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행위들
"<의미Sinn>라는 개념을 우리가 어떠한 심리적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정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것은 그것이 쓰여지는 의도와 함께, 심리적인 맥락 속에서 차지하는 위상 이외의 다른 뜻을 지니지 않습니다. 우리 연구의 많은 부분에서 <의미>라는 단어를 <의도Absicht>나 <경향Tendenz>으로 바꾸어 써도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실수> 속에서 어떤 의도를 발견해 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거나 실수를 시적으로 미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요?"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52 -
"자, 이제 우리는 비교적 별로 힘들이지 않고 실수 행위의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은 우연적인 현상이 아니고 진지한 정신적 행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자신만의 의미를 갖고 있고 두 개의 서로 다른 의도의 합동 작용 — 또는 다소간의 상호 길항 작용 — 을 통해 생겨나는 것입니다."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52 -
"우리가 계속해서 실수 행위란 심리적인 행위이며 두 개의 다른 의도들 사이의 간섭을 통해서 발생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80 -
프로이트는 지난번 강의에서 정리한 것처럼 실수 행위들 각각을 그 자체의 고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그러면서 '의미'(Sinn)라는 개념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의미'라는 개념은 그것이 쓰여지는 의도와 더불어서, 그러한 심리적 맥락 속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다를 바가 없다고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단어를 '의도'(Absicht)나 '경향'(Tendenz)으로 바꾸어도 크게 상관이 없으리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실수 행위를 두 개의 서로 다른 의도나 경향의 합동 작용 또는 다소간의 상호 길항 작용을 통해 발생하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면서 그 자체로 고유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실수 행위는 결코 단순한 기능 부전(dysfunction)이라거나 우연으로만 볼 수 없이 고유한 의미를 지닌 심리적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
게다가 이것은 흥분이나 방심, 주의력 장애와 같은 생리학적인 요소들만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물론 이러한 요소들이 실수 행위를 일으키는 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러한 요소들은 실수 행위의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러한 육체적인 요소들은 잘못 말하기를 완화시키거나 조장하는 역할만을 담당할 뿐이다. 오히려 문제되는 것은 왜 하필 그러한 종류의 흥분과 특별한 주의력 분산이 일어났냐는 물음이다. 즉, 왜 하필 다른 실수도 아니고 그러한 실수를 하도록 결정되었느냐는 물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수 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인해 이루어지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보고 싶어요 만나고 싶어요
매 순간 너에게 난 달려가고 있어요
붙잡고 싶어요 안기고 싶어요
네게 드러내지 못하는 마음 들키고 싶어요"
- 심규선(Lucia), <느와르> 中 -
"그러나 이 두 개의 경우들에서 <이 방해하는 경향은 억압됩니다. 화자는 그것을 말로 나타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때 그에게 잘못 말하기라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억압된 그 경향은 화자의 의지에 반하여 말로 표현되는데, 그것은 화자에 의해 허용된 의도의 표현을 수정하거나 혼합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바로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잘못 말하기의 메커니즘입니다."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p.87-88 -
"이제는, 실수 행위의 이해와 관련해서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해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의미와 의도를 가진 정신적인 행위라는 것과 두 개의 서로 다른 의도들의 간섭을 통해서 발생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이 중 하나의 의도는 다른 의도를 방해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어느 정도 억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방해하는 의도가 되기 전에 그보다 먼저 방해받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p.88-89 -
"그러나 실수 행위는 타협의 산물입니다. 그것은 그 두 개의 의도에 있어서 모두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의미합니다. 위험스러운 의도는 완전히 억압된 것도 아니고 또 — 개별적인 경우는 예외로 하고 — 온전히 자신을 관철시키지도 못합니다."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89 -
그렇다면 실수 행위는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질까? 프로이트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분명히 존재하는 의도를 억압하는 과정이 잘못 말하기를 촉발시키는 필수 불가결의 조건"이라고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실수 행위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의도들의 간섭을 통해서 발생되는 의미있는 심리적 행위다. 그런데 "이 중 하나의 의도는 다른 의도를 방해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어느 정도 억압된다"고 한다. 즉, 자신이 방해하는 의도가 되려면 그보다 먼저 방해를 받아서 억압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실수 행위를 타협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개의 의도 중에서 단 하나의 의도만 성공적으로 표출되지도 않으면서, 양쪽 다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거두는 작업인 것이다. 어떤 의도를 그대로 전달하면 위험하거나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할 것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분명 그것을 말함으로써 전달하고 싶은 의도도 완전히 억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실수 행위가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에서 아티스트 심규선(Lucia)의 <느와르>라는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네게 드러내지 못하는 마음 들키고 싶어요"라는 노랫말이 중요하다. 우리는 여기에서 무언가 상충하는 두 의도를 눈치챌 수 있어야 한다. ‘드러내지 못하는 마음’이라는 하나의 의도와 ‘들키고 싶어요’라는 다른 하나의 의도가 서로 충돌하면서 일종의 역설적인 표현이 되는 것이다. 들킨다는 표현은 보통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이 의도치 않게 드러나게 되는 부정적 상황을 가리키는데 그것을 원한다고 표현하니 더더욱 역설적이다. 이것을 '잘못 말하기'라고 간주하기는 힘들겠지만 두 개의 서로 다른 의도들이 상충하면서 일어난 '타협의 산물'을 예술적으로 잘 그려냈다고 할 수 있겠다.
* 이와 관련해서 최성호의 논문 '썸타기와 어장관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에서 소개된 해리 프랑크푸르트의 '의지분열'(ambivalence) 개념을 참고해도 도움이 될 것이다.
"기억 혹은 다른 심리적 행위에서 발생하는 불쾌감을 피하려는 이러한 의도는 불쾌감에서의 심리적 도피로 이름 망각뿐 아니라 다른 많은 실수 행위, 즉 하던 일의 중단, 오류, 그 밖의 다른 것들에 작용하는 결정적인 동기로 인정해도 좋을 것입니다."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101 -
"브로카 영역은 말하기를 담당하는 뇌 영역 중 하나로, 뇌졸중 환자들은 이 부위에 혈액 공급이 차단되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브로카 영역이 기능을 하지 못하면 생각과 기분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우리 연구에서 뇌 스캔 결과 기억이 재현될 때마다 브로카 영역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트라우마는 뇌졸중과 같은 신체 질병으로 발생하는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고, 심지어 몇 가지는 동일한 결과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이 시각적 증거로 확인된 것이다."
- <몸은 기억한다>,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을유문화사, 2020, p.86 -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들은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도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려고 하면 엄청 괴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신체는 공포와 격렬한 분노, 무기력감을 다시 경험하고 동시에 싸우거나 도망가고 시은 충동을 느끼지만, 이러한 감정을 말로 설명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을 이해력의 한계로 몰고 가서, 평범한 경험이나 상상할 수 있는 과거를 이야기할 때와 같은 언어 표현을 차단해 버리는 것이 트라우마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 <몸은 기억한다>,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을유문화사, 2020, p.87 -
트라우마는 불쾌한 기억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기억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너무나 심각한 고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이름 망각뿐 아니라 다른 많은 실수 행위, 즉 하던 일의 중단, 오류, 그 밖의 다른 것들"을 통한 심리적 도피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트라우마에 처한 사람들은 관련 기억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브로카 영역과의 연결이 차단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현상은 뇌졸중으로 인해 브로카 영역에 대한 혈액 공급이 차단되는 증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에 따라서 트라우마는 말문을 막히게 한다. 이야기를 한다 하더라도 거기에 실제 경험한 일의 핵심이 포함된 경우는 드물다. 그러면서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분노와 공포, 무기력감, 원망 등을 끔찍하게 재체험한다. 불쾌했던 시절의 기억은 표상의 차원에서 억압되지만, 불쾌한 정동은 그대로 남아 여기저기 달라붙으며 혼자 돌아다니게 되는 꼴이다.
"우리의 연구 목적에 따른 실수 행위의 가장 큰 가치는 그것이 매우 흔한 것으로서 우리 자신에게서도 쉽게 발견될 수 있는 현상이며, 그것이 발생하는 데에 어떠한 신체적인 질병이 꼭 전제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 <정신분석 강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홍혜경·임홍빈 옮김, 열린책들, 2003, p.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