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가을

낯익은 새 계절

by 최필록

항히스타민제와 부산국제영화제로 몽롱했던 주간이었다.

어제는 [여행과 나날]이라는 영화를 봤다.

영어판 제목인 [Two Seasons, Two Strangers]에서 알 수 있듯 영화에는 여름과 겨울 두 계절과, 각각의 계절을 여행하는 낯선 이가 등장한다. 아주 재미있거나 뛰어난 작품은 아닌데도, 마음에 파장이 일었다.

비로소 여름을 졸업하고, 새 계절을 맞이할 준비가 된 기분이었다.


요즈음의 가을은 어쩐지 여름과 겨울 사이에 끼인 시기인 것만 같다.

극단적이었던 작년의 경우엔 추석 때까지 30도를 웃돌 정도로 여름이 길었고,

당연하게도 가을은 여행객마냥 짧게 머물다 사라졌다.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모습이 그래서였을까, 생각보다 일찍 찾아온 서늘함이 반갑다.


영화제 시즌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해 부산 이곳저곳을 다니다

저녁 상영시간이 되면 센텀시티에 와서 영화를 보곤 했는데,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자니

마치 나 또한 여행을 온 것 같았다.


여독을 풀듯 정오가 넘도록 잠을 잤다.

날씨 앱에서는 가벼운 비가 내린다고 했다.

필시 공기가 무거워져서 내리는 것이 비일 텐데,

'가벼운'이라는 표현이 맞는 건가, 따위의 생각을 했다.


창문을 열자 툭, 툭.

비가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다시, [여행과 나날]을 생각한다.

여름과 겨울, 두 가지의 이야기.

공통적으로 비(혹은 눈)가 온다.

여름철 태풍이 몰고 온 비는 세차고, 어쩐지 무거운 느낌이다.

차가운 계절의 눈은 약한 바람에도 휘청일 만큼 가볍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벼운 비'라는 표현이 이해가 될 것만 같았다.

바람이 선득하게 품에 닿을수록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은 가벼워지는 거구나, 하고 말이다.


하여, 오늘은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비가 가볍게 내리는 날이어서

이윽고, 가을이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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