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차 Helper's High
"일을 하되, 가축처럼 비참하게 일하지도 말고, 동정을 얻거나 감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일하지도 말라. 오직 공동체적 이성을 따라 행하거나 행하지 않기만을 바라라."
- <명상록>, 제 9권 12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저,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2018, p.178 -
누군가 나보고 일을 왜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런 걸 질문이라고 하냐고 도리어 따질 것 같다. 적어도 독립해서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이 생계를 유지하려면 어떻게든지 일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일을 왜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무의미하다. 혹자는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면 인생이 의미있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나는 이것이 절반만 맞고 나머지 절반은 틀린 말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인생이 의미있게 느껴질 개연성은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인생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른 많은 방식으로도 인생의 의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에 대해서 과도한 환상을 가지며 호들갑 떨지는 말자. 일의 기본적인 목적은 생계유지일 뿐이지 그 이상의 나머지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부산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이렇게 생각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을 때 세상을 다 잃은 듯이 크게 실망할 일도 없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개인적으로는 일은 일답게 덤덤하게 하는 편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마르쿠스도 그러한 의미에서 "가축처럼 비참하게 일하지도 말고, 동정을 얻거나 감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일하지도 말라"고 말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굳이 일을 할 때 어떻게 해야 의미있게 느껴질지 따져본다면? "오직 공동체적 이성을 따라 행하거나 행하지 않기만을 바라라"라는 위 인용의 나머지 구절을 떠올려보자. 인간은 보통 어떨 때 삶이 의미있다고 생각할까?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성적 쾌감을 느낄 때?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단순히 기쁜 감정과 인생이 의미있다고 느끼는 상태는 엄밀히 말해서 서로 다르다. 우리는 보통 그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관을 능동적인 방식으로 성취해낼 때 인생에서 의미를 얻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자기효능감 개념과 관련이 많다. 그중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동체에 무언가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기효능감을 느낄 때 더욱 깊은 의미가 느껴진다. 이러한 상태를 정신의학적인 용어로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 부른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예시로 봉사활동을 들 수 있다. 컬럼비아 대학의 린다 프리드 교수는 볼티모어 시에서 노인들에게 공립 학교 학생들을 도와주도록 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로 인해서 학생들은 학교 생활 적응 및 학업성취도 문제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 또한 자원봉사를 했던 노인들의 건강과 삶의 질이 높아졌다. 자발적으로 누군가를 도와줌으로써 도움을 받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도와주는 이까지 몸과 마음의 건강이 증진된 것이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라는 말은 그저 희망찬 구호에만 머물지 않는 것이었다. 그동안 종교의 영역에서 주로 받아들여진 사랑의 가르침은 이제 과학의 영역에서까지 입증되었다. 그러므로 봉사활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을 도울 수 있어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해보자. 그리하면 인생이 더욱 보람차고 의미있어질 것이라고 어느 정도 확신하며 말할 수 있겠다. 이쯤해서 마르쿠스의 구절을 다시금 떠올려보자. "오직 공동체적 이성을 따라 행하거나 행하지 않기만을 바라라."
* 해당 게시물은 필로어스의 프로그램 일부 지원을 받고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