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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Sep 01. 2021

"삶은 농담인 것이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예전에 대학에 입학하기 바로 직전에 부산 출신 동기와 함께 서울 이곳저곳을 즐겁게 탐험해본 적이 있었다. 이왕 기숙사에 잠깐 살게 된 거 평소에 가보지 못했던 서울의 명소들을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차가운 겨울이었다지만 그때만큼 설렘 넘치고 두근거렸던 시절도 얼마 없었던 듯하다. 조만간 대학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리라는 기대가 서울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방할 때의 설렘과 서로 짝을 맞추어 시너지를 일으킨 것 같기도 하다.



 마침 그때 청계천에서 괜찮은 캘리그래피 행사가 열렸다. ‘오휘’(O HUI)라는 화장품 회사하고 교보문고하고 협업해서 만든 행사다. 아무래도 거기에 놓인 캘리그래피들은 전부 화장품들로 그려진 듯했다. 하나같이 전부 마음에 드는 글귀들이라서 열심히 친구와 감상하고 사진 찍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봤었고
뒤에선 누군가가 쫓아온 듯 해
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 CHEEZE / 치즈 - '어떻게 생각해 (How Do You Think)' 中 -



 그중에서도 “삶은 농담인 것이다”라는 글귀는 지금까지도 친구들한테 종종 공유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잠깐 썰을 풀어보도록 하자. 인생을 살다보면 가끔씩 삶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부담감을 심하게 겪을 때도 있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라는 철학 서적도 있을 정도다. 개중에는 마치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굉장히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물론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가는 삶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심으로 존경스러울 정도로 대단한 삶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토록 진지하게 이어오던 삶의 태도가 영원히 지속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분명히 누구에게나 그러한 진지함이 확 무너져내리며 인생이 통째로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삶의 끝이 있기 마련이고, 어느 순간 그것이 자신에게도 역시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뚜렷하게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동안 쏟아부었던 진지함이 결국엔 헛짓거리였다는 느낌까지 들 수도 있다.



 그래서 실제로 이러한 허무함 때문에 종교에 귀의하시는 분들도 간혹 보인다. 그분들은 아무래도 현실에서의 삶이 헛짓거리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한 듯하다. 그러므로 아예 자신을 영원의 상 아래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대해서도 굳이 무어라고 토를 달고 싶진 않다. 마찬가지로 내가 감히 따라하기도 힘들 정도로 존경스러운 삶이기 때문이다. 가능만 하다면, 속세와 완전히 등을 지고 살아가는 종교인의 삶이란 그리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그것이 불가능해보이거나 그에 준할 정도로 어려워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속세에 완전히 몰입해야 할까, 아니면 속세와 완전히 등을 지고 살아가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그 어느 쪽의 삶도 택하고 싶지 않다. 철학자 토마스 네이글(Thomas Nagel)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둘 중 그 무엇도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애초에 인생이 덧없다는 느낌은 해결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해결해서도 안 되는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일단 인생의 덧없음은 인간이 잠깐 멈추고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종종 일어나는 '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러한 인간의 자기객관화 능력은 인생을 살아갈 때 커다란 도움이 되기 때문에 틀림없이 소중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생이 덧없다는 느낌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 인간의 자기객관화 능력까지 제거한다면 그거야말로 부조리한 경우일 것이다.



 다시, "삶은 농담인 것이다"라는 글귀로 돌아오자. 위 논의에 따르면, 인생이 덧없다는 느낌은 제거할 수도 없고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그것을 아예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 평소처럼 삶에 진지하게 몰입해 있다가도 가끔씩 그 진지함이 삶을 무겁게 짓누를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네이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아이러니"(irony)를 이야기한다. '뭐야, 그냥 헛짓거리 하고 있었네. 겨우 이까짓 것 때문에 삶이 고단하게 느껴진 거였어?' 하며 웃어버리고 다시금 진지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객관적인 관점에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진지함을 가지고, 그러면서도 그 진지함이 객관적인 관점에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러니한 미소를 머금으며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은 농담인 것이다." 쉽진 않겠지만 이것이 이따금씩 덧없어 보이는 삶을 대하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삶은 농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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