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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은 Jan 29. 2021

#10 완전체가 되다

부모는 그냥 되는 줄 알았다

  3인에서 4인 가족이 되었을 때 힘의 균형이 생기는 것 같았다. 사실 1호만 있을 당시엔 아무래도 부부 위주의 삶이 중심이었고, 아이는 부부인 우리의 기준에 많이 따르게 되는 구조였다. 1호가 말랑말랑 유순한 아이였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고집불통 2호가 태어났을 때, 당혹스러운 경험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외식을 하기에도 수월했고, 어딜 가나 예쁨 받고 주목받는 1호를 데리고 다니는 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식당을 가서도 “어머, 너 예쁘다. 아줌마가 이거 보여줄까?”하며 1호를 데려가려고 서로 아우성이었고(조금 과장되어 이야기하자면 말이다), 길 가다 1호가 예쁘다며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양해를 구하는 젊은 커플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낯선 사람을 봐도 방긋방긋 웃어대는 통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안겨서 파도타기를 할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인기 짱 이였다. 그 덕에 부모인 우리는 맘 편히 식사를 할 수 있는 혜택까지 누렸더랬다.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아이가 하나면 아이 중심이 된다던데, 우리집은 오히려 부부 중심에 더 가까웠다. 그런데 2호가 태어나면서 우리집은 아이들 중심이 되어버린 것이다. 첨엔 정신없이 끌려가듯 시간이 흘러서 눈치 채지 못했으나,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너무 아이들 중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어서 이전의 생활이 그립기도 할 지경이었다. 


  아이들 식성에 맞는 반찬과 장보기, 수면시간에 맞춰 짜여진 자투리 자유 시간, 아이들 필요에 맞춘 소비패턴까지. 온통 아이들 위주로 움직이게 되었다. 


  실생활은 또 어떤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 강한 2호로 인해 외출을 하더라도 상당히 계획적으로 움직여야만 했고, 만약 문제 발생 시 플랜 B를 가동할 정도의 촘촘한 예측 시나리오를 짜는 건 일상이 되어버렸었다. 외식 메뉴를 짜더라도, 예전 같으면 1호가 먹을 수 있는 걸 따로 싸가는 한이 있어도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메뉴를 먼저 골랐겠지만, 미슐랭 입맛 버금가는 2호가 떡하니 있으니 1호, 2호 모두 먹을 수 있는 곳을 선택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엄마, 아빠는 사실 먹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으니까 하는 합리화를 애써 하면서 말이다.


  사실 2호의 출생 덕분에 1호는 그동안 마땅히 받아야 하는 자신의 권리를 상당 부분 다시 되찾는 쾌거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순한 아이일수록 부모의 관심을 끄는 힘이 약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성격 짱짱한 2호로 인해 부모로부터 정당하게 요구되어야 했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되찾으며, 오히려 1호와 2호는 서로에게 윈윈이 되었던 거 같다. 


  여튼 우리집은 드디어 4인 가족이 되었고 시기와 질투, 반목이 횡횡하는 하나의 사회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형제간의 싸움, 부모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암투가 난무하게 되었고, 어떨 땐 서로 부모에게 예쁨 받기 위해 경쟁까지 하는 등 사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것들이 우리집에서 날마다 일어났다. 그러니 이것이 바로 전쟁 같은 삶이구나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어느 날 문득, 속 알맹이는 완전하게 아빠지만 내 모습을 닮은 1호와 속알딱지가 딱 나를 빼다 박았지만 겉모습은 아빠 그대로인 2호를 보며 ‘이게 행복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2호를 임신했을 때 막연히 누굴 닮았을까? 어떤 모습일까? 이 아이는 또 어떤 일들을 할까? 하는 궁금증이 가득했는데 어쩌면 지금 바라보는 이 풍경이(하필 거실에서 두 아이의 치열한 싸움을 구경하는 중에 이런 생각이 들다니) 그때 내가 기대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지지고 볶는 이 순간과 일상들이 생각지도 못한 선물처럼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마치 앨범 속에 소중히 간직될 빛나는 한 장면처럼 말이다. 


  정말로 완벽하게 잘 구성된 완전체가 된 듯한 기분. 어느 것도 기울임 없이 아이들과 부모인 우리가 서로에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말이다. 처음 넷이서 자동차에 타며 좌석 하나 남지 않고 한 자리씩 차지하고 출발했을 때, 이보다 더 완벽한 수가 있을까 싶으면서 충만하기까지 했다. 별게 다 충만하다 라고 한다면 특별히 반박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엄마’, ‘아빠’ 다음으로 ‘헝아’라는 말을 시작으로, 주구장창 ‘헝아’를 찾아대고 불러대는 2호를 보며 내심 뿌듯해하기도 했었다. 함께 두 손을 들고 나란히 벌 설 때도 마찬가지였고. 아빠가 가방 바꿔가며 외국으로 갈 때에도(남편의 직업을 모르는 주변인들은 무역업을 하는 사람인 줄 알았을 정도였으니) 두 아이는 오히려 내게 힘이 되었다. 아이들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고 내 대신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음 가운데 아이들은 내게 있어서 기둥처럼 든든하게만 느껴졌다. 솔직히 이런 마음은 1호만 있을 당시엔 느껴보지 못한 마음이었다. 


  1호만 있을 때는 모든 걸 엄마인 내가 해야 한다 여겼었고 무언가를 주어야 하는 입장이라 생각만 해서 부담감이 상당했었던 것 같다. 항상 마음이 분주했고, 해도 해도 일이 줄지 않는 느낌이었다. 무언가를 할 때면 마치 뭔가 빠진 듯 부실한 느낌이 들어서 늘 나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했었다. 아마도 부부 중심으로 흘렀던 것 못지않게 아이에 대한 책임과 의무 또한 막연히 혼자 짊어지려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호가 생기자 그런 마음을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되었다. 두 아이를 모두 ‘완벽하게’ 돌보는 것에 대해 진즉에 포기하게 되었고 내가 슈퍼우먼이 아님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으며  남편과 1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된 것이다. 드디어 4인 가족이 되면서 ‘함께’하는 맛을 알게 된 것이었다. 


  사실 2호가 “헝아 헝아”하며 부르짖게 된 것도 다 내가 1호에게 의지했던 결과이기도 할 터였다. 내 손길이 닿지 않는 그 순간순간을 1호가 메워주었고, 1호에게 소홀한 부분을 아빠가 채우면서, 우리집은 진정한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 모두가 완벽하진 않지만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상호 보완하면서 밸런스를 유지하듯이 말이다. 


  누구보다 서로 앙숙처럼 지내다가도 밖에 나가면 서로를 돌보고 편들어주기 바쁜 형제를 보며, 남편과 나는 “우리 애들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지?”하며 대견한 마음이 들곤 한다. 이런 게 행복이 아닐까? 고성이 난무하고 왜 했던 소리를 또 하게 만드냐며 호통을 치더라도(사실 이런 날이 더 많다), 이런 게 참 행복의 맛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다니. 내 마음의 아량이 넓어진 건 분명 아닐 테니, 입에서 절로 흘러나오는 감사함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런 순간에 나는 ‘아 이게 진짜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 그 생생한 삶의 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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