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최고의 복수는 너의 대적과 똑같이 하지 않는 것이다."
- <명상록>, 제 6권 6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저,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2018, p.109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너의 대적과 똑같이 하지" 말라며 단순한 앙갚음을 하지 말라는 듯하다. 그런데 과연 정말 아무런 앙갚음 없이 인생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가 "최고의 복수"라고 말한 것처럼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데아와 같은 태도가 아닐까? 아무리 철인 황제라 불리는 마르쿠스라 하더라도 인생을 살아갈 때 아무런 앙갚음 없이 살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특히 국정을 운영하는 그의 입장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상황에서 "최고의 복수"가 어떠해야 하는지 간단하게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일단 '복수'라는 개념을 심도 있게 다루기 위해서는 '협력'에 대한 탐구가 필수적이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협력은 타인에 대한 확실한 앙갚음으로 인해 발달했다고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인간의 협력은 복수의 피를 빨아먹고 자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이러한 주장에 대해 납득이 되겠는가? 얼핏 봐서는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협력의 주요한 특성을 잠깐이라도 살펴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미시간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로버트 엑셀로드의 조언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는 <협력의 진화>라는 책에서 성공하는 협력 전략의 세 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절대로 먼저 배신하지 마라
(2) 상대방이 먼저 배신한 다음에만 보복하라
(3) 용서하라 (전에 배신했던 상대방이 다시 협력하기 시작한다면)
위와 같은 세 가지 특징을 진화심리학자 로버트 트리버스는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처음에는 상대방이 내게 해주길 원하는 대로 상대방에게 해주되, 그 다음부터는 상대방이 내게 한 대로 똑같이 해준다.”(Trivers, 1985, p.392) 이를 짧게 줄여서 '팃 포 탯'(tit for tat) 전략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된 격언으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전략이 '착하면서도 만만해보이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만 하면 적어도 나와 엇비슷한 수준의 상대방은 나를 쉽게 무시하지 못하게 된다. 평상시에는 모두에게 호의적인 열린 마음으로 대해주는 태도를 기본으로 한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어느 정도 도와주고, 가벼운 실수를 했다면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도록 하고, 상대방이 나를 도와주는 이상 나도 상대방을 도와주면 된다. 다만 상대방이 심각하게 나를 배신했다면 그때는 기필코 그에 상응하는 앙갚음을 통해서 본을 보여줘야 한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각인시켜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협력은 바로 이러한 복수를 통해서 발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복수가 없었다면 얼마 안 가서 무임승차자들(free riders)이 사회에 판을 치게 됐을 것이다. 인간, 더 나아가서 모든 생명의 역사는 교묘한 무임 승차자들(free riders)과 그 반대편에서 재빨리 그것을 알아채고 제지하기 위한 과정의 공진화(coevolution) 역사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인간의 복수는 공동체 내에서의 건전한 협력을 저해하는 무임승차자들에 대한 적응적 견제 수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견제 수단이 없었다면 국가와 같은 거대한 규모의 협력 공동체는 존재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적절한 수준의 복수는 인생에서 필수불가결하다. 현실적인 상황에서 볼 때 "최고의 복수"는 이러한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 해당 게시물은 필로어스의 프로그램 일부 지원을 받고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