대리!”
“네, 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팀장님 오셨어요...?”
“나 과장, 어제 얘기한 거 마무리됐어?”
“네... 한다고는 했는데, 한 번 봐주시겠어요?”
“보내봐.”
“저기... 출력해서 가져가까요?”
“나 과장, 장사 한두 번 해? 요즘 시대에 무슨 종이 출력물이야? 시대에 뒤떨어지게. 메신저로 보내.”
“네...”
나 과장은 메신저 창을 열고 팀장 이름을 더블 클릭했다. 보고서 파일을 첨부하고, 보내기 아이콘을 누르기 전 잠시 멈췄다. 혹시 몰라 다시 한번 파일을 열어 확인해 보았다.
'아, 젠장할... 마침표 하나 빠졌잖아. 왜 볼 때마다 오타가 나오냐?'
“야, 안 보내?”
“앗, 네네. 지금 바로 보냅니다.”
“빨리빨리 하자~”
결국 마침표 하나를 찍지 못한 채,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아, 마침표 하나... 그걸 못 했네. 젠장할, 진짜 뭐 하나 되는 게 없냐. 휴우—'
보고서를 보낸 나 과장은 초점 없는 눈으로 회사 업무 포털을 바라보았다. 유명 연예인의 가십 기사를 클릭했다가, 이내 창을 닫았다. 수신함 ‘0’의 업무 메일함을 들락날락거렸다. 휴대폰의 카톡을 열어보았지만, 여전히 새로운 메시지는 없었다. 사각형 모니터 안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마우스 화살표만이 무한 뫼비우스의 띠를 그리듯 빙글빙글 돌았다.
까탈스러운 팀장이 마침표 빠진 보고서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속절없는 팀장의 마우스만이 딸깍, 딸깍, 드르륵, 드르륵 거리며 소리를 냈다.
“하아......”
팀장의 작지만 깊은 탄식에도 나 과장의 작은 가슴이 철컹 내려앉았다.
'아, 그놈의 마침표...'
“나 과장, 일루 와봐.”
“네....”
“의자 가지고 여기 앉아봐. 오늘 본부장님한테 보고하는 거 알고 있지? 어디 보자... 하아... 야, 줄 간격 손댔냐? 글자 간격도? 줄 간격이랑 글자 간격은 그냥 기본에 맞추라고. 리고 표 안에 글씨체는 이게 뭐냐? 본문이랑 똑같이 해야지. 그리고 여기, 마침표 하나 빠졌잖아. 내가 언제까지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봐야 해? 다시 고쳐 와.”
“네... 죄송합니다.”
'아... 마침표 하나만 찍었어도... 이 정도로 화내진 않았을 텐데... 아휴, 정말 나 자신이 답답하다. 답답해.'
“이따 10시에 본부장님 보고 있으니까, 그전까지 빨리 하자.”
“네, 팀장님. 메신저로 다시 보낼게요.”
“왜 메신저로 보내? 본부장님한테는 출력물로 보고해야지.”
“아니, 한 번 더 검토하시라고...”
“야, 너 과장 몇 년 찬데, 내가 몇 번씩이나 검토해야 돼? 그 정도 보면 됐어. 그냥 들고 들어가.”
— 똑똑똑.
“본부장님, 어제 말씀하신 보고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게 벌써 됐어? 뭐, 다음 주까지 해도 됐는데. 어젯밤에 고생 좀 했겠네.”
“아휴~ 본부장님이 시킨 건 바로바로 해야죠. 사실 어제 잠 한숨도 못 잤습니다.”
“아이고, 김 팀장 고생이 많았구먼. 그래, 한 번 줘봐.”
출력물을 대충 후루룩 훑어보던 본부장은 잠시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말했다.
“음... 수고는 했는데... 김 팀장, 저번에도 한 번 얘기한 것 같은데, 중요한 부분은 눈에 띄게 색깔 좀 넣으랬잖아. 시안성 좀 살려. 그리고 보고서에 누가 화살표를 넣어? 중요한 부분은 박스로 처리하라니까. 아,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문단 정리는 안 하냐? 줄 간격이랑 글자 간격 조정은 기본인 거 몰라?”
“나 과장! 아까 내가 얘기한 거 안 고쳤어? 보고서를 이딴 식으로 쓸 거야? 도대체 언제쯤 정신 차릴래?”
“아니, 팀장이... 고치라고 해서...”
“본부장님, 죄송합니다. 바로 고쳐서 다시 올리겠습니다.”
“아니, 어제 밤새 고생은 했는데, 기본적인 건 지켜야지. 급한 건 아니니까 충분히 수정해서 다시 가져와. 수고했어.”
“넵, 본부장님. 확실히 해서 다시 올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마지막에 마침표 하나 빠졌더라.”
“네...? 아... 네.”
김 팀장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결재판을 낀 나 과장과 함께 본부장실을 나왔다.
“본부장님 얘기 들었지? 나도 오늘은 더 이상 힘들다. 나 과장아... 그냥 내가 마무리 지을 테니까 대충 해서 보내.”
“네... 그러면 이거 언제까지...”
“야, 안 급하다잖아. 알아서 보내.”
“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왜 마침표가 빠졌던 거지? 처음엔 급해서 그랬다 쳐. 하지만 팀장이 말했을 땐 분명히 고쳤다고. 그런데 왜, 왜 또 빠졌던 걸까? 저장 과정에서 문제라도 생겼나? 출력할 때, 최종 버전이 잘못 나갔던 걸까?'
나 과장은 본부장의 지적이 적힌 출력본을 책상 위에 소중히 올려두고 털썩 주저앉았다. 파티션 너머에서 김 팀장은 탁상 거울을 보며 코털을 뽑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 과장의 속이 끓어올랐다.
'전부 팀장이 시켜서 고쳤는데, 이런 개 같은 경우가...'
팀장의 커다란 콧구멍에 손에 쥔 모나미 볼펜을 쑤셔 넣고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여기저기서 나 과장 나 과장 난리들이었다.
“나 과장님, 재정팀에서 전화 왔어요. 급하다네요!”
“나 과장, 어제 요청한 자료 다 했어? 오전까지 부탁할게.”
나 과장은 수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도저히 솟구치는 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 따르르릉.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나 과장은 수화기를 들고 외쳤다.
— 야! 이 자식들아! 나 좀 그만 괴롭혀! 진짜 거지 같은 회사 놈들아!
하지만 그 외침은 울리지 않았다. 표현되지 않았다. 아무리 소리치려 해도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메어 있는 목구멍 사이로 새어 나온 건,
“네네... 지원팀 나 과장입니다... 네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나 과장의 업무 수첩엔 완료되지 못한 해야 할 일들이 쌓이고 쌓여 허공을 맴돌았다. 동시에 그것들은 그의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며, 둔탁하게 머리를 때렸다. 어느 하나라도 끄집어내어, 업무의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그것이 직장인의 기본 수칙임을 나 과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늘도 야근하냐? 아니, 너무 뽕 뽑으려는 거 아니야?”
“아까 말씀하신 보고서 마무리하고 가려고요.”
“그거 아까 본부장님이 여유 있게 하라고 했잖아. 굳이 오늘 야근 안 해도 되지 않냐? 나 과장아, 나한테는 괜찮아. 내가 어디 네 처지 모를까 봐 그래?”
— 아니요, 팀장님. 제가 뭐 그깟 몇만 원 벌자고 오늘 같은 날 야근을 하겠습니까! 저도 하기 싫다고요! 저도 집에 가서 쉬고 싶어요! 이딴 회사에서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다고요!
그러나 목 끝까지 차오른 속마음은 차마 나오지 못했다.
나 과장은 배시시 웃으며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헤헤... 뭐, 겸사겸사 야근하는 거죠. 팀장님, 일단 본부장님 보고서는 마무리 지으려고요.”
“할 거면 너무 티 나게는 하지 마. 알지?”
“네, 팀장님...”
어두컴컴한 사무실 안, 나 과장의 모니터엔 보고서 기안문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껌뻑이는 커서만 멍하니 바라봤다. 보고서 마지막 '끝'이라는 단어 뒤에 마우스를 가져가 천천히, 조심스럽게 키보드 위 마침표를 눌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