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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픽 Jun 15. 2018

진보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정체성 정치'

[출간 후 연재] #2.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진보주의자들은 선거전에서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가치들, 헌신, 정책 제안들을 말이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우리가 공유하게 될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이미지를 내놓지 않는다. 로널드 레이건의 선거 이래로 줄곧 미국 우파는 그런 이미지를 내놓았다. 그리고—돈, 거짓 홍보, 공포심 유발, 인종주의가 아니라—바로 그 이미지가 우파가 가진 힘의 궁극적 원천이다. 미국의 상상력 경연대회에서 진보주의자들은 기권을 선택해왔다.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는 그 기권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의 주장을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다. 나는 20세기 미국 정치사를 기독교 신학 용어에 빗대 두 개의 통치 체제dispensations로 구분하는 것이 유용하다고 제안한다.  

첫째는 루스벨트 통치 체제로, 뉴딜 시대부터 1960년대 시민권 운동과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린든 존슨 대통령이 1960년대에 내세운 구호—옮긴이)의 시대까지 이어지다가 1970년대에 소진되었다.  

둘째 레이건 통치 체제는 1980년대에 시작되어 현재 기회주의적이고 무원칙적인 대중영합주의에 의해 종결되는 중이다. 각각의 통치 체제는 미국의 미래에 관한 고무적 이미지와 정치적 의제들을 좌우하는 특징적인 원칙들을 동반했다.  

루스벨트 체제는, 시민이 위험과 곤경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고 기본권의 부정否定에 맞서는 활동에 함께 참여하는 그런 미국을 그렸다. 표어는 연대, 기회, 공적 의무였다. 레이건 체제는 국가의 속박에서 풀려난 가정과 소규모 공동체, 기업이 번창하는 더 개인주의적인 미국을 그렸다. 표어는 자기 신뢰, 최소 정부였다. 첫째 체제는 정치적이었고, 둘째는 반反정치적이었다. 


미국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좌) /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우) - 출처: 위키피디아·Pixabay


정체성 정치에 몰두한 미국의 진보주의자들

진보의 중대한 기권은 레이건 시대에 시작되었다. 루스벨트 체제가 끝나고 야심 찬 통합 우파가 부상하면서, 미국 진보주의자들은 심각한 과제에 직면했다. 미국 사회의 새로운 현실에 적합하게 과거 시도들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반영하여 미국민이 공유할 미래에 관한 신선한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라는 과제에 말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이 과제를 수행하지 못했다. 대신에 그들은 우리가 시민으로서 공유하는 바와 우리를 한 나라로 묶는 것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잃은 채 정체성 정치 운동에 몰두했다. 루스벨트 진보주의와 이를 지지하는 노동조합들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서로 악수하는 두 개의 손이었다. 정체성 진보주의를 표현하는 흔한 이미지는 프리즘이 단일한 광선을 색깔 성분들로 분해하여 무지개를 만드는 모습이었다. 이 두 상반된 이미지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정체성 정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미국 우파에서는 확실히 그러하다. 하지만 레이건 통치 체제 기간에 일어난 놀라운 일은 정체성 정치의 좌파 버전이 생겨난 것이다. 그 버전은 사실상 두 세대에 걸친 정치인들, 교수들, 교사들, 언론인들, 활동가들, 그리고 민주당 당직자들의 신조가 되었다. 

이것은 역사적 우연이 아니었다. 정체성에 매혹되고 이내 집착하는 태도는 레이건주의의 근본 원리를 위협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그 매혹과 집착은 그 원리, 곧 개인주의를 강화했다. 좌파의 정체성 정치는 원래 대규모 민중 계층들—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여성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정치 제도를 동원하고 정비함으로써 중대한 역사적 과오들을 바로잡으려 했다. 

사이비정치로 변질된 정체성 정치

그러나 그 정체성 정치는 1980년대 즈음에 자기 존중과 점점 더 협소하고 배타적으로 되는 자기 정의定義를 내세우는 사이비정치에 자리를 내주었다. 오늘날 우리의 학교와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그런 사이비정치다. 그로 인한 주요 결과는 젊은이들의 시선이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 자신을 향하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은 공익에 대해서 생각하고 공익을 실현하려면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준비를 하지 못한 채로 방치되었다. 특히 젊은이들은 자신과 무척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여 공동의 노력에 참여하게 하는 어렵고 생색나지 않는 과제를 맡을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진보적 정체성 의식의 전진은 진보적 정치의식의 후퇴를 의미했다. 진보적 정치의식이 없으면 미국의 미래에 대해서 어떤 비전도 상상할 수 없는데 말이다.


※ 출처: 마크 릴라 저,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필로소픽, 2018.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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