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May 18. 2021

90년대생들과 나의 어린 시절


 알피의 레모네이드 팔기, 고향 만두, 슈게임, 때부자 같은 미니 게임 종류는 정말 추억이다. 여기다가 동물농장하고 지니키즈하고 야후게임(마법학교 아스티넬 등) 한게임 정도만 추가하면 어느 정도 완성이다.

 매직키드 마수리도 90년대생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판타지 드라마다. 그 이후에 후속으로도 나온 마법전사 미르가온도 추억으로 남아있다. 어린 시절에 마법에 대한 판타지를 나름 자극시켜준 재미난 드라마들이었다.

 대신에 영상 속에 나오는 군것질에 대한 추억은 별로 없다. 지금하고 비슷하게 그때도 군것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과 비교하면 그때는 군것질을 하긴 했었다. 그나마 조금씩 먹었던 것들은 피카츄 돈까스와 쿠우 정도였던 것 같다. 영상에서 설명한 것처럼 내용물보다는 캐릭터로 음식 홍보에 집중했던 시대였다.

 ‘청소년 요금제 R’에 대해서도 딱히 공감이 가지 않는다. 초등학생 때 휴대전화를 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미루고 미루다가 중1 여름쯤에 휴대전화를 사게 되었다. 그때 어린 나이치고는 혼자서 나름 멀리 갈 일이 있었는데 길을 좀 잃어버려서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마비노기 게임어바웃’(일명 마비 어바웃)이라는 게임 전문 웹진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송탄에서 오프라인 정모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동암역에서 송탄역까지는 지금 가기에도 너무 먼 곳이긴 하다.

 그렇게 오래 걸려서 갔는데 하필 지각을 해서 약속 장소에 늦게 도착을 해버렸다. 사람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버렸는지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한참 10분 넘게 고민을 하다가 PC방에 들르기로 했다. 아마도 개인적인 사유로 PC방을 들른 건 그때가 처음인 것 같다. 게임은 집에서 자유롭게 하도록 허용되어있는데 굳이 PC방을 갈 일은 없었다. 지금까지도 PC방을 방문한 횟수는 20번 이내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마저도 수강신청이라거나 차가 끊겨서 저렴하게 밤샘이나 하려고 간 거였다.

 아무튼 PC방에 들러서 바로 마비 어바웃에 접속을 했다. 사이트 전용 채팅방에 들어가서 몇몇 사람들에게 내가 지금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그러더니 그중에서 정모 참석자의 연락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내가 PC방에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얼마 뒤에 나는 구조(?)되었고 다행스럽게 정모 장소로 곧바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나만 혼자 버려진 것 같은 불안함을 느끼게 되어서 힘들었는데 참 다행이었다.

추억이 떠올라서 당시에 저장해둔 네이버 N드라이브(現 네이버 클라우드)를 뒤적거렸는데 다행히도 정모 때 사진이 있었다.

 다행스럽게 정모를 참석해서 노래방도 가고 식당도 가면서 재미나게 즐겼다. 난생 처음으로 이렇게까지 멀리와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저 그런 학교 생활과는 확연히 다른 짜릿한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니 송탄에 사는 분이 생파를 주최해서 온 것이었다. 닉네임은 ‘빙페맛개구리’. 위 사진에 얼핏 비치는 누님이다. 그때는 중3 누나였고 키도 170cm여서 왠지 매력적이고 대단해보였다. 지금은 잘 지내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이때가 그 이후로 여기저기 잘 쏘다녔던 활동적인 경험들의 시발점이었다. 이때만 해도 각양각색의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을 만나고 알게 된 것이 참 즐겁고 흥분됐다. 그중에는 나름 심도 깊은 서브컬쳐 매니아도 있었고, 페미니스트도 있었고, 뒷모습만 보면 여자라고 착각할만큼 긴 머리를 가진 뮤지션 분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나름 친하게 연락하고 지낸 고등학생 형도 있었다. 말하자면 길어지겠지만, 이때쯤의 경험들은 지금 내가 자연스럽게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각자의 가치들을 지켜내는 자유의 소중함을 중요시하게 된 상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다보니 이야기가 잠깐 삼천포로 빠졌다. 그래도 이렇게 가끔 삼천포로 빠져서 헤엄도 쳤다 나오는 재미도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때 멀리까지 갔는데도 모임에 참여하지 못했을 뻔한 경험때문에 비로소 휴대전화를 구입하게 되었다. 그러면 그 이전까지 나는 왜 휴대전화가 없었는가? 딱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준다고 해도 거절했다. 그때도 나름 나만의 고집이 있던 시절이라 단호하게 거절했다.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을 가지게 되면 그것에 집착하게 되고 되려 나를 속박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에도 나는 항상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등에 지고 부담없이 살아가고 싶었던 미니멀리스트였던 것이다.

 아무튼간에 이야기는 ‘청소년 요금제 R’부터 시작해서 돌고돌아 여기까지 오게되었다. 내가 왜 늦게까지도 휴대전화를 구입하지 않았는지, 처음 나간 인터넷 관련 정모는 무엇이었는지, 그것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지금처럼 다양성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하는 내 가치관은 어디서 나오게 되었는지 등등에 대해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간만에 이런저런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아련한 느낌도 든다. 어린이날에 떠올린 어린이 시절의 소중한 추억들이다. 혹자는 중학교 1학년이 무슨 어린이냐고 하겠지만 난 소위 ‘빠른’으로 입학했기 때문에 그때도 아직 초등학생의 나이였다. 그 당시에 경험했던 다이나믹한 추억들이야 이걸 포함해서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너무 길어지기 전에 여기까지만!



* 어린 시절의 다이나믹한 추억을 끄적이다보니 마비노기 ost인 <소년 모험가>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 오케스트라 버전도 있다. 메이플도 그렇고 마비노기 ost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한 공연이 비교적 최근에 있었다. 그런데 원곡은 중후반부터 미쳐 날뛰는 피아노 애드립이 포인트였는데 편곡에서는 빠져서 많이 아쉽긴 했다. 그래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이레흐 언덕을 넘어갈 때의 추억이 웅장하게 미화된 것 같아 기분이 좀 으쓱하기도 하다.

* 안타깝게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입학해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까지도 마비노기를 하는 친구를 만나본 적이 없다. 3년 전쯤에 1명 알게되긴 했지만 그때는 이미 내가 게임을 접은 뒤였다.

작가의 이전글 춤 선생님 커피샵 개업 기념 방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