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뜨개질 그리고 글쓰기
어쩌다 보니 갑자기 김장을 하였다.
시댁에서 김치를 계속 보내 주셔서 묵은지가 와인처럼 빈티지를 따질 정도로 쌓인 채 살았다. 2021년 김치는 삼합용, 2022년 김치는 찌개용 이런 식으로. 그래서 김치 아쉬운 줄 몰랐다. 김치는 맛이 있었지만 받아먹는 입장에서 맛이 있네 없네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받는 것이 편하다고 내 취향이 없지는 않았다. 내 김치를 담가 보고 싶었다.
처음으로 배추김치를 포기로 담갔다. 여섯 포기였는데 배추가 엄청 커서 쪼개고 절이느라 고생을 좀 하였다. 결국 한 포기를 빼놓고 담가 놓으니 김치통 큰 것으로 두 통 반이나 되었다. 온 집안에 젓갈 냄새가 진동하고, 주방은 난장판이 되었으며, 허리를 펼 때마다 아구구 소리가 저절로 나오고, 손목이 시큰거려 젓가락질하기조차 힘들었으니 완벽한 김장이었다.
양념이 배추 안쪽까지 고루 밴 후 알맞게 발효되어야 맛있는 김치다. 김치를 급하게 익히려고 하다 보면 미친 상태가 된다. 겉면의 양념만 익고 배춧잎은 생생한 채로 양념과 배추가 따로 놀아 맛이 영 어울리지 않은 상태를 김치가 미쳤다고 한다. 미친 김치를 더 익도록 시간을 두면 맛이 나아지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천천히 익기를 기다려 먹는 김치 맛과는 차이가 있다. 맛없는 김치는 푸욱 익혀 찌개를 끓이거나 볶아 먹으면 괜찮다. 그러나 미친 김치는 이도 저도 아니어서 뭘 해도 맛이 없다. 심지어 씻어 먹어도 별로다. 미친 김치는 맛없는 김치보다 더 나쁘다.
맛있는 김치를 만드는 일과 공감을 일으키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글을 쓰는 것은 매우 닮아 있다. 김치는 좋은 재료를 쓰고 양념이 충분하되 과하지 않게 버무린 후 알맞은 온도에서 익혀 적당한 온도로 저장한다. 이렇게 단계를 차례차례 밟아야 맛있는 김치가 되듯이 글도 좋은 글감에 생각이 무르익은 후 저절로 써지듯 써야 한다. 김치가 익어가듯 글도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야기가 익기를 기다려 쓰인 글과 쥐어짜듯 서둘러 지은 글은 다르다.
김치처럼, 글처럼,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야 하는 것 중에 뜨개질도 있다.
뜨개질로 완성품을 만들려면 한 코를 건너뛸 수 없다. 먼저 만든 코에 이어서 다음 코를 만들기 때문이다. 코들이 이렇게 또는 저렇게 얽혀들며 무늬를 만들기도 한다. 완성품은 실 하나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 뜨개질을 할 때마다 이 신기에 매혹된다.
나는 단순한 과정이 반복될 때 무념무상에 빠지는 것을 좋아한다. 뜨개질할 때도 코바늘이나 대바늘이 실과 공간을 엮어 차원을 이동하는 것 같은 순간순간에 오로지 집중하다 보면 시간이 흐른 줄도 모를 때가 많다. 식사를 거르기도 하고 밤을 새울 때도 있다. 눈 안 아프냐, 그러다 어깨 나간다, 손가락 관절 상한다,는 걱정을 뒤로 하고 작업을 할 만큼 재미가 있다.
한 코 한 코, 한 땀 한 땀에 재미를 느끼다가도 완성에 욕심을 낼 때가 있다. 그러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코를 놓치기도 한다. 빨리 알아채면 다행이지만 진도가 한참 나간 후에 빠뜨린 코를 발견하면 심하게 갈등이 된다. 잘 안 보이는 부분이라 티 안 날 거야. 나만 모른 척하면 아무도 모를 거야. 아무도 모르면 아무 일 없는 거다.
실제로 모른 척해 본 적이 있었다. 얼핏 봐서는 코가 빠진 티도 안 나고 그냥 입어도 크게 지장이 있을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나는 안다는 것이었다. 그 옷을 볼 때마다 빠진 코 부분에만 눈이 갔다. 그 흠이 보이나 안 보이나 신경 쓰느라 다른 부분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 살필 겨를이 없었다.
뜨개질하다 보면 이런 일들이 꼭 생긴다. 아무리 단순하고 익숙한 스티치라 하더라도 잠깐 방심하면 코를 빼먹는다. 그럴 때마다 실수를 모른 척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리하면 어찌 될지 알면서 되풀이하는 잘못이 뼈아프다. 아닌 것은 아니다. 풀어야 할 것은 풀어야 한다. 기회비용이 아깝더라도 시작으로 돌아가야 한다. 실수를 깨달았을 때 망설이면 완성의 시간을 늦출 뿐이다. 어떻게든 좀 넘어가 보려 해도 결국 풀게 된다.
뜨개질의 좋은 점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코를 빼먹었거나 무늬를 틀렸을 때 풀어서 고치는 것이 가능하다. 오래되어 싫증이 나면 실로 되돌려 다른 형태로 다시 짜면 된다. 풀 때 먼지가 날리고 그만큼 실의 부피는 줄겠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 혹은 고급 스웨터는 가볍기도 하다.
미친 김치를 맛있게 익힐 수 없듯 빠진 코를 모른 척하고 넘어가서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없다. 글쓰기도 이와 같다. 뭔가 부족하다는 것은 쓰는 당사자가 제일 잘 안다. 미진한 점을 발견하면 과감하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어렵게 어렵게 지어낸 글일수록 버리기가 더 아깝겠지만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서 쓰지 못하듯, 미친 김치가 맛있어지지 않듯, 순서에 맞게 때를 기다려 찬찬히 글을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