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사랑은 이렇게 끝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TV 방송을 틀면 나오는 특선영화들처럼, 매년 연말이 되면 보는 나만의 영화 리스트가 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이야기이다.
*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감안하셔서 보시길 권장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다시는 만날 수 없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기억. 오늘의 영화 이야기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2003년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다.
영화는 평범한 대학생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 분)와, 다리를 쓸 수 없는 장애인 조제(이케와키 치즈루 분)의 사랑이야기를 다룬다. '장애인'이라는 소재를 걷어내면, 영화는 사실 우리의 젊은 시절에 한 번쯤은 있을 법한,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과 헤어지는 과정을 매우 담백하게 그려낸다. 물론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사랑이라는 이야기가 평범할 수는 없겠지만 비단 그들의 사랑뿐이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중 우리 둘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일은 누군들 특별하지 않겠는가. 이 영화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최애 영화'로 손꼽히는 이유도 아마 그들이 겪었던 바로 그 이야기이기 때문이리라.
조제는 늙은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집에서 책으로만 세상을 배워온 사람이다. 그래서 츠네오와의 연애를 통해 직접 겪게 된 것들이 처음인 것들이 많다. 츠네오가 개조한 유모차를 타고 한낮에 외출을 하며 '저 구름도 가져가고 싶다'라고 말하던 때,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가장 무서운 것을 보러 갈 거라며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를 마주하던 순간, 생애 첫 바다를 보며 호기심에 가득한 눈동자를 반짝이던 모습에서 조제는 츠네오를 통해 세상 밖으로 비로소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보게 된다.
영화는 그들의 사랑이 이뤄지는 모습 뒤에, 시간을 뚝 잘라 1년 후를 바로 보여준다. 그들의 행복한 순간보다 그들이 어떻게 멀어지고, 헤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후반부의 주 내용이다. 가족의 중요한 제사에 조제를 데리고 가려는 츠네오는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을 떠나게 된다. 원래 찾아가려던 수족관이 휴관이라 조제와 다투게 된 츠네오가 동생과의 통화에서 듣게 되는 '지쳤어?'라는 대사에서, 그들의 헤어짐이 예고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원래 예정이었던 가족 제사에 가는 일정을 취소하고 그들만의 추억을 쌓는 조제와 츠네오. 바다를 보러 가는 길에 고장 난 휠체어 대신 새 휠체어를 사자고 말하는 츠네오에게 조제는 '네가 업어주면 되지'라고 말하지만, 츠네오의 대답은 어쩐지 시원찮다. 그들도 어느 연인과 다를 바 없이 서로 너무 익숙해졌고, 지쳐버린 것이다.
그날 밤을 보내게 된 '물고기 모텔' 씬에서 조제의 독백, 츠네오가 없어지게 되면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데굴데굴거리게 될 거라는 말, 그렇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말. 조제 또한 마지막을 덤덤히 준비하고 있었던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츠네오 덕분에 조제는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었고 조제 덕분에 츠네오는 진짜 사랑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통해 한 차례 성장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사랑에 조제가 가진 '신체적 장애'가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었을까, 내 생각은 그것은 일종의 '영화적 장치'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는 다만 사랑하는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서로의 차이가 조제가 가진 장애로 나타났을 뿐이다. 누군가에겐 경제적 차이, 누군가에겐 물리적 거리, 누군가에겐 가치관의 차이일 것이다. '사랑한다'라는 마음만으로 사랑할 수 있는 시기에 만난 사람을 통해, 모순적이게도 우리는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는 사랑하기가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덤덤하게 헤어지는 마지막 날 아침의 모습 이후, 길을 지나다 오열하는 츠네오와 혼자서도 잘 살아갈 것임을 암시하는 조제의 장면이 엇갈리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츠네오는 잘 살아갈 것이다. 보통의 사람처럼 평범하고 심심한 삶을 살며, 보통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리라 확신한다. 이번에 다시 영화를 보면서 내가 궁금했던 건 오히려 조제의 안부다. 그녀는 잘 살고 있을까. 심연 속에서 데굴데굴 굴러가는 조개껍질처럼 살아가더라도, 부디 그녀가 그녀만의 평안을 누리고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