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없이는 죽음뿐이다.
모든 인간은 실존적으로 무력한 상태로 태어난다. 아이는 스스로의 몸을 통제하며 걸을 수도, 자신의 능력으로 음식을 구할 수도 없다. 그런 아이에게 엄마의 돌봄은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의미한다. 때문에 아이는 자신을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존재인, 주양육자와의 애착 형성이 자신의 생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한다. 이때, 주양육자와의 소통과 감정적 교류를 통해 만들어진 생존 전략의 무의식적 시스템을 '애착 유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모든 보호자인 주양육자를 뜻합니다.)
불안정 애착 유형, 불안형
불안정 애착유형 중 '불안형'은, 아이가 엄마에게 보내는 요구에 대해 일관된 반응을 얻어내지 못할 때 생겨난다. 젖이 먹고 싶어 우는 아이의 신호를 파악하지 못하고 기저귀를 갈아줬다거나 혹은 그 신호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경우에, 아이는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질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다 보면 생존의 위협을 느낀 아이는 과각성 상태가 되고 세계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함을 갖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이때 형성된 애착은 일종의 생존 시스템으로 고착화된다. 그래서 아이가 어른이 된 후에도 쉬이 변하지 않는 행동양식의 틀이 되어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큰 영향을 끼친다.
나는 왜 나쁜 남자가 끌릴까?
-진짜 사랑 vs 익숙한 불안
많은 경우, 어린 시절 주양육자와의 상호작용 방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성 간에 교제를 하게 되는데 어릴 때 고착화 된 애착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감정적 교류가 깊어지는 관계에서 특히 도드라지게 활성화된다.
불안형 아이는 사랑이라는 것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에 사로 잡혀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상대의 관심을 확인하려 한다. 주양육자의 마음과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자신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라 여겨지기 때문에 이 아이에게 불안은 부정적 감정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위기 감지 능력'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레 불안형 아이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상대방과의 소통에서 불안을 느낄 확률이 높아지며 또한 상대에게 쉽게 집착하게 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의 문제라 함은 어린 시절 형성된 그릇된 애착을 '상대를 사랑하는 방식 자체'로 이해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진짜 사랑'과 '익숙한 불안'을 구분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 형성된 애착이 행동양식으로 굳어졌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익숙한 불안을 진짜 사랑이라고 이해한다. 때문에 '핵 불닭볶음면 같은 남자', '나쁜 남자가 좋아', 더 나아가 '(상대가 연락이 잘되지 않아 날 불안하게 만들지만) 이것도 사랑이야.'라며 불안을 근거로 사랑을 정의 내리는 모습은 익숙한 불안에 대한 맹목적 믿음과 더불어 자신의 결핍에 대한 무지를 방증한다.
Q. 내가 느끼는 '설렘(익숙한 불안)' = '사랑'인가?
- 프로이트와 프롬이 바라보는 인간이 설렘에 의존하는 또 다른 이유
지금의 나의 성격적 결함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시점에서 형성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들 내가 느끼는 '설렘'이 '불안'에서 비롯되었다는 데에 동의하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설렘'에 의존해 사랑하는 데에 문화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렇다. 현대인들은 사랑에 가슴 떨림이 동반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사랑이라 일컫지 않는다. 그 결과 자신의 결핍으로부터 벗어나 건강한 사랑을 나누는 데 한계를 갖고 있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현대인들이 설렘에 의존하는 또 다른 이유가 20세기 후반, 결혼제도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설명한다. 과거 19세기나 20세기 전반까지만 하더라도 연인이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당시 결혼이라 함은 부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다소 수동적인 형태였던 반면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서로 사랑에 빠져서 결혼해야 한다는 '낭만적인 사랑'이 현대인들의 사랑관에 전반적인 이해의 틀로 자리 잡게 되었다. 때문에 현대인들은 사랑할 만한 대상을 발견하는 것이 어려울 뿐 사랑 자체를 어려운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현대인들에게 있어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사랑하느냐가 아니라, 마음에 드는 상대를 '어떻게' 발견하는가 하는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자신을 만족시킬 상대를 발견하면 사랑은 따라오는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사랑의 태도나 방식을 논할 시간에 사랑스러운 사람을 찾는 것이 더 낫다고 보는 것이다. 예컨대 사랑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현대인들이 사랑을 감정적, 본능적 영역으로 다루는 데 문화적으로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의 성격이 이전 세대에 의해 손 써보지도 못하고 결정됐다한들
우리의 사랑은 이전과는 다른 것이어야만 한다.
부모세대가 겪은 스트레스가 말과 행동을 통해 자녀에게 반복적으로 전해질 때, 아이는 ‘세상은 위험하다’는 감정을 내면화하게 된다. 이러한 부모의 트라우마는 세대를 초월해 전해져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아이에게도 전이될 수 있는데 이를 세대 간 트라우마라고 이야기한다. 이 말은 곧, 우리의 불안정 애착이 한 두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대를 초월해 전이되어온 결과라는 것을 의미한다. 애초에 나의 성격적 결함이라는 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었으며 부모 세대 역시 같은 문제를 겪어왔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우리는 선택을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존재이다. 사랑이 대물림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운명에 순응해 이전 세대의 잘못을 답습한 채 그릇된 사랑을 되풀이할 수도 있게 하지만, 수많은 나(이전 세대)가 반복해 온 그릇된 사랑의 연쇄를 끊어내는 핵심적인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불안정 애착이야말로 그릇된 사랑을 직접 겪어왔기에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을 알고있는 유일한 존재이며 그러한 가능성을 언제나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투쟁이 보잘 것 없어 보일지언정 우리의 사랑은 이전보다 나은 것이어야한다. 살아있다는 건 이후에 살아갈 이들에게 물려줄 무언가를 선택하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
.
.
+ 나의 결핍을 찾아가는 과정은 분명 괴롭습니다. 다만 문제의 원인을 찾는 과정이 범인이 색출하려는 방식으로 변질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나를 사랑하고 나서 남을 사랑하겠다는 마음은 내 상태가 온전해야 사랑해줄 수 있다는 조건부 사랑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이유는 남을 나처럼 사랑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 '모든' 불안형이 제가 제시한 사례처럼 불안을 사랑이라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는 말이 꼭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비유일 뿐 '인간'은 그러하다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