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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픽 Jun 18. 2018

진보에 적대적인 미국인들

[출간 후 연재] #3.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오늘날 아주 많은 미국인들이 진보주의라는 단어에 무관심하고 심지어 적대적이라는 사실에 그리 놀라지 말아야 한다. 

진보주의는 주로 교육 수준이 높으며 나머지 민중으로부터 단절된 도시 엘리트들이 공언하는 신조로 (어느 정도 정당하게) 간주된다. 그들은 일상의 의제들을 주로 정체성의 렌즈를 통해서 보며, 그들의 노력은 진정한 좌파의 에너지를 모으기는커녕 흐트러뜨리는 과민증적인 운동들을 돌보고 육성하는 것에 집중된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 중도 성향 평론가들이 내놓는 논평과 정반대로, 민주당은 좌편향이 너무 심해져서 기반을 잃어가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급진진보progressive진영이 이미 주장하는 것처럼, 우편향이 (특히 경제 분야에서) 너무 심해져서 민주당이 쇠퇴하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한때 거대한 산이었던 곳의 옆구리에 자신들을 위해 동굴을 파고들어가 웅크려 있기 때문에 쇠퇴하고 있다. 

이 같은 퇴각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는 민주당의 홈페이지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공화당 홈페이지는 「미국 혁신의 원칙들」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눈에 잘 띄게 내걸었다. 중대한 정치적 의제 11건에 관한 입장을 표명하는 문서다. 의제들의 목록은 헌법("우리의 헌법을 보존하고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야 한다.")으로 시작하여 이민("우리의 국경을 지키고 법을 옹호하고 경제를 진흥하는 이민 시스템이 필요하다.")으로 끝난다.  

이런 문서를 민주당 홈페이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에 화면의 스크롤을 맨 아래로 내리면 '사람들People'이라는 제목으로 된 링크들의 목록이 나온다. 그 링크들 중 하나를 클릭하면, 다양한 정체성 집단들을 위해 맞춤형으로 제작한 페이지들 중 하나가 뜬다. 여성, 히스패닉, '소수민족 미국인', LGBT 커뮤니티, 북미 원주민,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시아계 원주민, 태평양섬 주민 등을 위한 페이지가 말이다. 그런 집단들이 17개나 되고, 서로 다른 17개의 메시지가 나온다. 무언가 오류가 발생하여, 미국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춘 정당의 웹사이트가 아니라 레바논 정부의 웹사이트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이다. 


미국 민주당 공식 홈페이지의 'PEOPLE' 링크들 - 출처: 미국 민주당 홈페이지 캡쳐


그러나 정체성 진보주의에 대해서 제기할 수 있는 가장 뼈아픈 비난은 그 정치적 입장이 특정 집단들을 보살핀다면서 오히려 그 집단들을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진보주의자들이 소수자에게 추가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소수자들은 권리를 박탈당할 위험이 가장 크니까 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소수자들을—공허한 인정과 '찬양'의 몸짓에 머물지 않고—유의미하게 돕는 유일한 길은 선거에서 승리하여 장기적으로, 정부의 모든 층위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성취하는 유일한 길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메시지로 그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 출처: 마크 릴라 저,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필로소픽, 2018.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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