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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폭풍속 부푼돛 Oct 03. 2021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

돌고 돌아온 '진짜 나'를 찾는 방법

시피엔스, 호모데우스에 이은 유발 하라리의 세 번째 책이다. 사피엔스나 호모데우스를 읽으면서 가졌던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된다. 그냥 한 권의 책으로 보는 게 맞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하 21가지 제언)을 보지 않고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를 논한다는 거 자체가 넌센스다. 그러니 이전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를 읽고 느꼈던 반감과 의문은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과거(사피엔스)와 미래(호모데우스)라는 거대한 시간적 서사에서 인간을 중심으로 하라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지금 여기 21가지 제언에 있다.




호모데우스에서 얘기하는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유발 하라리는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하나는 사피엔스에서 얘기한 허구와 실체이며 다른 하나는 호모데우스에서 얘기한 알고리즘과 자아이다.


먼 옛날 까마득한 과거에서부터 사피엔스는 허구를 중심으로 다른 사람과 협력하며 그것을 위해 사회를 구축하고 유지한다. 그것만이 세상의 전부인 거 마냥 찬양하며 오직 허구만을 위해 살아간다. 그 허구의 대표적인 세 가지가 돈, 국가, 종교이다. 민족의 순수성과 종교적 영원을 외치며 개인의 희생을 강요한다. 이러한 실재하지 않는 허구적 가치는 결국 개인의 고통을 무참히 밟아버린다. 하지만 고통은 벌레 밟듯이 단순한 어떤 것이 아니다. 하라리는 고통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실체이며 허구와 실체를 구분 짓는 중요한 감각이라 말하였다. 허구는 고통을 느낄 수 없으며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만이 실체이다. 아니 무언가가 느끼는 고통이 실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듯하다. 그만큼 고통이라는 것은 중요하고 소중히 다뤄야 하는 감각일 것이다. 고통을 회피하려 한다면 실체라는 존재를 부정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하라리는 허구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다. 하지만 허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허구만이 순수하고 영원한 거처럼 찬양하는 인류를 비판한 것이리라. 실체의 희생이 당연시하게 강요하는 사회를 비판한 것이리라. 무언가의 희생이 요구되는 관계는 지속 불가능하다. 허구와 실체의 관계에서 균형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럼 고통이라는 실체는 진짜일까? 고통을 느끼는 이 순간만큼은 충분히 진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이라는 감각은 호모데우스 관점에서 보면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결과에 불과하다. 뇌에 있는 화학적 반응의 결과라는 점이다. 이런 것을 실체라고, 진짜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진짜 나'는 진정 알고리즘의 결과물인 것인가?그렇다면 '진짜 나'는 없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알고리즘대한 반감을 증식시켰다. 결국 호모데우스에서 졌던 불편함에 대한 마음을 하라리는 친절하게 풀어준다. 호모데우스에서 묘사한 미래의 모습을 고지 곧대로  믿는 나를 순진하다고 얘기한다.

'진짜 나'는 분명히 있다. '진짜 '고리즘괴 나를 분리할 때만 찾을 수 있다. 알고리즘, 즉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지 말고 그것과 분리시키면 진정한 나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책 말미에 하라리는 진정한 나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으로 명상을 제시한다. 정의되지 않고,  정의되지 않아 더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친절히 얘기해주고 있다.




수십만 년 시간 안에 있는 사피엔스의 모든 것과 앞으로 언젠가 나타날 호모데우스의 모든 것이 허구와 실체, 알고리즘과 자아라는 거대한 두 가지의 관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통찰을 깨닫기 위해 정말 많이 돌아 돌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 흔적 중의 하나가 내가 작성한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 감상문일 것이다. 이제 와서 그것들을 생각하니 얼굴이 달아오른 건 어쩔 수 없다.

 

누군가는 21가지 제언이 주는 메시지가 명상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뻔한 메시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를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함과 질문들 심지어 저자에 대한 반감 그것들이 있었기에 21가지  제언에서 주는 메시지는 매우 극적이었고 그 무엇보다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라리의 세 권의 책을 다 읽고 나침반이 생각났다. 나침반의 침은 항상 흔들리고 주저하는 거처럼 보인다. 그래서 미세한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자침의 떨림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항상 정확한 북쪽을 제시한다. 미세한 떨림은 모험을 앞두고 있는 탐험가의 마음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클수록 탐험가의 떨림은 더해간다. 그 떨림이 모험의 진정한 설렘이라 할 수 있다. 큰 설렘을 안겨준 훌륭한 나침반을 찾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다. 이제는 이 나침반을 가지고 돛을 올릴 차례다. 이번 항해의 목적은 그 흔하디 흔한 '나를 찾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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