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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Sep 11. 2021

<해커 붓다(우주 존재법칙을 깨고 사라진)> 서평


"의식과 존재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다시 보자. ③의식은 ①어리석음→②형성(의도적 행위)을 조건으로 생겨난다. ⑩존재는 ⑤여섯 감각기관→⑥접촉→⑦느낌→⑧갈애→⑨집착을 조건으로 생겨난다. 의식은 형성의 결과이고, 존재는 집착의 결과다. 형성도 집착도 뇌의 정보처리과정이다. 그 결과인 의식과 존재가 정보인 것이다." (p.53)


"붓다가 말한 윤회는 정보(의식, 존재)를 매개로 일어난다. 저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은 없다. 단지 정보가 전달돼 새로운 사람이 태어난다. 내가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내 삶의 결과로 태어나니 내가 없었다면 태어나지 않을 사람이다.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p.63)


"12연기는 보면 볼수록 사이버 공간의 아바타 생성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한다. 행위에 의해 축적된 정보에 따라 사람이 다시 태어나니 데이터를 입력해 새로운 아바타를 만드는 프로그램과 같다. '업에 따라 천하거나 귀하게, 아름답거나 추하게,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다시 태어난다. 우리는 지난 게임의 성적(업)에 따라 등급이 매겨져 다시 만들어지는 아바타가 아닐까?" (p.64)


"괴로움은 이런 것이다. 일반적인 고통의 의미를 포함하지만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아 불만족스럽고 불완전하며, 늘 변화하고 언제 사라질지 몰라 불안하니 괴로움이다. 결국 조건에 따라 생겼다가 사라지는 삶이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며, '모든 것이 괴로움(一切皆苦 : 일체개고)'이다. 붓다가 "나는 과거에도 또 현재에도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을 가르친다."(M 22)라고 강조할 때의 괴로움이 이런 뜻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행복한데 왜 괴롭다고 하나?"라고 물으면 안 된다. 그 행복이 영원하지 못하고  언제 꺼질지 몰라 불안하다는 말이니까." (p.70)


"모든 것이 과정이다. 생겨나서 변화하고 소멸한다. 씨앗에서 싹이 나고, 그 싹이 자라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그 꽃이 시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TV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몇 달을 몇 분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10배 압축하면 몇 년이 몇 분이 되고, 100배 압축하면 몇 십년이 몇 분이 된다. 이런 식으로 압축 배율을 높이면 가만히 있던 유리잔이 저절로 깨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우주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겠지만 영원할 것처럼 보이는 튼튼한 건물도 무너지고 높은 산도 사라진다." (p.74)


 예전에 세미나실에 상주하는 어떤 철학 깡패 선배가 이 책을 읽던 게 눈에 띄어서 메모를 해둔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나 지금이나 제목과 표지가 참 마음에 든다. 부처를 두고 "우주 존재법칙을 깨고 사라진 해커"라는 표현을 쓰다니! 게다가 매트릭스를 연상케 만드는 표지의 디자인은 그러한 제목을 더욱 매력적으로 부각시켜준다. 여러모로 재미난 교양서적같은 느낌을 풍기며 나를 끌어당겼다. 그런데 그 끌어당김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돌고 돌아서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내게 당도한 듯하다. 이제서야 뒤늦게나마 그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이 책은 불교, 특히 초기 불교에 입문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비교적 정통에 가까우면서도 재미나게 읽힐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초기 불교의 가르침을 나름 통찰력있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저자의 혜안과 내공이 돋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2장이 진국이다. 2장에서는 정보의 관점에서 12연기를 설명하려 한다. 어떤 점에서는 IIT(Integrated Information Theory; 통합된 정보 이론)이 연상되기도 한다. 다소 거칠게 기술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전체적인 틀에서 보자면 정보 이론과 관련해서도 좋은 통찰을 줄 수 있을 듯하다. 위에서 언급한 세미나실 그 선배는 석사 때 불교철학을 전공했다가 이후 박사과정에서는 정보이론 관련해서 주로 연구를 하게 된 입장에 있었다. 지금 돌이켜볼 때 그 선배의 관심사와 꽤 잘 어울리는 교양서적이었던 것 같다.


 책 중간중간에 인용된 구절들은 그 출처가 뇌과학 서적인 경우가 많았다. 혹시나 싶어서 뒤에 있는 참고문헌을 들추어보니, 역시나 박문호 박사의 <뇌 생각의 출현>이 적혀있었다. 왠지 모르게 저자도 박자세 회원이거나 수강생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따지고보면 박자세의 뇌과학 강의를 듣게 된 계기도 친하게 지낸 형님으로부터 소개받아서 듣게 된 것이었고, 그 형님은 위에서 언급한 세미나실 선배로 인해서 소개를 받은 것으로 안다. 결국엔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의식에 대해 과학적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곳에 모이는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뜻하지 않게 얻은 것도 많아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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