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보는 TV프로그램인 [싱어게인]에 김이나 작사가가 '노래는 부르는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sing'이 아닌 'call'의 뜻으로 들리더라고요. 노래는 사랑의 언어이기도 하니, 누군가를 부르기(call) 위해 부르는(sing) 것 또한 말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처럼 명사 중에는 특정 동사와 짝을 지었을 때 알맞는 옷을 입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노래는 부르는/듣는 것
글은 쓰는/읽는 것
마음은 보태는/나누는 것
이런 식으로 주변에 있는 말들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어요. 이런저런 낱말 사이를 떠돌다 도달한 곳은 '사랑', 근원적이면서도 궁극적인 가치의 감정입니다. '사랑'에 가장 알맞는 동사는 어떤 것일까요. 부모님께서 주신 것을 항상(지금도) 받아왔으니 '받는 것'이 맞는 건지, 타인의 마음에는 끝내 닿지 못하는 '나'에게 감정의 단어는 결국 개인적일 수밖에 없으니 '주는 것'으로 충분한 것인지. 일부러 오래 걸리는 길을 돌아가보니, 답은 더 명확해집니다.
'사랑'에 가장 알맞는 옷은 '하다'
사랑은 그저 하는 것. 다른 동사로 표현하면 조건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요. (잘은 모릅니다만) 영어로 'love'가 명사인 동시에 동사인 것도 같은 까닭이지 않을까요.
사랑하다
사랑을 하다
사랑이 하다
처음에는 '사랑하다'의 뜻이 '사랑'이 객체인 '사랑을 하다'만 있는 거라고 여겼는데, 생각해 보니 사랑은 주체이기도 한 것 같아요. 사랑은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물질을 빌려서 세계에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봅니다. '인간human being'이라는 범주보다 더 큰 테두리를 가진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사랑이 주체가 되는 것 또한 말이 안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사랑이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이 많으니까요.
다시 [싱어게인] 이야기로 돌아와서, '노래부르다'라는 동사에 객체와 주체를 다시 한 번 적용해보면,
노래부르다
노래를 부르다
노래가 부르다
이렇게 적을 수가 있겠네요. 어쩐지 노래가 객체일 때는 sing의 느낌이 강하고, 노래가 주체가 되자 정말로 call의 느낌이 강해집니다. '노래는 부르는 것'이고, 노래는 사랑의 언어이기도 하니, 노래가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 부르는 것 또한 분명 사랑일 테지요.
생각을 이렇게까지 펼쳐놓고 나니, 명곡들이 시대를 초월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기도 합니다. 저는 특히 고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하는데, 진실로 '노래가 부르는' 느낌이란 이런 것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가객(歌客)이라는 그의 별명이 떠오릅니다. 그가 손님처럼 살다 간 동안, 한순간도 쉬지 않고 분명 사랑했을 겁니다. 노래가 그의 목소리를 통해 부르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