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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폭풍속 부푼돛 Nov 26. 2021

다산의 마지막 습관, 조윤제

소학과 한문책

중학교 시절, 한문책이 생각났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는 한문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일주일 한 시간, 시간은 잠자는 시간이었다. 그 시절 아주 우아했던 걸로 기억이 나는 선생님은 강의에만 열중하셨다. 일절 학생들을 터치하지 않았다. 중요도가 높았던 국어, 영어, 수학, 과학, 그나마 학생들의 관심도가 높았던 예체능 과목들에 치여 그야말로 그 누구의 관심 1도 받지 못한 비운의 과목, 한문. 더불어 나의 시험 평균 깎아 먹었던 과목, 20문제 중 4문제만 맞추어 충격을 주었던 그 과목의 교과서가 계속 생각이 났다.




<다산의 마지막 습관>의 주제는 소학이다. 소학은 성리학집대성한 책으로 <논어>, <맹자> 등 고전에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추려 조선시대 유학을 처음 공부하는 입문서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 책은 소위 '공자 왈, 맹자 왈'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아주 재미없고 지루한 책이다. 오죽했으면 25년 전 한문 교과서가 생각났을까. 유년시절 책에서 또는 어른들에게 누누이 보고 들었던 '인, 의, 예, 지, 충, 효, 선, 겸손' 등 좋은 글귀 종합세트이다. 살아오면서 무나 많이 들어온 터라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이제는 고리타분하다는 생각과 시대에 뒤처지는 낡은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책을 읽으니 이것이야 말로 '소귀에 경 읽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챕터 한 챕터 좋은 말들의 향연이다.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통찰이다. 동양철학의 정수만 뽑아왔으니까 당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 띵~ 무릎팍!이 되어야 하는데 소가 되새김 질을 하듯 꾸역꾸역 책장만 넘길 뿐이다. 마치 내가 소가 된 느낌이었다. 이 책이 나를 소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공감'이 힘들었다. 글을 쓴 사람과 읽는 사람과의 교감이 없었다고나 할까. 이건 순전히 읽는 사람의 내공의 부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나를 소로 만든 것이 아니라 소가 책을 읽으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공감하기 위해서는 느껴야 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경험을 해야 한다. 건강을 잃어본 사람만이 나 자신(몸)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듯이 몸으로 직접 느끼는 것이 가장 확실한 깨달음 이리라. 

경험과 느낌, 즉 감수성의 관계는 확실히 비례 관계라 생각한다. 경험이 많으면 그만큼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고 감수성이 풍부해지면 공감의 능력도 향상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경험을 중요시 여기는 까닭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에게는, 아직 40년이라는 시간은 부족한 모양이다. 공자와 맹자와의 교감과 공감이 이리 힘드니 말이다.

40년을 살아도 이리 힘들진 대 유아를 위한 동화책에서는 '삼강오륜'을 강요하고, 학생들의 교과서에서는 '인의예지'를 강요하니 이제는 한문만 보아도 '지긋지긋하다'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하다.

물론 유년시절 공자, 맹자, 노자의 세상을 아우르는, 순수하고 보편타당한 통찰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매우 멋진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런 공감대가 없는 일방적인 교육은 반발심만 불러올 수도 있다. 내가 그랬던 거처럼 말이다. 경험해보고 느껴본 사람만이 보다 쉽게 깨닫고 자연스럽게 체화되리라 생각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p.25

<대학>에 나오는 구절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문장.  역시 문장을 학교 한문 시간 때 처음으로 보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당시 나는 저녁에 있을 학원 영어 단어시험이 내 하루의 전부였고, 이번 달 기말고사의 평균과 등수가 내 삶의 전부였다. 몸을 닦는 것은 목욕탕에서나 하면 되고 천하를 평정하는 것은 대통령이나 해야 할 일이니 나랑 아무 상관없는 말이라 생각했다. 영어 단어에 울고 웃는 나는 시험 성적 말고는 그 어떤 것도 공감할 수가 없는 중학생이었다. 25년이 지난 지금,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도입부에서 보았던 구절이 다산의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와 함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천하도 아니고 국가도 아니고 가정도 아니라 바로 '신'이라는 사실이다. '수신'이 바로 기본이며 소학의 가르침이라는 내용이다.

가장 가까운 것을 잘 느끼고 보살핀 후 멀리 시선을 돌려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나의 모습인정하고 보살피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결국 ''를 잘 다스린다면 가족에게 충실하결국 ''라는 나라와 더 큰 천하를 평정할 수 있으리라. 천하는 저기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내 안의 천하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연금술사>에서 산티아고가 가혹한 사막을 돌고 돌아 찾았던 보물 자기  발 밑에서 찾았던 것처럼 말이다. 가장 사소한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고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비범한 것이리라.

책에서 계속 얘기하는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것 역시 얼마나 당연하고 타당한 도리인가!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것을 소홀하게 여길 수 있다. 내팽겨쳐진 나의 마음과 몸을 다시 살펴보고 년만년 내 옆에 있어줄 거 같은 가까운 사람들을 다시 살펴보자. 이것이 공자가 얘기하는 '인'이고 ''이며 '충'이자 ''라고 감히 생각한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다산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어쩌면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너무나 단순해서 시시하다고 생각되어 매력적이지 않을 수 도 있다. 확실히 새롭거나 흥미로운 메시지와는 거리가 멀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주목을 끌기에는 충분히 부족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이야기들이 고리타분하고 오래된 것이라고 치부하면 안 될 것이다. 무심코 지나친 돌이 옥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받아들이는 사람경험과 감수성만옥석을 가를 수 있다.


25년 전  중학생은 교실 책상 위에서 졸린 눈을 뜨고 한문 선생님의 상냥한 목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그 목소리는 그저 그런 달콤한 자장가였다. 하지만 25년 전, 자장가라는 사소한 경험은 25년 후, 감수성을 워주는 위대한 씨앗임을 깨닫는다. 책이라는 간접 경험과 함께한 훌륭한 콜라보로써 말이다. 이제는 한문책과 소학이라는 훌륭한 경험이 씨앗이 되어 훗날 또 어떤 경이로움을 선사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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