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가족
원래는 각자의 사정으로 서로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 삼대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습니다.
1.
열여덟의 나이에 결혼을 하고 서른이 되기도 전에 남편을 사고로 잃은 이정순 씨는 오남매의 육아를 혼자 떠안아야 했다. 섬유공장 일부터 식당, 화장실 청소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아비 없는 설움을 자식들에게 느끼게 하고 싶진 않았지만, 첫째 영복과 둘째 영주는 중학교를 졸업한 직후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정순은 한창 청춘을 즐겨야 할 나이의 어린 딸들에게 하루 열두 시간의 고된 노동을 안겨줘야만 하는 현실이 내심 미안했으나 티를 낼 순 없었다. 영복과 영주 아래로 낳은 두 아들이 희망이었다. 셋째 아들놈인 경석이 은행원으로 취업을 성공했을 때에, 정순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 그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 진심으로 기뻐했다.
오남매 중 가장 똑똑했던 강경석 씨는 은행원이 된 후에, 피부관리사로 일하던 윤선영 씨를 선배 소개로 만나 결혼에도 성공한다. 평소에도 유난히 깔끔하고 예민한 성격인 경석과 통하는 구석이 많아, 첫 만남부터 느낌이 좋은 여자였다. 신도시에 아파트를 계약하고, 새 가족을 위한 차도 샀다. 선영은 결혼 후에도 일을 하길 원했고, 경석은 그간 모아둔 돈을 털어 집 근처 상가 건물에 작은 피부관리숍을 차려줬다. 미용 목적의 가게가 낯선 시기였음에도 장사는 생각보다 잘 됐다. 그러는 사이 경석은 승진을 했고, 둘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아이도 생겼다. 비록 자신은 아버지가 없이 자라왔지만 내 자식들은 그런 공백을 느끼게 하지 않으리라. 아들 진형을 처음 마주한 순간 경석은 다짐했다.
유난히 배움이 빨랐던 강진형 씨는 초등학교 때에는 전교 10등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영특한 아이였다. 일찍이 그런 재능을 알아본 부모님은 진형에게 수학이며 영어, 논술 등의 학원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중학생이 되자 성적은 오히려 떨어지기에 이른다. 아버지는 그런 진형을 다그치며 더욱 강도 높은 수준의 학원 스케줄을 가져왔고, 어머니는 좋은 말로 타일렀지만 실은 무관심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진형은 생각했다. 머리도 외모도 평범한 여동생인 보람이 부러웠다. 어쩌면 자신이 부모님의 기대를 온전히 다 떠맡고 있어서 보람은 평범한 아이들처럼 지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도 반항다운 반항 한 번 하지 못한 진형은 '인서울'에 실패한다. 어릴 때부터 너무 큰 기대를 받아서일지도, 과도한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진형은 그 원인을 중학교 2학년때부터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토피성 피부염 때문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유명하다는 한의원, 피부과, 대학병원을 전전했으나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병원에서는 공통적으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며 '충분한 휴식'을 취할 것을 권유했으나, 병원을 다니는 것, 그만큼 학업에 집중할 수 없는 것,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원망, 보기 싫은 외모로 인한 교내에서의 고립.. 아토피 자체가 곧 스트레스였고, 스트레스는 곧 증상 악화를 불러왔다. 수능 직전 모의고사 성적 때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받아 든 진형에게 부모님은 재수를 권했으나,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신물이 나버린 진형은 처음으로 부모님 말을 거부했다. 몇 차례의 대화와 더불어 아버지의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살고 있는 지방의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진형은 사실 대학조차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2.
정순은 어느 날 집에서 허리를 다쳤는데, 그 후로 거동이 불편해졌다. 경석은 어머니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지만 정순은 '괜찮다'며 한사코 거부했다. '아픈 어미가 되어 아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는 허울 좋은 말일 뿐이었다. 정순의 마음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들에게 짐이 되고 싶었다. 깍쟁이 같아서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영선을 며느리로 맞이한 것도 한 집에 모시고 살겠다는 약속 때문이었다. 남편 몫까지 일해서 성공시킨 아들, 누이 둘을 중졸로 남기면서까지 성공시킨 아들에게서 이 정도 보상은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몇 차례의 실랑이가 오갔지만 끝내 정순은 의료시스템의 혜택이 아닌 아들의 요양보호를 선택한다. 그녀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경석이, 오남매 중 가장 아끼던 아들이, 자신을 외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정선은 그렇게 누운 채로, 방 안에 방치되고 만다.
경석은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뒤, 지인과 함께 PC방을 차렸다. 평소에도 사업수완이 좋았던 지인은 PC방 이외에도 몇 개의 가게를 가지고 있었기에 '전반적인 운영은 알아서 할 테니, 돈만 투자해 달라'는 말에 퇴직금을 쾌척했지만, 몇 해 지나지 않아 문을 닫게 되었다. 남은 돈을 투자한 주식차트는 연일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아내 선영과 사이가 나빠진 일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보람의 대학진학을 이유로, 선영은 딸과 함께 집을 나갔다. 25년간 은행원으로 살아오면서 돈의 흐름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경석은 빈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오십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온 관성은 쉽게 바꿀 수 없는 법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오늘도 한 사람이 쓰기엔 유난히 넓은 방 한편에 구부정하게 앉아, 컴퓨터 화면을 하루 종일 쳐다본다. 오남매 중에 내가 가장 우수하다는 우월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내가 실패했을 리 없다'는 오만함이 섞인 채로.
진형의 대학생활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고등학교에 오고 나서부터는 교우관계랄 것이 전무했던 터라, 또래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진형은 아토피 때문에 울긋불긋한 자신의 얼굴을 보는 낯선 사람들의 표정이 싫었다. 더러운 것이 옮을까 경멸하는, 미간을 찌푸리고 한쪽 입술을 삐죽 내민 표정 말이다. 처음 그 구겨진 얼굴이 경멸의 신호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버지의 얼굴에서부터였다. 결벽증에 가까우리만큼 유난히 깔끔한 성격이었던 아버지가 무언가 더러운 것을 마주했을 때 짓던 표정을, 언제부터인가 아들의 얼굴을 보며 짓고 있었다.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린 것도 그쯤이 아닐까, 하고 진형은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 강제로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묘한 기쁨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교과서를 통해 배울 수 없는, 경험적으로 깨우쳐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몇 차례의 어색하고 서투른 과정과 치명적인 실수의 결과로, 진형은 대학에서조차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가 되었다. 눈길을 끄는 외모라면 예쁘고 잘생긴 녀석들만큼이나 튈 텐데, 못생긴 외모는 어째서 관심에서 빗겨나가야 하는 것인지 생각할 때면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결국 군대를 가겠다는 핑계로 - 사실 아토피 때문에 입대가 가능하기야 하겠냐만은 - 한 학기만에 휴학을 했다. 지금의 그는 점심때쯤 일어나 구직사이트를 30분 정도 훑어본 후에, 웹툰을 보고, 태블릿 PC로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보낸다.
3.
이 이야기는 사실 필자의 외가에 있었던 일들을 어느 정도 각색한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정순/경석/진형은 각각 외할머니/외삼촌/사촌동생을 모티브로 만든 인물입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부분은 상상을 덧붙여 지었지만, 큰 사건들은 실화를 기반했습니다.
외할머니는 누워만 있다 다리에 근육이 다 빠져 걷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남매 중 첫째인 큰 이모와 둘째인 저희 어머니가 번갈아가며 돌봐주다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게 됩니다. 지금도 요양병원에서 생활하고 계세요.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지, 같은 병실의 환우 분들이며 요양보호사 분들과도 자주 싸우시는 모양이라, 외할머니의 자식들인 어머니의 남매들은 곤란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외삼촌의 부고는 너무 갑작스러웠기에, 가족과 친지들이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외할머니가 요양병원으로 옮겨지고 난 후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였어요. 원인은 뇌출혈로 밝혀졌는데, 공교롭게도 사촌동생이 최초 발견자였습니다. 외할머니는 외삼촌의 사망 사실을 몇 년 동안은 모르시다가(가족들이 외할머니께서 충격받으실까 알리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요양병원 생활이 익숙해지셨을 때쯤 알렸다고 해요. 외할머니는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다는데,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그 후부터 요양병원 내 요주의 인물이 되셨다고 합니다.
사촌동생은 외삼촌의 상을 지낸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서울로 갔습니다. 현재는 외숙모와 여동생과 같이 지내는 걸로 알고 있고, 대학교도 졸업 후 취업도 해서 직장생활도 잘하는 것으로 들었어요. 삼대가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지내던 집은, 한 사람씩 자리를 비우다 모두가 떠난 공간이 되었습니다. 가끔 그 아파트를 지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이 떠오르곤 했어요. 십여 년이 지나서야 마침내 글로 풀어낼 수 있게 되었네요.
4.
때때로 부재는 존재보다 크게 느껴집니다.
삼대의 이야기를 구상하다 문득, 어머니는 오랜 세월 아버지 없이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외삼촌과 사촌동생 간의 관계에서 '아버지의 부재'가 어떻게 작용했는지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부재' 또한 저에게 분명 영향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 소설로 풀어내려던 글이 에세이로 변했고, 진도가 나가지 않아 답답했던 이야기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고, 어머니에게 간섭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가정에 헌신할 것을 원했지요. 서로가 원하는 것이 너무나 극명히 달라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오죽했으면 제가 먼저 어머니에게 이혼하라고, 돈은 어머니와 저, 누나 셋이서 어떻게든 벌면 된다고 설득했을 정도였어요. 어머니가 지금까지도 끝내 그러지 않은 이유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아비 없는 설움을 당신 자식에게는 남게 하고 싶지 않아서, 못난 아비라도 없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어머니와 아버지는 별거 중입니다. 아버지와는 연락을 하지 않은지 몇 년째가 되어가고 있어요. 저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모은 돈을 도박으로 날리고, 빚을 지고, 가족을 가난과 불안에 허덕이게 하는 이 사람이 미웠습니다.
'나는 이 사람처럼 살지는 않을 거야'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 결혼을 왜 한 걸까'
이런 생각을 오래도록 해왔습니다. 제가 제일 많이 겪은 가정의 형태가 이 모양이기에, 결혼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우리 가족의 불행이 순전히 아버지 탓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요.
삼대 이야기 속 정순은 자신의 결핍(남편의 부재)을 자식인 경석에게 투사합니다. '온 가족이 너 하나만 기대하고 있다', '모두가 너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그런 압박 속에서 자라게 된 경석은 까탈스럽고 예민한 사람이 되죠. 그리고 자신의 결핍(아버지의 부재)을 다시 아들인 진형에게 투사합니다. 근엄하고 엄격한 아버지 역할을 수행하는 겁니다. 타고나기를 소심한 성격인 진형은 부담을 이기지 못합니다. 부모의 결핍은 자식에게 이어집니다.
어머니 또한 '아버지의 부재'라는 결핍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상적인 아버지'에 대한 관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열여섯의 나이에 공장에 나가 일을 해야만 했던 소녀에게는 가정적이고 자상한 아버지가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처음에 그 결핍을 투사하는 대상은 아버지였던 것 같아요. 아버지에게 자상하고 가정적인 가족구성원이 되기를 바랐던 거죠. 기질상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다음 대상이 저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투고 난 후로 항상 저에게 '너는 커서 저래 되지 마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단순히 화를 푸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부모님의 싸움을 지켜보고,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아버지 쪽이었고, 남아서 누나와 저를 달래주던 것은 항상 어머니였기 때문에 성장기의 저에게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어쩌면 지상과제와도 같은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머니는 제가 좋은 사람을 만나 예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랐겠지요.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편으로, 아버지로의 역할을 하면서 말입니다. 어디부터 엇나가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기 위해 결혼 자체를 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이로써 저는 어머니의 바람을 저버리고, 아버지처럼 가정의 굴레에서 벗어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모님 모두에게 공평한 결과일지도요.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제가 참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어디 하나 특출나게 잘나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것도 그렇고, 우유부단하고 게을러서 똑 부러지는 구석이 없는 것도 그러합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이룬 것이 없고 방황하기만 하는, 부끄러운 인생인, 내 아비의 과거가 자꾸 보입니다.
어쩌면 아버지는 제가 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었을지도요.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가, 지금의 저에게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제가 밉습니다.
5.
원래는 각자의 사정으로 서로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 삼대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습니다.
쓰던 이야기는 사실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것도 제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고
저의 이야기였습니다.
가족은 당연히 사랑하는 존재이기에
또 미워하기도 쉽습니다.
나이가 찰 수록 자신이 밉고
내 가족이 밉고
가족이라는 것이 미워질 때가 많아집니다.
어쩌면 그만큼 사랑해서일까요.
그래요.
사랑하고 또 미워해야겠지요.
조금 덜 사랑하고 조금 덜 미워하기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