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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n 01. 2021

"성경이라는 악보를 삶을 통해 연주해보도록 하자"


 정말 너무나 안타깝게도 한국 기독교의 잘나가는 교단 대부분의 목사가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론'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 현재 40-50대 목회자들이 신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참으로 순진무구한 '성경무오설'이니 하는 것들을 주요하게 익혔고, 그렇게 교육받은 그들이 교세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창조론'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신자들에게 아직 신앙심이 부족하다면서 매도한다. 심지어 이와 같이 창조에 대한 문자주의를 거부하는 목회자들에게도 '이단', '사이비', '배교자' 등의 용어를 써가면서 매도한다. 위 영상에 나온 김진 목사도 기성 목사들을 용기 있게 비판한 탓에 수많은 안티들을 몰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창조에 대한 문자주의를 설교하는 목사들 중에서는 진짜 잘 모르고 순진하게 믿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신자들이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멀쩡한 과학적 사실을 목사들이 덮어두는 경우다. 굳이 창조에 대한 문자주의를 진지하게 믿지는 않으면서도 자본주의적인 이익과 결탁해서 거짓을 설교하는 경우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것이 그들의 이익에게도 적합한 생각일까? 이미 수많은 20-30대 젊은 신자들이 그러한 목사들과 그들이 조성하는 교회 분위기 때문에 신앙을 등지게 되었다. 그들이 자라나면서 배운 온갖 과학적인 사실들과 상충되는 비합리적인 이야기를 강요받고 혼란스럽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만 간다면 당장의 이득을 좇으려는 근시안적인 동기 때문에 결국엔 교회가 저절로 자멸하는 길로 빠지게 될 것이다. 이 시대에 교회가 어떻게 썩어빠진 고인 물이 되지 않고 변모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성철 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진리를 위해서 불교를 선택했지, 불교를 위해 진리를 선택하지 않겠다." 마찬가지로 성경에 나오는 구절들 또한 하나님의 진리를 가리키기 위한 은유적인 표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본다면 좋겠다. 우리는 보통 악보에 적힌 음표를 그저 바라본다고 해서 감동하지 않는다. 대개 누군가가 악보에 적힌 음표를 연주하며 해석하는 과정에서 감동을 느낄 뿐이다. 도대체 성경이라는 악보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것인지, 왜 쓰고자 했던 것인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어떠한 감동과 통찰을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잠깐 멈추고 생각해보도록 하자. 성경이라는 악보를 우리네 삶을 통해 직접 연주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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