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라이트는 처음입니다만>은 제목 그대로 '톰 라이트'라는 애칭(?)을 가진 신학자에 대한 입문서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톰 라이트는 방대한 양의 저서를 남기고, 또 남겨놓을 예정인 대가 신학자 중 하나다. 그리고 그 명성만큼 온갖 비판과 왈가왈부가 많은 신학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쯤은 거쳐야만 하는 신학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방금 언급했다시피 톰 라이트의 저서는 너무나 방대해서 도무지 무엇부터 읽어야 하고 공부해야 할 지 감조차 잡히지 않을 수 있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신자들이 그렇게 막연한 마음을 가졌을 듯하다. 심지어 톰 라이트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과 호감이 있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말이다. 이 책은 그러한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톰 라이트 연구의 핵심들을 아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깔끔한 판서처럼 정리된 이미지들이 독자들의 쉬운 이해를 돕는다.
톰 라이트는 기존의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방식을 비판한다. 생각보다 꽤 많은 교회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 이 세상과 육체는 더럽고 나쁜 것들로 가득차있기 때문에, 그 언젠가 다가올 종말의 시기에 이 세상 너머의 것으로 가게 되어 구원받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런데 이는 초대 교회에서 그렇게나 격렬하게 거부했던 영지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알게 모르게 적지 않은 교회에서 이러한 종말론을 전파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종말론의 극단 중 하나가 그 유명한 신천지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톰 라이트는 유대인의 관점에는 그것과 정반대의 생각이 깃들어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구원받는다는 영지주의적 사고방식과는 다르게, 우리가 세상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톰 라이트의 표현을 있는 그대로 빌리자면, "이는 단순히 세상 너머에 대한 소망이 아니다. 바로 세상에 대한 소망이다." 이러한 생각에 따르면 우리는 단순히 넋놓고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기를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을 하나님이 의도하신 뜻에 맞게 회복시키고자 하는 능동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님으로써 모든 피조물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과 동역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애초에 하나님은 태초에 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시고 좋다고 말씀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는 저 너머가 아니라 분명히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이다.
톰 라이트에 따르면, 그러한 생각이 요한복음에서 7가지 표적을 통해 잘 드러난다고 본다. 일단 그는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7일 창조와 요한복음의 7가지 표적이 서로 유비된다고 본다. 창조 여섯째 날에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들어 동산에 두셨다. 마찬가지로 요한복음에서는 여섯 가지 표적이 나타난 후에 '인자'가 '유대인의 왕'으로서 등장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저자는 창조를 예수의 이름으로 가져와서 새 창조가 십자가 사역 가운데 도달하리라는 이야기를 인상적으로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작품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그 작품 안으로 직접 연루(involvement)되는 아름다운 성육신의 장면인 것이다. 이렇듯 하늘과 땅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이러저러한 면에서 서로 맞닿아 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톰 라이트의 대표적인 견해다. 이 외에도 신학적으로 참고할만한 내용들이 많으므로 관심있으신 분들은 직접 책을 읽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