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과학자의 비밀 실험

[미리보기] #1. 《은여우 길들이기》

스탈린은 유전학 연구에 대해서도 엄중한 탄압 정책을 옹호했기 때문에 1952년에 러시아에서 유전학자가 된다는 건 여전히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벨랴예프(소련의 유전학자-편집자 주)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경력에 미칠 커다란 위험을 무릅쓰고 유전학 분야의 최신 결과들에 대해 관심을 놓지 않았다.  

한편 스탈린의 지지를 받으며 10년 넘게 과학자 행세를 해오던 사기꾼 트로핌 리센코는 소련 과학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세했는데, 그 주요 명분 가운데 하나가 유전학 연구에 대한 맹렬한 반대 운동이었다. 그로 인해 많은 최고의 연구자들이 자리에서 물러나 포로수용소로 내몰리거나 강제로 사임 당해 하찮은 직위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 분야의 주요 인물이었던 드미트리의 형을 비롯한 일부 연구자들은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리센코의 연설을 바라보는 스탈린 - 출처: 위키피디아

리센코가 집권하기 전만 해도 러시아는 유전학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던 국가였다. 서양의 많은 훌륭한 유전학자들 ― 미국인 허먼 멀러 같은 ― 은 소련의 유전학자들과 함께 연구할 기회를 얻기 위해 동쪽을 향해 먼 길을 여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러시아의 유전학은 모든 진지한 연구들이 엄격하게 금지될 정도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리센코의 눈을 따돌려야만 했던 이유

그렇지만 드미트리는 리센코와 그의 일당들이 결코 자신의 연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리라고 단단히 결심했다. 그가 실시한 여우와 밍크의 품종개량 연구는 가축화라는 중요하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수수께끼에 아이디어를 제공했는데, 그것을 검증할 방법을 찾지 않고 넘기기에는 아이디어가 상당히 근사했다.  

문명의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소, 양, 염소, 돼지를 가축화하기 위해 우리 조상들이 이용한 육종 방법은 익히 잘 알려져 있었다. 드미트리는 여우와 밍크 농장에서 실시한 자신의 연구에 매일 이 방법을 이용했다. 하지만 애초에 가축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가축으로 길들인 동물의 조상들은 야생 상태에 있었을 때 인간이 접근하면 무서워서 곧장 달아나거나 공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행동을 변화시켜 번식을 가능하게 만들기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드미트리는 자신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생물학자들은 가장 처음 가축화된 동물은 개라고 주장했고, 지금까지 진화생물학자들은 개가 늑대로부터 진화되었다고 확신했다. 드미트리는 인간의 접촉을 본능적으로 싫어하고 잠재적으로 공격적인 늑대 같은 동물이 어떻게 수만 년에 걸쳐 사랑스럽고 충성스러운 개로 진화했을까 하는 문제에 매료되었다. 그러다 여우의 품종개량에 관한 자신의 연구에서 중요한 단서를 얻었고,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자신의 이론을 시험하고 싶었다. 그는 이 진화 과정이 처음에 어떻게 작동되었을지 알 것 같았다. 

출처: Pixabay

비밀리에 은여우 가축화 실험을 시작한 드미트리

드미트리는 탈린으로 향했다. 전례 없는 대담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도록 도와달라고 니나 소로키나에게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 그는 늑대가 개로 진화한 방식을 모방하고 싶었다. 여우는 유전적으로 늑대와 가까운 친척이므로, 늑대에서 개로 진화할 때 관련된 유전자라면 어떤 유전자든 소련 전역의 농장에서 기르고 있는 은여우도 공유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았다. 

모피 동물 품종개량 중앙연구소의 선임 연구자로서, 그는 자신이 계획한 실험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지위에 있었다. 소련 정부는 모피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국 통화로 재원을 마련하는 일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에 드미트리의 품종개량 연구는 매우 중요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실험에 대해 모피 생산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하면 안전하게 실험을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드미트리가 계획한 여우 가축화 실험은 모스크바에 있는 리센코 일당의 훔쳐보는 시선을 따돌려야 할 만큼 위험했다. 그가 저 멀리 탈린에 위치한 여우 농장에서 육종 프로그램의 보호 아래 실험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니나에게 부탁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출처: 《은여우 길들이기》, 리 앨런 듀가킨·류드밀라 트루트 저, 필로소픽, 2018.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