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못 가는 놈

공동체와 개인의 사이

by 폭풍속 부푼돛

#본격 K-직장·가족 판타지 소설



[이전화]13화 팀장님 옆자리



“나 과장님, 아까 연우 씨랑 무슨 얘기하셨어요?”

타 과장이 툭 던진 말에 나 과장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 오늘 저녁에 부모님이랑 선약이 있나 봐. 내일 부산 내려가신다고….”

“부산 말고 마산요.”

“아, 그래 마산. 뭐 부모님과의 마지막 날이니까 회식 빠질 수도 있지. 그런데 나는 말이야….”

“아니, 그 얘기는 안 해요?”

“뭔 얘기?”

“음….”

“뭔데? 얘기해 봐.”

나 과장의 재촉에 타 과장이 주변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아니, 이게 좀 개인적인 일이라….”

“그래도 내가 연우 씨 직속상관인데 개인 신상 정도는 알 권리가 있지 않아?”

“네, 알겠어요. 그게 말이죠…. 연우 씨 부모님들 말이에요. 이번에 서울 올라오신 이유가 좀 안 좋은 것 같아요.”

“무슨 말이야?”

“아버님이 지병이 있으셔서 마산에서 서울까지 정기적으로 통원 치료를 다니셨나 봐요. 그런데 상태가 너무 악화돼서, 이젠 병원에서도 더 이상 올 필요가 없다고 했대요. 그래서 내일 퇴원하시고 본가에 내려가신다네요.”

“어디가 그래 안 좋으시대?”

“그거까지는 모르겠는데 지병이 꽤 악화 됐나 봐요.”

“그래서 오늘 회식 못 간다고 한 거였구나. 아휴, 그것 참…. 팀장한테는 얘기했나? 아까 기회 되면 말하라고 했는데.”

“팀장 성격 아시잖아요. 쉽게 말 못 하죠.”

“타 과장, 네가 말해봐. 너 팀장이랑 친하잖아.”

“말도 마십시오. 친하긴요. 그냥 앞에서 알랑방구만 뀌고 있는 거지, 전 못 해요.”

“에휴, 그놈의 회식이 뭔지….”

“팀장한테 회식이 중요한 게 아니죠. 그냥 자기 하라는 대로 안 하면 꿍해가지고 계속 괴롭히니까, 눈치 있는 놈이면 입 닫는 거죠.”

“지가 무슨 왕이야? 제 맘대로 안 한다고 족치고….”

“나 과장님, 이번 기회에 팀장한테 시원하게 한 번 뱉어주십시오.”

“야, 미쳤냐?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 그나저나 연우는 어쩌냐….”

나 과장은 카페 테이블 위에 놓인 짙은 곤색 머그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이모션 커피'의 이방인이 그의 몸과 뇌, 마음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나 과장은 흠칫 놀랐다. 커피의 입자들이 하나하나 세포가 되어 감각을 일깨웠다. 머릿속은 수정처럼 맑아졌고, 가슴속은 정체 모를 뜨거운 감정으로 벅차올랐다. 이 카페만 다녀오면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 만큼 변한다는 사실이 낯설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니, 이제 나 과장에게 이 커피는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마약과도 같았다.



오후 1시, 업무 시작을 알리는 음악 소리와 함께 김 팀장의 목소리가 사무실을 채웠다.

“타 과장! 오늘 회식 장소 정했어?”

타 과장이 즉각 반응했다.

“네, 팀장님! 사거리 앞 삼겹살집입니다. 1차 하시고 2차로 생맥주 시원하게 가시죠.”

“그래. 오늘 빠지는 인원 없지?”

“네… 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대답 소리가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가축들의 울음소리 같았다.

“야, 대답 소리가 왜 이래? 다들 가기 싫어?”

사무실에 정적이 감돌았다. 타 과장이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수습에 나섰다.

“아닙니다, 팀장님! 다들 오겹살이랑 껍데기에 발삼 먹을 생각에 설레서 그렇죠.”

“그래? 근데 반응들이 왜 이렇게 뜨뜻미지근해? 가기 싫은 사람은 안 가도 돼. 요즘 세상에 누가 강요해? 솔직히 나도 가기 싫어. 나도 본부장님 비위 맞추기 힘들어. 오늘 우리 아들 생일인데도 팀 각별히 생각해 주시는 본부장님 때문에 시간 내는 거라고. 각자 사정 있는 거 나도 다 알지. 하지만 사회생활이 뭐야? 공동체가 있으니까 개인이 있는 거라고. 개인도 중요하지만 공동체를 위해 개인을 조금은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안 그래, 타 과장? 나만 꼰대 같은 소리 하는 건 아니잖아?”


나 과장은 무선 이어폰을 낀 채 앉아 있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협주곡으로 오후 업무를 위한 평정심을 찾으려 했지만, 팀장의 날카로운 주파수는 이어폰을 뚫고 들어왔다. 나 과장은 고개를 돌려 열변을 토하는 팀장을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공동체와 개인이라… 훗.”

나 과장의 입꼬리가 서쪽 하늘의 그믐달처럼 비스듬히 올라갔다.


“팀장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조직 귀한 줄을 모르죠.”

타 과장의 맞장구에 팀장이 더욱 기세를 올렸다.

“그렇지? 내가 무조건적인 희생을 바라는 게 아냐.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고 친목이자 화합이라고. 한 명이라도 빠지면 의미가 없지. 김 주임, 오늘 너만 오케이 하면 전원 참석이다. 갈 수 있지?”

연우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네, 팀장님…. 아까 부모님과 통화했습니다. 오늘 좀 늦겠다고요….”

“야, 늦는 게 뭐야? 오늘 아주 끝장을 봐야지! 내가 오늘 너 책임진다니까?”

“아… 팀장님, 그래도 부모님이 내일 내려가셔서….”

“야! 오늘 하루 안 들어간다고 뭐가 달라져? 내가 말했지, 절충이 필요하다고 했잖아. 그 정도는 해줘야지. 아니면 내가 너희 부모님한테 직접 전화하랴?”

연우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니에요 팀장님. 제가 부모님한테 전화하겠습니다.”

지원 1팀의 말석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연우를 보며, 나 과장은 조용히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탁' 소리와 함께 이어폰 케이스를 닫고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섰다.

“연우 씨.”

“네? 나 과장님?”

“오늘 그냥 집에 들어가요.”

사무실의 모든 시선이 나 과장에게 꽂혔다.

“회식 가지 말고, 지금 당장 집에 가라고요.”

“아니에요 과장님, 전 괜찮아요…. 회식에 참석해도 괜찮아요.”

“내가 오늘 연우 씨 사정 들었어요. 그냥 들어가세요.”

김 팀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아니… 나 과장…. 이 사람아,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

“내 말 안 들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말 좀 해보라고!”

“팀장님, 연우 씨는 오늘 회식에 참석하기 힘들 것 같아서 제가 그냥 집에 가라고 했습니다.”

“김 주임이 간다는데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팀장님, 연우 씨 상황은 혹시 알고 계시나요?”

“무슨 상황? 아니, 사정이 있으면 말을 해야지! 사정이 있다고!”

연우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병원에서 짐을 싸고 있을 부모님 얼굴이 떠올라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병원에서 긴 시간을 보내신 두 분의 커다란 캐리어가 생각났다. 누가 하나 도와주지 못하는 마음에, 그리고 자신을 위해 방패를 자처한 나 과장에게 미안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 사정이 있다고 쳐! 그렇다고 네가 이렇게 나오면 안 되지!”

나 과장이 팀장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담담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팀장님. 저는 지금 팀장님이 팀원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니, 개인이니 복잡한 건 모르겠고요. 우열 관계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 전 그게 폭력이라고 봅니다.”

사무실이 얼어붙었다.

“이 사람아, 당신 미쳤어?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내가 뭘 강요했다고 그래! 팀장으로서 이 정도 말도 못 해? 네가 뭔데 지금 이러는 거냐고!”

타 과장이 사색이 되어 끼어들었다.

“아, 팀장님! 진정하십시오. 나 과장이 요즘 좀 예민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팀장님이 좀 봐주세요.”

“아니, 타 과장! 네가 봐도 이건 선 넘은 거 아니냐고? 지가 차장 못 단 게 나 때문이야, 뭐야? 그래도 내가 지 생각해서 얼마나 물밑 작업을 한 줄 알고 이러는 거냐고!”

“그러니까요. 나 과장이 잠시 미친 것 같네요. 팀장님이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이러면 안 되죠. 암요, 암요.”

타 과장은 나 과장 대신 김 팀장에게 조아리며 상황을 모면하려 애달프게 매달렸다. 그리고 나 과장을 흘겨보며 사과의 눈치를 재촉했다. 나 과장은 잠시 침묵하더니, 담담히 입을 열었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타 과장 말대로 제가 요즘 예민해져서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나 과장! 아무리 그래도 네가 나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내가 널 얼마나 신경 썼는데….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평소답지 않게?”

“그러게요. 제가 잠시 예민해졌나 봅니다. 사과드립니다.”

“아이고, 나 과장 됐고. 타 과장! 오늘 회식 못 가는 사람 다시 정리해 봐. 진짜로 갈 수 있는 사람, 아니 진짜로 가고 싶은 사람만 추려서 다시 예약해.”

“그래도 오늘 다들 참석해야죠팀장님…"

“야! 타 과장! 분위기 파악 안 돼? 아까 김 주임도 사정이 있다면서. 다시 정리하라고! 이 사람아!”

“아… 네!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연우는 떨리는 손을 감추려 주먹을 꽉 쥐었다. 그동안 회사는 연우에게 ‘개인이 지워져야 하는 곳’이었다. 마산에서 올라온 부모님이 병원 복도에서 차가운 도시락을 드실 때도, 아버지가 마지막 통보를 받고 망연자실해 계실 때도 연우는 모니터 앞에서 ‘넵’이라는 짧은 대답 뒤에 자신을 숨겼다. 조직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아래서 자신의 슬픔 따위는 모래알보다 가벼운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지금, 나 과장이 그 거대한 톱니바퀴 사이에 제 몸을 끼워 넣어 기계를 멈춰 세우고 있었다. 연우는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물었다. 눈물 한 방울이 툭, 결재판 위로 떨어졌다.


사무실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 과장 역시 자리에 앉아 머리를 책상 위로 파묻었다. 갑작스러운 두통이 머리를 때렸다.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싸 안으며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지만, 통증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였다. 그의 콧구멍에서 인중으로 타고 미지근한 선혈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멈추지 않았다.

“어? 나 과장님! 피, 피나요! 피!”

타 과장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연우가 소스라치게 놀라 휴지를 들고 달려왔다. 나 과장의 흰 셔츠에 붉은 꽃이 피어났다.

“과장님, 일단 고개 뒤로 젖히세요! 연우 씨, 휴지 좀 더 가져와! 이것 좀 도와줘!”

연우는 떨리는 손으로 나 과장의 코를 지혈하며 울먹였다.

“과장님… 죄송해요. 저 때문에….”

나 과장은 피 묻은 휴지로 코를 틀어막은 채 연우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연우 씨. 옷 버리니까 비켜요. 미안해요, 다들 놀라게 해서.”

김 팀장이 멀찍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나 과장, 진짜 괜찮은 거야?”

“네, 팀장님. 잠시 몸이 이상했는데 지금은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너야말로 오늘 회식 오지 말고 그냥 들어가서 쉬어.”

“아니에요, 팀장님. 괜찮다니까요."

"진짜 괜찮아?"

"오늘 삼겹살에 발삼, 한잔하셔야죠!”

나 과장은 뻘게진 휴지로 코를 틀어막은 채, 팀장을 향해 묘한 눈빛을 반짝였다. 아까의 증오는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그 눈빛은 마치 ‘그’가 ‘그’가 된 듯한 키득거리는 사춘기 소년의 눈빛이었다. 그리고 나 과장은 다시, 무선 이어폰을 귀에다 꽂았다.

일요일 연재
이전 13화팀장님 옆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