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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필록 Nov 16. 2020

오얏나무 피리 소리의 귀환

이적의 여섯 번째 솔로 앨범을 기하여 써보는 찬사

뮤지션 이적을 좋아한다. 90년대 중반 패닉 시절부터 김동률과의 프로젝트 그룹이었던 카니발, 세션 멤버들이 화려했던 긱스(GIGS), 솔로 활동까지 가릴 것 없이 꾸준히 좋아해 온 가수라고 할까. 95년 김진표와 함께 그룹 '패닉'으로 데뷔할 때부터 이미 전곡 작사, 작곡을 할 만큼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싱어송 라이터인 그의 새 앨범이 지난 11월 11일에 발매되었다.


동네 노래방을 단골처럼 다니던 고등학교 시절에 가장 많이 부르던 노래가 패닉 1,2,3 집의 수록곡들이었더랬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1집의 '달팽이'나 '왼손잡이', 2집 타이틀곡이었던 'UFO' 3집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뿐 아니라 팬이 아니라면 잘 모를 수 있는 '기다리다', '뿔', '희망의 마지막 조각', '태엽장치 돌고래' 등의 노래 등을 부르며 이적의 독특한 보컬 스타일을 따라 하려고 퍽이나 노력하곤 했었다.


그런 그가 패닉 활동을 잠시 접고 솔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 조금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2집이 대중적으로는 실패한 반면에 3집 앨범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다 잡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꽤 승승장구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패닉 3집 발매 후 1년이 조금 지난 1999년, 그의 솔로 첫 앨범인 'Dead End'가 나온다. 자료 조사를 하며 찾아본 바로는 처참한 실패라고 하더라.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좋아하는 노래들인 'Rain', '죽은 새들 날다', '회의', '지구 위에서' 들이 수록된 앨범이기도 해서, 실패라기 보단 음악적인 과도기에 나온 변화의 시도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실제로 그 후에 '슈퍼밴드'라고 불리는 긱스 활동과('짝사랑'은 내 노래방 최애 곡이다.) '토이'의 세션 활동 등을 통해 이적은 그 전까지의 카랑카랑하고 날카로운 보컬에서 무게감이 느껴지는 탄탄한 중저음으로 음색이 바뀌게 된다.


2003년 늦은 봄, 많은 사람들이 여름이면 아직도 많이 찾는 '하늘을 달리다'가 수록된 그의 솔로 2집 '2적'이 발매된다. 인트로 격 곡인 '몽상적(夢想笛)'이라던지 '하늘을 달리다' 등의 노래에선 패닉 때의 재기 발랄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가 솔로 앨범에서는 조금 차분하고 서정적인 스타일을 추구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개인적인 호불호의 차이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가 다시 패닉으로 돌아오길 내심 바라고 있었다.


내 기대에 부응하듯, 2005년 겨울에 이적과 김진표가 다시 '패닉'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온다. 그들의 4집 앨범 타이틀곡 '로시난테'도 물론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겨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정류장'을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다. 세월이 지난 만큼 '패닉'이라는 그룹이 추구하는 음악도 독특함이 줄어든 대신 능숙함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조금은 아쉽긴 했지만, 이적의 솔로 앨범이 아닌 '패닉'을 기다려 온 팬들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을 테다.


그 후에 발매된 그의 솔로 3집 앨범 '나무로 만든 노래'는 '다행이다'라는 국민 고백송으로 유명하다. 이적이라는 뮤지션에게도 지금까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타기도 했고, 노래 자체도 지금까지도 이적의 대표곡으로 불려도 될 만큼의 인지도를 대중들에게 얻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앨범에서는 '같이 걸을까'를 가장 좋아한다. 아마 타이틀곡 안 좋아하는 병이 있는 듯.)


사실 그 후에 발매되었던 솔로 4집 앨범 '사랑(2010)'과 5집 '고독의 의미(2013)'은 전적으로 내 취향이 아닌 곡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고, 이때부터는 사실 이적의 음악을 거의 듣지 않았던 것 같다. 너무 무난하고 잔잔한 노래들로만 구성이 된 앨범이라는 느낌이 강했고, 차라리 다시 패닉으로 돌아와서 카랑카랑한 고음을 내질러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기도 했었다.


그리고 올여름 꽤 오랜 시간만에, 그가 '당연한 것들'이라는 싱글을 냈을 때, 내가 좋아하던 이적이라는 뮤지션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새삼스레 다시 느끼게 되었다. 이 노래는 올해 코로나 사태로 힘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한다.



그때는 알지 못했죠

우리가 무얼 누리는지

거리를 걷고 친구를 만나고 손을 잡고

껴안아 주던 것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


처음엔 쉽게 여겼죠

금세 또 지나갈 거라고

봄이 오고 하늘 빛나고 꽃이 피고

바람 살랑이면은

우린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 이적 [당연한 것들] 中



예전의 그가 주로 세상에 대한 분노와 반항을 표현했다면, 솔로 앨범을 여럿 거치면서 그가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너무 그를 편협한 시선으로만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됐다. 잘못된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만으로는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을 얻진 못한다는 것을 그도 경험으로 깨달은 걸까.  


그리고 이번에 발매된 6집의 타이틀 곡은 무려 김진표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타이틀곡인 '돌팔매' 뿐 아니라 첫 트랙인 '물'이라던지 '민들레, 민들레'같은 곡에서는 얼핏 오래전 패닉 시절의 느낌이 나기도 해서, 내 입장에서도 오랜만의 그의 앨범을 매일같이 듣고 있다. 이번 앨범을 들으며 이적이라는 뮤지션을 어떻게 비유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온정과 열정 사이'라는 말이 적당할 듯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노래에서부터 소외된 것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지는 서정적인 곡 까지, 두 가지 스타일을 모두 높은 수준으로 만들어내는 뮤지션은 (내가 알기론) 그리 많지 않다. 


나처럼 그의 오랜 팬이든, 비교적 최근에 그의 음악을 접한 사람이든,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누리지 못하는 지금 시기에 나온 여섯 번째 그의 앨범. 대부분은 만족할 만한 반가운 그의 행보다.


얼마 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한 그의 '당연한 것들' 라이브를 끝으로 링크로 첨부해본다. 부디 내년 가을에는 마스크를 벗고 청아한 가을 공기를 느낄 수 있기를, 바라본다.


'당연한 것들' 라이브(유희열의 스케치북 中)



이적 6집 [Trace]

2020.11.11


1. 물

2. Whale Song

3. 흔적

4. 돌팔매 (feat. 김진표)

5. 당연한 것들

6. 숨

7. 한강에서 (Interlude)

8. 민들레, 민들레

9. 밤

10. 숫자 (Album Ver.)

11. 준비

12. 나침반 (Album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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