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바느질을 시작하였다
장미꽃에 떨어지는 빗방울
새끼고양이의 수염
빛나고 있는 구리 주전자
따뜻한 털장갑
줄로 묶인 갈색 종이 포장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이지요
크림색 망아지
사과로 만든 과자
문에 달린 종
썰매에서 딸랑거리는 방울
국수를 곁들인 고기 요리
달빛에 날개를 반짝이며 날아가는 들오리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입니다
푸른 새틴 띠를 두른 하얀 드레스의 소녀
내 코와 눈썹에 떨어지는 눈 조각
봄에 녹아드는 흰 은빛 겨울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입니다
개한테 물렸을 때
벌한테 쏘였을 때
슬픈 기분일 때
그것을 생각하면 싫은 기분은 없어집니다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의 넘버, 내가 좋아하는 것[My favorite things]의 노랫말이다. 이 노래는 천둥치는 밤에 무서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마리아가 불렀다. 슬플 때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내용이다. 영어로 듣는 것이 운율이 살아 제맛이다.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다.
나는 뭔가를 손으로 직접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손이 많이 가는 한식 요리도 귀찮아하지 않는다. 어려서 콩나물 다듬기는 내 일이었다. 식구가 많으니 다듬어야 할 양도 많아 형제가 어울려 나물을 다듬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언니랑 오빠가 교복을 입은 채 콩나물이 가득 담긴 바구니에 달라붙어 떠들던 기억이 난다. 손보다 입을 더 많이 놀린 탓에 콩나물은 줄지 않았다. 대가리를 떼고 지저분한 뿌리를 끊는 일에 골몰하다 보면 어느새 나만 그 일을 계속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엄마가 와 보시고선 ‘쬐깐한 것만 놔두고 다 큰 것들이 어디 갔냐’고 성을 내셨다. 나는 손이 더뎌서 그렇지 그 일이 싫지는 않았다.
자라서는 손으로 느릿느릿 무언가를 만들 만한 시간이 없었다. 스트레스가 쌓여도 그것을 풀 방법을 몰랐거니와 해소할 새가 없었다.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후 잔디 마당에 잔디가 아닌 풀들을 뽑는 일이 큰 즐거움이 되었다. 깨끗한 잔디밭을 감상하기 위함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풀을 뽑으며 명상과도 같은 침잠에 빠지는 시간을 즐겼다. 외출에서 돌아와 마당 한 구석에 손가방을 던져두고 구두를 신은 채 어두워진 줄도 모르고 맨손으로 풀을 뽑기도 하였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고, 흐린 날이라고 방심하다 등이 타서 피부가 벗겨지도록 풀 뽑기에 몰두했다. 남편이 무릎이랑 손가락 관절 망가진다고 말려도 그 시간이 좋았다.
풀 뽑는 일도 때가 있어 너무 덥거나 추우면 하기 어렵다. 날씨가 적당하면 모기도 좋은지 엄청 덤빈다. 어떨 때는 차라리 한 방 물고 물러가라고 협상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웽웽 귀를 시끄럽게 했다. 이래저래 나의 명상이 방해받지 않을 날들이 줄어들었다. 그 틈을 타 재미를 붙인 것이 바느질과 뜨개질이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완성품 가짓수가 제법 되었다. 옷, 가방, 바구니, 모자, 머리띠, 허리끈, 지갑 등 종류도 많다. 처음에는 만들어 보고 못 쓸 정도면 안 쓰면 된다고 가볍게 시작했는데 거의 다 잘 쓰고 있다.
어쩌다 시작하게 되었는지 더듬어 생각해 본다. 아이가 어릴 때 내 낡은 청바지를 줄여 입히거나 아빠 내의를 잘라 실내복을 만들기도 하고 실밥이 터진 옷을 꿰매고 단추를 달기도 하였다. 이런 일상적인 바느질 외에 남에게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바느질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남편 재킷이 겉감은 멀쩡한데 안감이 망가져 입을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옷이기도 하여 버리기가 아까웠다. 수선집에 물어보니 배보다 배꼽이 크다며 수선을 권하지 않았다. 궁리 끝에 해진 안감을 잘라내어 모양 그대로 새 옷감을 자르고 꿰매었더니 그럴싸하게 복구가 되었다. 나와 남편은 대만족을 하였다. 다만 큰 결함이 있었다. 얼른 보기에는 괜찮았으나 입으려고 팔을 집어넣으면 미끄러지듯 들어가질 않았다. 안감 천 종류를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다. 중대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직접 부딪혀 실수하면서 배우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고맙게도 남편은 그 재킷을 좋아하며 아껴 소중하게 입는다.
안감 천이 남아 아까워하던 중 때마침 동네 아는 분이 옷감이 좀 있는데 뭐라도 만들어 볼 테냐고 하여 냉큼 받아왔다. 기성품 재킷을 보고 대충 크기와 모양을 가늠하여 천을 자르고 반박음질로 몸통, 소매를 이었다. 남은 조각들로 주머니와 칼라를 만들었다. 단춧구멍을 만들지 못하니 천으로 고리를 만들어 단추를 걸 수 있도록 했다. 남은 안감 천도 알뜰하게 다 썼다. 옷은 모양이 그럴듯하였으나 소매를 앞뒤 없이 만들어 불편하다. 소매에도 앞뒤가 있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칼라도 직사각형으로 잘라 붙였더니 모양이 예쁘지 않았다. 이 재킷은 어색하고 불편해서 오히려 조심스럽게 다루어 입는 옷이 되었다.
옷을 만드는 데 크게 비용을 들일 생각은 없었다. 심심해서 시작한 일이었고 재단과 재봉은 중고등학교 가정 가사 실습에서 배운 것이 전부라 재료비에 투자할 주제가 안 되어서다. 들인 밑천이 없으니 천을 자르고 붙이기에 과감했다. 그래서 나름 신선한 결과물들이 나왔고 동네에 소문이 났다. 이때 들었던 최고의 칭찬은 ‘오메, 여엄병하네~’였다. 이 큰일 날 상소리 속에 담긴 감탄과 애정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배운 적도 없는데 뭘 만든다고 신통방통하다며 이집 저집에서 옷감을 나누어 주었다. 알고 보니 우리 동네 집집에 재봉틀 한 대 정도는 있고 한때 홈패션 수강을 해서 쟁여둔 옷감들이 꽤 많았다.
묵혀두다 버려지는 옷감은 여기저기에 많았다. 각 가정에서뿐 아니라 옷감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동대문상가에서도 시즌이 끝나면 안 팔린 옷감들을 처리하기에 바쁘다. 창고를 비워야 새 옷감들을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임자를 못 만난 천들은 시 외곽의 창고에 모여 킬로그램에 얼마 하는 방식으로 팔린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로 수출되기도 한다. 옷감 말고도 각종 부자재, 액세서리 등 종류도 많다. 동네 형님들 따라 시장 구경 다니다 알게 된 사실들이다. 이곳에서도 상품성이 부족한 자투리들을 많이 얻었다.
버리게 될 옷감으로 옷을 만들면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적고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좋다. 결과물이 쓸모 있으면 더 좋다. 옷감의 종류에 대한 지식이 없어 무엇에 쓰는 천인지 모를 때가 많다. 그래도 천은 천이니 자르고 꿰맬 수 있다. 남은 것들이라 하나를 완성하기에 모자랄 때도 있다. 다른 자투리들과 이어 붙이면 콜라보가 된다. 그러면 어디서 보기 힘든 독특한 결과물이 나온다.
내 옷을 크게 하여 남편 옷을 만들다가 여자와 남자 옷은 달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 몸에 옷감을 대고 펜으로 그어 가며 마름질을 하였다. 가끔 펜 자국이 바느질 봉합 선에서 비껴 나가 옷에 낙서 자국 같은 모양으로 남기도 하였다. 만드는 기쁨에 그 또한 귀했다. 전에 만들었던 것에서 부족한 점을 보충하며 옷본을 고쳐 나갔다. 이렇게 만든 옷본이 파일 가득 모였다. 우리 식구는 갑자기 살찌거나 빠지면 안 된다. 여러 해 동안 더듬거리며 고쳐 나간 옷본들이라서 고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손으로 만든 여러 것들을 남편과 딸은 작품이라 부르며 명품 대접을 해준다. 기꺼이 입고 즐겨 쓴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면 못 입겠다고까지 말해 준다. 손바느질로만 만든 코트, 코바늘로 뜬 머리띠나 조끼, 모자, 가방. 대바늘로 뜬 스웨터 등등. 작품이라 불릴 만큼 정성과 수고가 많이 들어가고 완성도 높은 것들도 있기는 하다. 두고두고 보아도 과연 이것을 내가 만들었나 싶게 제법 마음에 드는 것도 있다.
내가 만든 것을 작품이라 불러주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들인 시간을 존중해 주는 것처럼 느껴져 기쁘다. 이 느낌은 내가 이 작업들을 계속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좋아하는 것을 선명하게 알수록 사는 재미가 난다.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건강한 삶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더욱 더 좋은 일이다.
‘나’로 사는 법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갖고 싶은 것이 없고, 가 보고 싶은 데가 없으며,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으니 이만하면 편한 삶 아니냐 하며 살았다. 그런데 재미도 기쁨도 없어졌다. 뭘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해 내는 데 오래 걸렸다. 그래도 뭔가를 하다 보니 심심해서, 시간이 남아서 하던 일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되는 순간을 맞았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아침 최저 기온은 여전히 영하여도, 실내 온도 20도 이하인데도 무언가 봄이 온다고 느낀다. 어떤 점이 그렇게 느끼도록 하는가 따져 말하라면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 보자면 식물들이 은밀하게 수관에 물을 끌어모으는 기운 때문일까 싶다. 큰 나무에서 죽은 듯 보이는 풀들까지 영차영차 기를 쓰는 작은 힘들이 모여 온도계는 알려주지 않는 어떤 변화를 깨닫게 한다. 이렇듯 얼른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은 것들이 차근차근 쌓이고 꾸준히 모여서 이루어내는 커다란 성과들이 있다.
노느니 장독 부신다 라는 속담이 있다. 할 일 없으면 장독대의 항아리라도 닦으라는 뜻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인생이 즐거우면 괜찮지만 무료하고 삶이 의미 없게 느껴진다면 뭐라도 해 보는 것이 낫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봄은 올 것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도 늘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