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그냥 되는 줄 알았다
엄마로서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지금 내게 “뭐가 그렇게 자신 있었어?”라고 묻는다면,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할 거면서 막연하게 엄마 노릇을 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아마도 전공자의 허황된 자부심이었을지 모른다. 임신도 하기 전에 석사 논문 주제로 ‘직장맘의 양육 경험’에 대해 쓸 생각부터 했던 걸 보면, 꽤나 교만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출산 후 바로 복직할 거라는 막연한 확신을 했던 걸 보면.
여하튼, 나는 하루하루 전공자라는 자부심이 무참히 깨지는 나날들을 보냈다. 책에는 아이에게 3시간에 한 번씩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자주 갈아주어야 한다고만 적어놨지, 3시간 중 1시간이나 땀 뻘뻘 흘리며 모유를 먹여야 한다고는 적혀있지 않았고, 아이가 먹자마자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자지러지게 우는 일이 일어난다고는 그 어디에도 적어놓지 않았다.
하물며, 그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고는 더더욱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들이었다. 연애를 글로만 배우면 탈이 난다더니 양육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엄마들이 너도나도 맘 카페에 들어가 선배 맘들의 이야기를 마치 전문가의 정답처럼 맹신하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의지할 데가 없는 엄마들의 유일한 동아줄일 테니.
준비된 부모가 과연 있을까?
책으로 배우는 건 그냥 ‘아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는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경험한 것도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는 것’ 일뿐이다. 12년 넘게 영어를 배웠지만, 여전히 입 밖으로 말 한마디 뱉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양육도 아직은 ‘내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에서 들 “그러니까 미리 엄마, 아빠 준비를 해야 해.”라고 말한다. 이게 과연 준비가 되는 일일까?
글쎄. 나는 좀 회의적이다. 아이를 양육하는 건, 부모와 아이가 관계를 통해 하나의 건강한 인격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경험인 것이다. 아이와 내가 함께 합을 맞추며 우리만의 시간을 공유하고 감정을 나누며 울고불고 힘든 시기를 겪으며 함께 자라기를 결심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기꺼이 그 힘겹고 고된 시간 안으로 뛰어들 용기를 가지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부모가 해야 하는 준비의 전부라 생각한다.
아이는 한 사람의 인격체다. 그러니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다. 사람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곳곳에서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진 않을 터다. 그러니 아이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 부모가 미리 무엇을 준비할 수 있겠는가. 그저 맞닥뜨려야 한다. 다만, 우린 기꺼이 우리 스스로 그 경험 안으로 뛰어들었으니 솔직해져야 하는 것이다. 아이의 배냇짓에 맘껏 흥분하며 행복해하고 양육의 첫 경험에 경이로워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아이로 인해 엉망진창인 삶에 대해 좌절하고 괴로워하며 힘들어하는 것 역시 한껏 겪어내면 되는 것이다.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부모가 물건을 만들어서 어디 내놓는 것과는 다르니까. 부모 마음대로 예측해서 준비할 필요는 없다. 장담컨대, 부모가 준비한 건 아무 소용없을 것이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의 1부터 10까지 한 개도 없을 테니 말이다.
부모는 자칫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건)’로 여기거나 자신이 만들어내는 ‘대상물(물건)’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이걸 조심해야 한다. 아이는 절대 ‘대상물(물건)’이 아닌 ‘대상(인격)’이라는 것. 아이를 어떻게 양육하고 어떤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며 등등. 이 모든 것들은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를 자신의 소유나 대상물로 보는 태도다. 그러니 부모가 되기 전에 해야 하는 준비는 한 가지다.
아이를 어떻게 하면 존중하면서 양육할 것인가?
부모는 끊임없이 아이를 하나의 인격적인 대상으로 생각하며 존중하는데 힘써야 한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나 역시도 지금까지 우리집 1호, 2호를 양육하면서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