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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y 16. 2021

춤 선생님 커피샵 개업 기념 방문


 예전에 살사 댄스를 처음 배웠을 때 가르쳐준 춤 선생님께서 <LP Coffee>라는 이름으로 커피샵을 개업하셨다.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평소에 단골처럼 다닌 <애니올드 블루스>의 사장님과 힘을 합쳐서 그 안에 있는 작은 가게처럼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일종의 코너 속의 코너, 즉 샵 인 샵(shop in shop)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아무튼 그래서 간만에 얼굴이나 뵐 겸 목요일에 방문해서 즐거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같은 스승의 날에 포스팅하기에 딱 괜찮은 주제인 것 같긴 하다. 장소도 나름 가깝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인천 2호선으로 두 정거장만 간 뒤에 조금만 걸어가면 나온다. 혹시나 찾아가실 분들을 위해서 정확한 위치를 말하자면, 미추홀보건소 근처에 있는 주안서로 27 '애니올드 블루스'라고 검색하고 오면 된다.


 들어가자마자 시 한 편이 눈에 띄었다. 문정희 시인이 썼다고 하는 <흐름에 대하여>라는 시다. 우리들은 왜 흐르는가? 왜 바다에 가지 못하고 좀비처럼 대중들과 섞여서 산으로 향하는가? 왜 한 번 태어나서 죽는 인생에서 자유와 햇살을 빼앗긴 채 감옥같은 산으로 향하고 마는가? 대강 이런 내용이었던 듯하다. 너무나 뼈저리게 공감이 가는 시구다. 다들 왜 이렇게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아무 맥없이 휘청거리면서 살다가 죽는 인생을 끝내 반복하고야 마는가? 19세기에 니체가 대중들을 보며 들끓었던 감정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아무튼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시 한 편에서부터 사장님의 성향이 확 느껴졌다. 덤으로 "이 공간은 소리(볼륨)를 줄이거나 조정할 수 없습니다"라고 붙인 안내사항도 비슷한 느낌으로 참고할 수 있겠다.


 그렇게 가게를 잠시 빙 둘러보다가 드디어 주문을 했다. 처음에 대추차를 주문하긴 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쌀 누룩 요거트'가 가게의 인기 메뉴라는 사실을 알고 조금 후회하긴 했다. 다음에 올 일이 있을 때 그걸 시켜서 먹긴 해야겠다. 그래도 대추차나 쌍화차같은 한방 계열의 전통차들도 딱 내 취향이기도 해서 맛있게 잘 마셨다. 춤 선생님이신 나디아님께서는 다양한 종류의 차에 관심이 많아왔고 또 잘 만드시는 것 같아서 믿고 마실 수 있는 듯하다. 코시국이라 만나서 오랫동안 춤을 배우거나 출 일이 없었기 때문에 밀린 이야기들도 많이 나누었다. 특히 감정 기복이 극단적으로 심해서 주변 사람들을 괴롭혀온 사람들의 사례를 들며 거품을 물다시피 넌더리를 냈다. 우리 둘 다 그런 사람 때문에 고생깨나 해본 듯하다.



 그러다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와중에 문득 윈터플레이의 <Touche Mon Amour>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아마도 "사랑으로 어루만져주세요"라는 뜻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뜬금없이 이 노래가 왜 떠오르느냐? 살사 교습을 처음 받은 날 들은 연습곡들중에서 이 곡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중에서도 위에서 언급한 윈터플레이의 곡이 인상적이었다. 보컬리스트 혜원의 원숙한 느낌을 가진 음색이 매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쓰다 보니까 실시간으로 전혜빈의 <If>라는 노래도 너무나 좋았던 기억도 덩달아 떠오른다. 오히려 이 곡이 윈터플레이의 곡보다 더 좋았던 것 같다. 초반 도입부며, 후렴이며, 전혜빈의 음색이며, 노랫말이며 참 마음에 들었던 곡이다. 어떤 사람들은 춤출 때 한국어로 된 노래가 나오면 오글거린다고 하던데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춤출 때 분위기 있게 몰입하기 좋은 노랫말들이었다. 특히 실전에서 춤출 때 이 노래가 나오면 중간중간에 포인트를 줄만한 리듬 섹션들이 나오기 때문에 초보자 입장에서도 어떤 춤을 춰야할 지 디자인하기가 편했다. 그야말로 춤출 맛이 나는 좋은 곡이었다.


 아, 쓰다 보니까 정말로 춤추고 싶은 마음에 근질근질하다. 그 시절에 나름 다양한 사람들하고 춤을 추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맛있는 술 마시면서 살사도 추고, 가끔씩 간단하게 바차타도 어깨 너머로 배우면서 따라 추고 했던 기억 말이다. 파트너끼리 서로 마음이 아주 잘 맞아서 즐겁게 잘 추고나면 그것만큼 즐거운 경험도 별로 없었던 듯하다. 나로서도 박자 하나만큼은 흥겹게 잘 맞추는 데 자부심이 있었서 즐거운 기억이 많았다. 지금 추면 예전보다 더욱 잘 추고자 할 자신이 있는데 안타깝기만 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절이 참 그립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코시국에는 주변 사람들 생각해서라도 몸을 좀 사려야겠다는 생각이 커서 어쩔 수가 없다. 그날이 언제 올 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라도 춤 선생 나디아님과 다시금 전혜빈의 <if>와 함께 기쁘게 추억을 회상하며 스텝을 밟을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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