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어떻게 살 것인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TV 방송을 틀면 나오는 특선영화들처럼, 매년 연말이 되면 보는 나만의 영화 리스트가 있다. 크리스마스 전까지 두 세편 정도의 영화에 대한 후기랄까, 단상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감안하셔서 보시길 권장합니다.
[어바웃 타임]은 2013년 겨울에 우리나라에 개봉한 영화다. 포스터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자칫 로맨스 영화인가 싶지만, 사실은 영화의 제목처럼 '시간'을 주제로 한 '사랑'영화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주인공 팀(도널 글리슨)은 영국 콘월이라는 외곽 지역에 사는 평범한 청년이다. 21살이 되던 해 아버지(빌 나이)로부터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알게 되고, 그 능력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팀은 사랑하는 것에 쓰겠다고 한다.
첫사랑은 처참히 실패했지만, 그 실패로부터 사람의 마음은 시간여행으로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팀은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메리(레이첼 맥아담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와 데이트에 성공하고 연인이 되는 과정이 영화의 전반부 대부분을 차지하는 편이다. 중반까지만 보면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에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섞은, 로맨스 영화라고 착각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지만,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는 영화 후반부에 시작된다.
팀과 메리의 행복한 결혼생활 중, 팀의 첫째 딸인 포지의 생일파티에 오던 팀의 동생인 킷캣(리디아 윌슨)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킷캣의 남자친구인 지미는 아침에 킷캣과 싸운 후 그녀가 술을 마시고 나갔다고 말하고, 음주운전으로 결국 사고가 나게 된 것이었다. 팀은 킷캣이 평소 행실이 좋지 않은 지미를 만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녀와 지미가 처음 만난 파티로 다시 시간을 되돌리지만, 다시 돌아온 현재에서 원래의 딸이었던 포지는 다른 아이로 변해있었다.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출산 후에 다시 시간여행으로 아이가 생기기 전으로 시간을 돌이키게 되면, 다른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간여행으로 킷캣은 행복을 찾았을지언정, 본인의 행복은 깨지게 된 것이다. 결국 팀은 다시 원래대로 시간이 흘러가게 두고, 킷캣을 설득해 지미와 헤어지고 술도 줄이도록 한다.
다시 일상이 흘러가지만, 이번에는 아버지의 시한부 판정이 팀에게 들려온다. 한달음에 달려온 팀에게 아버지는 시간여행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게 된다. 바로 '하루를 두 번 사는 것'인데, 첫 번째 하루는 그냥 평소와 똑같이 살아가는 것이고, 다시 시간을 되돌려 똑같은 하루를 다시 살아보는 것이 두 번째 하루인 것이었다. 팀은 같은 하루를 두 번 살면서, 처음에는 몰랐던 사소한 일상의 행복을 느끼고, 깨닫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메리는 아이를 한 명 더 가지자고 팀을 설득한다. 아마도 아이가 한 명 더 있으면 아버지의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메꿀 수 있으리라는 생각 아니었을까. 팀은 아이를 가지고 그 아이가 태어나게 된다면 시간여행을 해서 아버지를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에 망설이지만, 결국 아이를 가지기로 한다. 그들의 셋째 아이가 태어나기 바로 전 날에, 팀은 마지막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그와 아버지가 즐겨치던 탁구를 하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아버지는 팀을 보고는 단번에 이번 만남이 마지막인 것임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이 없냐고 묻는 팀에게, '산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한번의 시간여행을 한다.
팀과 메리의 비 오는 날의 결혼식 장면도 명장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간여행을 통해 젊어진 아버지와 꼬마가 된 팀이 집 근처 자그마한 해변에서 산책하는 장면이 가장 여운이 남는 장면이었다. 나도 아버지와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놀던 때가 기억나기도 했다.
마지막 씬에서 팀의 내레이션에서 그는 '더 이상 시간여행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날을 위해 시간여행을 한 것처럼'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간여행'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그가 그것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시간여행이 필요 없다는 사실이다. 다만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마음껏 즐기면서 살아간다면 말이다.
[어바웃 타임]을 사랑 영화로 본다면, 아마도 남녀 간의 사랑뿐 아니라 부자간의 사랑, 나아가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사랑을 그린 영화가 아닐까 한다. 흘러간 과거를 후회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사이에, '지금'이라는 찰나의 행복을 놓치고 있진 않았던가. 매번 이 영화를 볼 때면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인간은 시간에 속박당한 존재다. 모든 사람의 삶이 공평하진 않지만, 주어진 '현재'는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는 오로지 나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다. 실수가 되었든 절망이 되었든, 지금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매우 평범하지만 어려운 진리가 [어바웃 타임]이 주는 메시지인 셈이다. 그것이 설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게 내가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라면 말이다.
'나'는 모든 '시간'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다만 '현재'의 주체는 마음먹기에 따라, 분명히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