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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픽 Jun 19. 2018

정치,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출간 후 연재] #4.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잘못된 방향 설정은 현실 세계에 실질적인 결과를 불러온다. 전국적 차원에서 헌법에 따른 낙태의 권리를 지키는 것과, 주와 지역의 차원에서 낙태의 실행을 방해하는 장벽이 세워지지 않도록 막는 것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선거권을 비롯한 다른 의제들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흑인 운전자들을 경찰의 학대로부터 보호하려면, 혹은 게이 커플과 레즈비언 커플이 길거리에서 괴롭힘 당하는 것을 막으려면, 그런 사건들의 가해자를 기꺼이 기소할 주 검사들과 법을 집행할 주 판사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검사들과 판사들을 확실히 얻는 유일한 길은 진보적 민주당 주지사들과 주 의원들을 선출하여 그들을 임명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합에 나서지도 않은 상태다. 공화당원들은 많은 대중으로 하여금 공화당은 평범한 미국인의 정당이며 민주당은 여유롭고 잘난 체하는 사람들의 정당이라고 믿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오늘날 미국의 일부 지역들에서는 공화당 극우파가 지배권을 철저히 장악하여 몇몇 연방법뿐 아니라 헌법적 보호 장치들조차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정체성 진보주의자들이 사이비정치적인 방식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사고한다면, 워싱턴에서 또 다른 행진을 조직하거나 연방법원에 제출할 변론 취지서 하나 더 작성하는 일이 아니라 그런 지역 층위의 상황을 뒤엎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정체성 진보주의의 역설은 그 입장이 소망한다고 공언하는 바들이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사고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마비시키는 것에 있다. 정체성 진보주의는 정치적 기획이기를 그치고 복음주의적 기획으로 변신했다. 양자의 차이는 이것이다. 복음주의의 핵심은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정치의 핵심은 권력을 장악하여 진실을 방어하는 것이다. 

우리에—우리가 시민으로서 어떤 존재이며 서로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에—대한 감각이 없으면, 진보 정치는 존재할 수 없다. 내가 곧 논증할 텐데, 진보주의자들이 미국의 상상을 탈환하고 미국 전역에서 주도권을 쥐고자 한다면, 허구적인 보통 사람의 허영심에 아첨하는 공화당을 누르고 승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은, 배경을 불문하고 모든 미국인이 실제로 공유한 바에 기초를 두고 우리의 공통 미래에 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실제로 공유한 그것은 시민의 지위citizenship다. 우리는 시민으로서 시민에게 말하고 우리의—특정 집단들에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포함한—주장들을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원칙들의 틀 안에서 펼치는 법을 재학습해야 한다. 우리의 진보주의는 시민적 진보주의가 되어야 한다.


※ 출처: 마크 릴라 저,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필로소픽, 2018.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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