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Mar 26. 2020

소문의 거리

네모난 화면에서 싸움이 벌어졌어
누구든 상관없어 벌써 너는 낚이셨어
발 없는 말 천리행군으로 지쳤을 것인데
말 없는 넌 뭘 위해 손가락만 바쁘네

"'제약회사' '기재부'라는 공신력 높은 키워드 덕에 이 글은 사실인 양 빠르게 전파됐다. 하지만 이 글은 완전한 가짜 뉴스다. 기획재정부는 "회의 자체가 없었다"고 밝혔으며, 제약회사 190여개가 모인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도 "기재부와 제약사 사장단이 만난 전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카카오톡을 통해 이 글을 접한 직장인 박모(35)씨는 "이런 식으로 퍼지는 글들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불안한 상황이다 보니 일단 정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기재부와 제약회사 사장들이 만났다고 하니 '그럴듯한 일'이라는 생각에 믿음이 갔고, 고작 결론이 '절대 걸리지 말 것'이라고 하니 정부 탓을 하기 좋아 더 빨리 유통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보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데 'XX병원 전문의가 내부적으로 공유한 사안'과 같은 형식의 글은 '나만 모를 뻔했다'는 불안감을 자극하면서 빠르게 유통된다. 또 '불확실한 정보'가 명백한 가짜뉴스와 결합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얼마 전에 올린 <가짜뉴스 바이러스>라는 글에서 언급한 ‘기재부 주관회의’ 내용이 가짜뉴스라는 사실을 명백히 밝힌 기사다. 누군가가 기재부를 가장해서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사람들을 속인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비교적 조악한 수준으로 만들어진 가짜뉴스이긴 하지만 이 정도 수준에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쉽게 낚이는 편이다. <가짜뉴스 바이러스>에서도 설명했다시피, 지금과 같은 시기일수록 편도체가 날뛰어 이성적 사고능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마비되어버리는 ‘편도체 납치(amygdala hijack)’ 현상이 발생하기 딱 좋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기재부 주관회의’ 가짜뉴스는 ‘제약회사’와 ‘기재부’라는 공신력 있는 키워드를 활용해서 더욱 빠르게 전파되었다. 사람들은 권위가 있는 출처에 대해서 비판적 사고를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부회의’와 같은 형식의 가짜뉴스는 ‘나만 모를 뻔했다’는 불안감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해서 많은 사람들이 출처가 분명한지 면밀히 따지지도 않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편도체 납치의 적절한 시기, (가짜) 권위에 대한 호소, ‘나만 모를 뻔했다’는 불안감 이 셋은 사람들을 속이기에 서로 보완적이어서 꽤나 훌륭한 조합이었다.


 사실 이러한 조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하게 보이는 3단 콤보다. 단순히 가짜뉴스나 사이비 종교와 같은 음지에서 악용된다는 것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건강에 대한 불안을 조장해서 검증이 덜 된 영양제들을 의사의 권위를 빌려서 팔게 하는 TV 프로그램들, 학부모를 상대로 아이의 성적 불안을 조장하며 온갖 ‘특강’을 듣게 만드는 학원가, 유권자들을 상대로 온갖 겁을 주고 불안과 공포 정서를 조장하면서 부당하게 정치적인 이득을 얻고자 하는 세력 등을 포함한 합법적인 양지에서도 흔하게 보이는 조합이다.

https://m.news.naver.com/read.nhn?oid=293&aid=0000019242

 우리들은 언제까지 이러한 세력으로부터 생각을 조종당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안타깝지만 이들은 영원히 멸절시킬 수 없다. 적어도 인류 자체가 멸종되지 않는 한 이러한 세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너무나 과도하게 비관적인 전망처럼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이들은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함께 진화해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생명의 역사는 교묘한 무임 승차자들(free riders)과 그것을 알아채고 제지하기 위한 과정의 공진화(coevolution) 역사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무임승차자 ‘바이러스’와 같은 기생 생물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를 조종하고 갈취하려는 바이러스의 변종 기술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우리가 그들의 기술을 알아채고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진화하고, 다시 무임 승차자들의 기술은 새로이 교묘해지고...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서로 함께 진화해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가짜뉴스 바이러스’에 대해서 우리는 마냥 손 놓고 있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것 역시 그렇지 않다. 적어도 그 피해의 정도를 감기 수준으로 완화시킬 수는 있다. 바이러스는 진화의 역사 속에서 끝없는 변종의 과정을 거쳐 우리들을 괴롭혀왔지만 인간 역시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인류는 바이러스와 인간과의 관계를 분석해서 그 일반적인 특성을 분석해서 파악해냈고 그에 따라 적절한 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가짜뉴스와 인간과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해내야 한다. 가짜뉴스 자체는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노리고 있는 인간은 어떠한 심리적 취약점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분석들을 통해서 어떻게 대비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널리 예방접종 하듯이 알리고 그에 따라 제도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갈수록 가짜뉴스가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시대에 이러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교육과 제도적 규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 <이기적 유전자>를 무임 승차자들과 그에 대한 제지의 과정이 일어나는 진화의 역사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그 나름대로 색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 원본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 쓴 적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짜뉴스 바이러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