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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Aug 19. 2021

<정신분석 강의> '두번째 강의' (실수 행위들) 정리


"반대로, 정신분석의 관찰 재료는 일반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사건들, 다른 학문들에서 너무 사소한 문제로 치부되어 무시되는 것들, 이른바 현상(現象) 세계의 쓰레기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이와 같은 비판을 하면서 문제의 크기와 징후의 현저함 사이에서 혼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는 아주 미약한 징조만으로도 드러나게 되는 중요한 것들이 있는데도 여러분들은 그러한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34 -


"아무런 기대도 가지지 않은 채, 아무런 전제도 없이 어떤 문제를 근본부터 철저히 연구할 때, 다행스럽게도 운이 따라 준다면 작은 것들이나 큰 것들이나 모든 것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전망이 없을 것처럼 보였던 연구에서도 더 큰 문제를 연구할 수 있는 접근로(接近路)가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들에게는 얼핏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건강한 사람들의 실수 행위를 연구하는 일에 여러분들의 관심을 고정시켜 버리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34 -


 프로이트는 "일반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사건들, 다른 학문들에서 너무 사소한 문제로 치부되어 무시되는 것들, 이른바 현상(現象) 세계의 쓰레기 같은 것들"이 정신분석의 관찰 재료라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에서 예전에 읽었던 심리학 교양서적 <스눕>이 떠오르긴 했다. 그 책의 주된 골자는 '스누핑(snooping)'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그와 관련된 전문적인 조언을 부연하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방법이 독심술이라거나 심령술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이 책에 대해 '감수의 글'을 쓴 심리학자 황상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형태로 늘어놓은 다양한 단서들을 통해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심리적 특성을 파악해내는 것이다." 요즘에는 범죄 프로파일러나 마케팅에서도 상당히 활용되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프로이트는 "얼핏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건강한 사람들의 실수 행위"에 관심을 가져보자고 권유한다. 특히 누군가와 중요한 대화를 주고받는 상황이라면 최대한 촉각을 곤두세우며 상대방의 말에 집중해보자는 것이다. 아주 작은 징조라도 놓치지 말고 그것들을 단서로 활용하고자 노력한다면 더욱 커다란 단서를 도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마음에 담아두며 사람들의 실수 행위들을 관찰해보는 것이다. '저 사람은 왜 하필 저런 말실수를 했을까?', '저 배우는 왜 하필 저런 종류의 대사를 줄곧 잊어버리곤 하는 것일까?', '저 기자는 왜 하필 신문에 저런 오식을 남겼을까?' 등과 같은 질문 말이다. 실제로 프로이트는 뒤이은 강연에서 그러한 사례들을 다채롭게 언급한다.



"즉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기능상의 일탈적 현상들이나 심리적 능력상의 부정확성들, 그리고 이런 현상의 조건들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평소에는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실수할 수 있습니다. (1)다소 기분이 언짢거나 피로한 경우, (2)흥분 상태에 놓여 있는 경우, (3)주의력이 다른 일들에 지나치게 쏠려 있는 경우 등입니다."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p.35-36 -


"그러므로 모든 경우에 문제되는 것은 신체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든 심리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든 주의력 장애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37 -

"그러나 우리가 조금 더 깊이 연구해 들어가게 되면 실수 행위가 모두 주의력 이론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는 것, 또 적어도 그것에서 자연스럽게 이끌어 낼 수는 없다는 것 등을 알게 됩니다. 그러한 실수 행위들이나 망각 등은 또한 피로하지도 않고 방심한 상태도 아니며 흥분되어 있지도 않은 사람들에게서도 일어나며, 오히려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서도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37 -


 그런데 프로이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이전에 '실수 행위'에 대한 몇몇 선행 연구들과 가설들을 가볍게 짚고 넘어간다. 처음 언급하는 가설은 소위 '주의력 이론'으로 불리는 가설이다. 이러한 주의력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실수 행위들은 "신체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든 심리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든 주의력 장애의 영향"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실수 행위가 모두 주의력 이론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꼬집어 곧바로 비판한다. 실수 행위들이나 망각 등은 피로하지도 않고, 방심한 상태도 아니며, 흥분되어 있지도 않은 사람들에게서도 충분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누가 보더라도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실수 행위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여기서 프로이트는 실수 행위라는 현상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무의식을 입증해주리라고 은근히 강조하는 듯하다.



"그들은 의도했던 말이 잘못 나오게 되어 빚어지는 왜곡 현상의 종류를 혼동Vertauschungen, 선발음Vorklänge, 후발음Nachklänge, 혼합Vermengungen(Kontaminationen), 대치Ersetzungen(Substitution) 등으로 구분했습니다."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42 -


"이 두 명의 학자가 이와 같은 사례 수집에 근거해서 시도하고 있는 설명 방식은 매우 불충분한 것입니다. 그들은 한 단어의 소리와 음절이 여러 가지 다른 가치를 갖고 있으며 더욱 높은 가치를 지닌 요소의 신경 자극이 그보다 낮은 가치를 지닌 요소의 신경 자극을 교란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그들의 주장은 그다지 흔하게 일어나지 않는 현상인 선발음이나 후발음의 경우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43 -


 다음으로 프로이트는 메링어와 마이어(R. Meringer & C. Mayer, 1895)의 선행연구를 간단하게 살펴본다. 그들은 '잘못 말하기'의 종류를 혼동, 선발음, 후발음, 혼합, 대치 등과 같이 분류했다. 이러한 분류들 각각에 대한 설명과 예시도 가볍게 쓰여있다. 그러나 독일어 화자가 아닌 입장에서 쉽게 이해하기 힘든 예시일 뿐더러, 딱히 크게 중요하지도 않은 부분 같아서 그것들에 대한 정리는 건너뛰도록 하겠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연구들의 설명 방식도 매우 불충분하다고 비판한다. 특히 그들의 연구는 구체적인 맥락을 배제한 채 과도하게 음절이나 단어와 같은 국소적 단위에만 가치를 두고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개개인마다 다를 수도 있는 다양한 상황과 맥락을 고려해야 제대로 된 분석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일 흔한 현상은 사람들이 어떤 말 대신에 그것과 아주 흡사한 다른 말을 하게 되는 말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며, 이러한 유사성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잘못 말하기의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서 충분하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43 -


"어떤 특정한 경우에 나에게 여러 가지 잘못 말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방법 가운데서 어떤 하나의 형태로만 그 현상이 일어난다고 할 때, 거기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요?"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41 -


"사람들이 다른 식으로도 잘못 말할 수 있었을 텐데도 왜 꼭 그런 식으로만 잘못 말하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잘못 말할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41 -


"즉, 몇 가지 사례에서는 잘못 말하기의 형태로 불쑥 튀어나오게 된 현상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미가 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잘못 말하기의 작용도 어쩌면 자기 자신의 고유한 목표를 추구하는, 그 자체로서 완전히 유효한 심리적 행위로서 내용과 의미를 지닌 행동 표현으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45 -


 결론적으로 프로이트는 실수 행위가 단순한 우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도 아니며, 더 나아가 개개의 사례들에서 그 자체로 고유한 의미를 지닌 행동 표현으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군다나 이와 같은 실수 행위는 결코 단순한 기능 부전(dysfunction)으로만 바라봐야 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고유한 목표를 추구하는, 그 자체로서 완전히 유효한 심리적 행위로서 내용과 의미를 지닌 행동 표현"으로 바라보아야 하리라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그러한 실수행위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에 대한 궁금증은 차후에 이어지는 프로이트의 강의들을 통해 관련 실마리를 찾아보도록 하자.



* 최근에 개인 블로그에 올린 포스팅을 그대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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