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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은 Dec 31. 2020

#5 민낯의 나를 만나다

부모는 그냥 되는 줄 알았다

  우리집에 2호가 태어났다. 처음에 2호의 출현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슬슬 복직 준비를 하고 있었고, 1호의 어린이집을 알아보는 중이었기에. 2호의 소식은 오묘한 감정이 들게 하는 일이었다. 마치 인생 계획이 다 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다가도, 2호의 얼굴은 또 누굴 닮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동시에 폭발했으니. 한마디로, ‘내 마음을 나도 도저히 모르겠다’였다. 


  비교적 1호에 비해 입덧은 괜찮았다(1호 때는 7개월가량 아무것도 못 먹고 수액으로 간신히 버텼었으니까). 임신 7개월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잠깐이지만 복직의 맛도 경험했더랬다. 그런데 ‘두 아이 엄마’로의 전환이 마음 가운데에서 도저히 수용이 안됐었다. 둘째를 생각하지 않았기에, 첫째한테 정말 최선을 다 했었고, 후회하지 않게 양육하리라 마음먹으며 꾹꾹 참아온 나의 인내심이 드디어 용량 초과라고 사인을 보내기 시작했다.


  2호 출산 이후, 짜증이 많은 엄마의 모습으로 내내 있었고, 그런 모습이 나 자신도 거부반응을 느낄 만큼 괴리감을 갖게 했다. 몸이 피곤한 건 둘째 치고, 첫째 때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일들이 하나하나 못마땅한 마음으로 채워졌다. 1호 때 모유수유를 오랫동안 했었기에 2호도 모유수유를 해야지 마음먹었던 나의 계획과는 반대로, 호흡이 수월하지 못한 2호는 먹는 족족 분수처럼 토해냈다. 1시간 겨우겨우 분유를 조금씩 먹인 후 세워서 트림도 시키고 다시 토하지 않도록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고스란히 쏟아내는 2호를 보며 참지 못하고 폭발해 버렸다. 아이 역시도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내겐 모든 상황이 갑자기 일어난 재난과 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말도 안 되는 억지 같은 감정이었다. 2호가 태어나 준 것만으로도 나날이 행복한 삶을 사는 지금을 생각한다면, 2호에게 죽을죄지은 듯한 마음이 들 정도다.


  어찌 됐든 그때는 그랬다. 유난히 까탈스럽고 고집스러웠던 2호의 등장은 부모 중심으로 이끌었던 삶의 패턴도 아이 중심으로 바뀌는 기준점이 되었다. 부모의 말에 순응하며 고집이라곤 1도 없던 우리집 1호와는 다르게 매우 강력한 녀석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전환 시점에 부모인 나는 꽤 부적응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이고. 


  우리 부부는 2호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더랬다. 세상에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며 길바닥에 드러눕는 아이를 우리집에서 볼 줄이야. 게다가 2호는 하루를 알차게 보냈는데 주로 사건사고가 태반이었고, 떼쟁이, 막무가내, 소통불가의 모습을 보였더랬다. 정말이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오 마이 갓'을 외쳤더랬다. 신을 부르짖지 않고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었달 까. 


  냄비, 신발장, 싱크대 서랍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뛰어 들어가서 시위를 해댔고, 징징거림을 넘어 통곡 수준의 떼는 가히 놀랄 만큼의 역대급 수준이었다. 밖에 나가는 건 꿈도 꾸지 않았고, 집에서도 통제가 어려워 눈을 돌리기 어려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에 맞춰 나 역시도 소리 지름을 넘어 괴성 수준의 소리를 매일같이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때껏 큰 소리를 내 본 적 없이 살아온 사람이 바로 나였는데 말이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두성을 쓰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어찌나 소리를 질러댔는지 머리가 매일같이 울리다 못해 아팠고, 급기야는 CT를 찍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손해를 감수했던 내가, 사람 있는 곳에서도 아랑곳 않고 아이를 혼낼 수 있는 대범함도 생겼으니, 이제껏 ‘나’라 여겼던 것은 진짜 내가 아니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더 놀라웠던 건, 나의 부조리함과 잔인함에 대해서였다. 어쩌다 아빠가 일찍 들어온 날에는 소리를 덜 지르는 내 모습에, 나조차도 소름이 돋을 정도의 이중적인 모습이라 놀라웠다. 나와 아이들만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나의 행동에 섬뜩함을 느꼈고, 반성도 많이 들었었다. 스스로 꽤나 양심적이고 도덕적이라 자부했건만, 영락없는 악함이 있었고, 죄성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선하다고만 여겼고, 악하다는 건 그 사람을 악한 상황으로 몰았기 때문이라 여겼던 나였지만, 이 시기를 겪으며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사람은 죄성 가득하고 충분히 악할 수 있는 존재라고. 


  그뿐이겠는가. 아이들을 혼낼 때 도망갈 구멍조차 주지 않고 아이를 코너로 몰아세우는 나 자신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아이가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기분’ 때문에,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정말이지 최악이란 생각마저 들었었다. 


  때때로 부모상담을 하다 보면, “쟤는 대충 잘못했다고 하면서 그냥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요. 나쁜 애예요. 진짜 반성을 모른다고욧!”라고 하는 분들을 종종 본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들에게 ‘진정한 반성’을 강요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진정한 반성’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에 대해 부모상담 때 열을 올리며 설명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정말 부끄럽게도 나 역시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진정한’ 반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그저 내 주관적인 ‘느낌’이었다는 것을. 그냥 나는 아이가 금세 아무 일 없는 듯 행동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었다. 내 주관적인 ‘느낌’만으로 나는 아이를 몰아세웠던 것이다. 물론 이런 나의 부조리를 빨리 바로 알아차렸다. 다행히도 지금껏 내가 아동심리전문가로서 훈련한 부분이 내 스스로 빨리 정신 차리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1호, 2호 두 아이를 양육하면서 느낀 건, 나는 참 ‘훌륭하지 않다’라는 것이었다. 내가 참으로 약하고, 어리석고, 때론 잔혹하며, 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뼈 속까지 느낄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었다. 아무리 내가 성숙해지기 싫어도 ‘억지로’ 자기 성찰이 될 수밖에 없는 시간들을 갖게 되니,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이 곧 ‘성숙의 길’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냥 엄마도 괜찮다’라는 것.


 ‘훌륭한’, ‘친구 같은’, ‘멋있는’,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뺀 ‘그냥 엄마’가 되자고 결심했다. 이런 수식어를 의식한다면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러운 내가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결국 이런 것을 보상하기 위해 또다시 억지스러운 고집을 부린다면 누군가는 또다시 상처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나는 아이들을 통해 배웠다.      



p. s. 우연히도 2020년 한 해를 과거의 저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마무리하게 되는 글을 올립니다. 2021년도 억지 성숙이 일어나겠죠? 우리 모두 관계를 통한 성숙. 고통스럽지만 함께 해보면 좋을 듯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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