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프롤로그 글에 보내주신 예상치 못했던 여러분들의 '라이킷'이란 반응을 주셔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본격적인 연재를 시작하며, 오늘은 제가 브런치 작가 신청을 위해 정성껏 써 내려갔던 세 편의 원고 중 첫 번째 글을 나누고자 합니다.
브런치가 저를 작가로 선택해준 이 글들이, 여러분의 광야에도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밤 9시, 책상 위 스탠드의 부드러운 LED 빛 아래 노트북을 편다. 화면에는 며칠째 붙들고 있는 파이썬 터미널이 떠 있다. 작년 말 C 언어를 잠깐 만지다 포기했던 기억이 스치지만, 파이썬은 그래도 기초가 수월해 보였다.
그런데 막상 문제를 풀려고 하니 여전히 만만치 않다. 간단한 코드 하나를 붙들고 벌써 몇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화학공학 박사, 공중보건학 석사, 목회학 석사까지 세 개의 학위를 따며 평생 전문가로 살아왔다. 미국 유학, 한국 기업 근무, 은퇴 후 투병과 기적 같은 회복, 대학 강의까지. 그때까지만 해도 노년은 평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난 1년 반, 모든 것이 송두리째 날아갔다. 어리석은 선택의 결과였기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벌어놓은 돈으로 편안히 보내야 할 나이에 맞닥뜨린 ‘광야의 시간’은 잔인했다. 주변의 시선은 “인생 끝났다”라고 말하는 듯했고, 나 역시 재기 불능이라는 생각에 뼈를 깎는 고통을 겪었다.
절망의 굴레에서 나를 건져 올린 것은 오랜 기독교 신앙과 내면 깊숙이 숨어 있던 강함이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수없이 탄 끝에, 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패배의 인정이 아니라,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도약의 각오였다.
세상은 ‘나이’라는 틀 안에 우리를 가두지만, 나는 이 틀을 깨고 싶다. 이런 시련이 없었다면 나 역시 그 틀 안에서 안락하게 늙어갔을 것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마지막 변화를 준비했듯, 지금 이 시간이 나를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장소일지도 모른다.
최근 도서관에서 니체의 『위버맨 쉬』를 접했다. 무신론자 철학자의 글이 낯설었지만, 통찰은 성경의 잠언처럼 현실을 꿰뚫었다. 그중 한 문장이 가슴을 쳤다.
“허영심은 우리를 움직이는 작은 엔진이다.”
허영심은 흔히 나쁜 것으로 치부되지만, 지금 내게 그것은 자기 개선의 의지이자 존엄의 발로다.
남에게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제보다 나은 나를 꿈꾸고 무너진 현실 속에서도 나만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절박한 생존 본능이다.
공학적으로 엔진은 압축비가 임계점에 도달해야 폭발한다. 지금의 경제적 시련과 차가운 시선은 나라는 엔진을 다시 돌리기 위한 강력한 압축 과정이다.
니체는 내 안의 열망을 죄악시하지 말고 창조의 불꽃으로 태우라고 말하고, 성경은 주어진 빛을 두려워 말고 사랑의 통로로 삼으라고 가르친다. 이 두 가르침이 기묘하게 만난다.
결국 이 ‘허영심’이라는 엔진은 나를 과시하기 위한 족쇄가 아니라, 꿈의 목적지까지 실어 나를 강력한 동력이다.
나는 이제 이 엔진을 현명하게 조율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삶이라는 예술 작품을 완성해 나가려 한다.
완벽할 필요도, 남처럼 될 필요도 없다. 2월부터 시작할 새 일터—초등학교 방과 후 학습 보조—는 나의 기본 생활을 지탱해 줄 것이고, 새벽과 밤에 쓰는 이 기록들은 영혼을 지탱할 것이다.
화면 속 오류가 하나씩 해결될 때마다, 나는 여전히 ‘성장 중’ 임을 느낀다.
오늘, 나를 비웃는 세상을 향해 담담히 선언한다. “나는 여전히 나를 완성해 가는 중이다.”
참고 도서: 『위버맨쉬』, 프리드리히 니체 저 (어나니머스 역, 떠오름, 2025)
함께 읽으면 좋은 첫 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philosopher-eng/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