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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n 06. 2021

<제로, 현실을 창조하는 마음상태> 서평

유사과학 대잔치

https://youtu.be/Ne0-R3fn1RM (제로- 의식의 메트릭스(상대성, 이원론, 창조론) - [천시아 영성 라이브] 2)


0. 결론은 대체로 맞지만 근거는 헛소리인 이야기

  세상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의 헛소리가 있다. 첫째, 결론과 근거 다 헛소리인 이야기. 이 경우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쓰레기통으로 치워버리면 된다. 둘째, 결론은 틀렸지만 나름의 근거 제시는 정당한 이야기. 이런 경우에는 많은 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나름대로 제시해준다. 혹시나 그 나름의 근거를 적절하게 잘 재구성한다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쓸모있는 논의가 탄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결론은 대체로 맞지만 근거는 헛소리인 이야기가 있다.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셋째 부류의 이야기가 둘째 부류의 이야기보다 더욱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맞는 것 같은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사용된 근거들까지 덩달아 사람들 사이에서 옳다고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중에 그 엉터리 정보들을 기반으로 그릇된 추론들을 무수히 많이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위험요소가 크다.


 천시아의 <제로, 현실을 창조하는 마음상태>(이하 <제로>)는 바로 셋째 부류에 해당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일단 나는 천시아의 이 책과 여러 강연들의 소중한 가치를 먼저 칭찬하고 싶다. 천시아는 명상에 대해 어렵고 복잡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여러 매체들을 통해서 그 그릇된 인식을 전환시켜왔기 때문이다. 그는 싱잉볼 명상과 명상에 대한 쉬운 가이드를 통해서 마음챙김 명상에 대해서 쉽게 잘 풀어주는 재능이 있다. 특히 <제로>는 노자의 무위사상과 같은 동양 사상부터 시작해서 정신분석학, 게슈탈트 치료, 인지행동치료 등의 상담심리학 전반적인 내용들까지 포괄해 독자들에게 실용적인 조언들을 잘 전해주고 있다. 그 조언들은 이 책의 챕터마다 각각 결론으로 쓰인 '포맷하고 재입력하기'에 너무나 잘 담겨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진심으로 수많은 이들이 이 조언들과 work book을 읽고 실천하면서 커다란 긍정적인 변화를 겪게 되기를 간절히 바랄 정도로 좋은 내용들이다.


 그러나 나는 책을 읽다가 곳곳에 퍼져있는 몇몇 심각한 문제점들을 발견했다. 나는 이 지점들을 반드시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천시아가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건넨 조언들의 소중한 가치를 진정으로 느꼈고, 그렇기에 이 책이 조금 더 훌륭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내가 여기에서 그 문제점들을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천시아와 그의 독자들에 대한 도의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내가 말한 점들이 다음의 개정판이나 후속판에서 꼭 고쳐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결정적으로 말해서, 책의 곳곳에는 결코 사실이 아닌 요소들이 잔뜩 눈에 띈다. 그 오류들이 워낙에 방대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전부 다루기 힘들 수는 있겠으나, 다른 많은 이들도 저지르는 전형적인 실수들 위주로 간단하게나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1. 영점장(Zero point field)

 일단 양자물리학과 영점장에 관한 내용을 우선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전세계 있는 소위 '영성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해며 떠들어대는 주된 헛소리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양자역학을 아주 제대로 오용한다. 그들은 영점장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 1m3(=1000L)의 허공 속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다 합하면, 그것만으로도 지구상의 바닷물을 모두 증발시킬 수 있다고 계산까지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를 정말 말도 안 되는 비약을 통해서 우리의 의식에 접목하며 심상화 기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모든 근거들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사실 무근의 헛소리들이다. 안타깝게도 천시아는 바로 이러한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것들을 그대로 책에다가 가져다 쓰는 오류를 범하고야 만다. (<제로>, p.214 참고) 이러한 오류는 예전에 읽은 허원기 선생님의 과학철학 석사 학위 논문에서 잘 정리되어 지적되고 있다. 관련 인용을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영점에너지 활용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절대 0도라고 해도 양자역학적 효과 때문에 원자들이 완전히 정지해 있는 것은 아니다. 진공 상태에서 평행한 두 금속판이 서로 끌어당기는 카시미르 효과 역시 양자역학적인 요동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영점에너지 상태, 진공상태에서도 에너지를 뽑아내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현대 물리학 이론을 그들의 근거로 삼고,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그들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물리학 이론에 따르면 지구 정도의 공간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은 1갤런 정도의 가솔린에서 얻을 수 있는 정도의 매우 적은 양이다.(Gardner, 2000: 80-85) 이들은 물리학 이론을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 허원기, <과학과 사이비 과학의 구획기준 탐색>,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학위 논문, 2011, p.63 -



 물론 저자 천시아가 말한 것처럼 심상화 기법이나 확언 기법은 심리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매우 긍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초반에 내가 말했던 것처럼 그의 결론에서 이야기되는 조언들은 대체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조언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용되는 근거들은 다른 말 할 필요도 없이 형편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특히나 그러한 헛소리들은 '양자물리학'을 중심으로 급발진하는 경향이 짙다. (흥미롭게도 소위 '영성가들'은 '양자물리학'이라는 워딩을 주로 사용한다.) 양자물리학을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헛소리들에 대해서는 내가 예전에 써둔 글이 있으니 아래 링크를 참조하길 바란다. 전세계에 있는 많은 소위 '영성가들'(특히 시크릿 부류)이여, 더 이상 양자물리학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들 이상으로 과장하면서 이야기하지 말기를!



2. 슈만 공명주파수

 다음으로 살펴볼 내용은 '슈만 공명주파수'다. 이건 아주 거칠게 말해서 "정말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 류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구의 고유주파수가 7.83 Hz인데, 이것을 '슈만 공명주파수'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은 깊은 명상 상태에 빠질 때 나오는 세타파와 유사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깊은 명상을 통해 지구의 고유주파수와 공진하며 합일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간절히 원한다'라기보다는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는 주장이기는 하다. (<제로>, p.231 참고) 사실 이와 비슷한 '주파수' 속임수는 지금까지도 유튜브에서 '델타파 수면 음악'이라거나 '연애 주파수'라거나 하는 등 가지각색의 형태로 교묘하게 변형되어 잔재해있다고 보면 된다. 역시나 언젠가 크게 히트를 쳤던 밈들은 그 이후에 어떻게든지 변형되어 교묘하게 유행된다. 유행은 시대를 따라 주기적으로 돌고 도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 또한 크나큰 비약적 오류에 기반해있다. 일단 저자의 말마따나 지구의 공명 주파수와 깊은 명상상태에 일어나는 세타파 주파수가 유사하다는 설명을 받아들인다고 하자. 그런데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왜 내가 지구하고 공명해야 하는 것인가? 왜 내가 우주하고 공명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도대체 무엇에 도움이 된다는 것인가? 물론 이에 대한 부연 설명이 나와있기는 하다. "이때 우리의 몸은 지구의 고유 주파수와 비슷한 영역대로 내려가 공명함으로써 지구의 에너지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그 설명은 위에서 언급한 '영점장' 개념을 기반으로 한 설명이다. 안타깝게도 '영점장' 개념을 통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이미 사실무근의 헛소리로 판명되었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우주는 무한한 가능성의 양자 진공 상태야. 우리가 의식을 세타파로 낮추어 영점장에 원하는 바를 직접 입력해 넣을 수만 있다면, 무한한 창조의 에너지가 가동될 수 있는 거야."
- <제로>, p.232 -


 애초에 슈만 공명주파수는 지구 자체라거나, 생명체라거나, 그 어떠한 영적인 현상과도 관련이 없는 현상인 것이다. 물론 뇌에서 세타파가 나올 정도로 깊은 명상에 몰입하는 활동은 심신의 건강에 매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용되는 근거들은 형편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굳이 이렇게나 과장하지 않고도 명상과 몰입의 중요성은 충분히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수용된 엉터리 정보들 때문에 이후의 삶이 엉터리로 범벅될 여지가 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결론은 대체로 맞지만 근거는 헛소리인 이야기"로 판명났다.


https://skeptoid.com/episodes/4352 (슈만 공명주파수의 오용에 대한 더욱 자세한 비판을 알고싶다면 참고할만한 칼럼)


3. 인간의 뇌는 3층 구조라고?

 마지막으로 살펴볼 내용은 유사과학이라기보다는 반증된 지 상당히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뇌과학적 오개념에 가까운 내용이다. 일명 '3층 뇌 가설'이라고 불리는 오개념이다. 이것은 쉽게 말해서, 인간의 뇌는 진화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면서 기본적인 생명활동을 주로 담당한다고 하는 1층 '파충류의 뇌', 그리고 감정과 스트레스 반응을 주로 담당한다고 알려진 2층 '포유류의 뇌', 마지막으로 언어활동을 토대로 주로 기억, 분석, 판단을 하는 3층 '신피질'의 구조로 나누어져 있다는 학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안타깝게도 현대에 와서 충분히 반증되어서 폐기된 잘못된 가설이 되었다. "인간은 인지라는 예쁜 포장지로 둘러싼 동물 뇌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뇌의 진화를 다루는 전문가들, 즉 뇌과학자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기본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로 불행하게도 예전에 대중들에게 각인된 '3층 뇌 가설'은 딱딱하게 굳어서 쉽게 교체되지 않게 되었다. 뇌의 구조에 대한 생물학적 패러다임은 바뀐 지 한참 오래되었지만 그 사실이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더러 이미 형성된 고정관념은 쉽게 변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천시아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그대로 답습하며 책에 담아낸 오류를 저질렀다. (<제로>, p.111 참고) 이와 관련된 더욱 자세한 비판에 대해서는 충분히 지적으로 신뢰할만한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이 저술한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책에서 인용한 다음 구절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이 기원 신화는 매우 강력한 것이어서 과학자들도 이에 기초한 뇌 모형을 제안하곤 했다. 이런 모형에 따르면 우리가 파충류로부터 물려받은 아주 오래된 피질하 회로는 우리의 기본 생존을 담당한다. 그리고 이 회로 꼭대기에는 우리가 초기 포유동물로부터 물려받은 '변연계'라고 불리는 감정 체계가 있다. 그리고 마치 굽기가 완료된 케이크에 크림을 얹듯이 이 변연계에 합리적이고 인간에게 독특한 피질이 덧씌워 있다고 한다. '삼위일체 뇌'라고도 불리는 이 가공의 중층 배치는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에 대해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오해 중 하나다. 이것은 인간 지능의 진화 과정을 다룬(어찌 보면 대부분 꾸며낸) 이야기를 담은 칼 세이건Carl Sagan의 베스트셀러 <에덴의 용The Dragons of Eden>을 통해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

-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017, 생각연구소, p.166 -


"그러나 인간은 인지라는 예쁜 포장지로 둘러싼 동물 뇌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이것은 뇌의 진화를 이해하는 전문가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학술지 <행동과학과 뇌과학Behavior and Brain Sciences>의 편집장이자 신경과학자인 바바라 핀레이Barbara L. Finlay는 "감정을 뇌의 중간 부분에만 대응시키고 이성과 논리를 피질에 대응시키는 것은 그저 허튼 소리일 뿐"이라고 말한다. "뇌의 모든 구역이 모든 척추동물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뇌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뇌는 회사가 그렇듯이 팽창과 동시에 재조직됨으로써 효율성과 날렵함을 유지한다."

- 리사 펠드먼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017, 생각연구소, p.167 -


4. 마치며: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지금까지 소위 '영성' 분야에서 인기가 있다고 하는 천시아가 범한 오류들을 조목조목 따져보았다. 이것말고도 고쳐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것들을 모두 쓰다보면 도저히 글이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므로 이쯤해서 마쳐야 할 것 같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것들에 대해서 조금씩이라도 더 다루어보려고 한다. 혹시나 천시아가 이 글을 읽고 도움을 얻어 책의 오류를 수정한다면 참으로 기쁠 것이다. 


 여태까지 정리한 책의 오류들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주장하고자 하는 결론보다 그를 위해 드는 근거가 훨씬 더 입증부담이 큰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심상화 기법이 중요하다거나, 명상이 심신 안정에 중요하다거나 하는 결론이야말로 누구나 받아들이기 쉬운 주장이다. 그렇다면 그 결론을 그저 담백하게 이야기하면 될 뿐이다. 자신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내용들을 근거로 채택하며 화려하게 덧붙일 이유는 하등 없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본인의 이야기가 멋있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일단 적어도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는 그러한 글쓰기가 너무나 역겹고 느끼하게 읽힌다. <논어>에서 공자가 말했듯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아는 것’"(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是知也)일 뿐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글쓰는 사람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 글쓰기를 지양해야 하고, 읽는 이들도 그러한 글쓰기를 제대로 알아보고 솎아낼 줄 알게되는 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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