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2. 《은여우 길들이기》
류드밀라 트루트 (여우 가축화 실험의 실무자 - 편집자 주)는 1959년 가을, 시베리아의 광활한 황무지를 횡단하는 완행열차를 타고 아직 현대화의 손길이 닿지 않은 마을과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류드밀라는 숲속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작은 철도역에 내려 먼지 자욱한 길을 걸어 내려가, 실험을 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를 찾기 위해 산업용 여우 농장을 하나씩 방문했다.
한 농장에 다다랐을 때, 류드밀라는 관리자에게 자신과 벨랴예프가 실시하고자 하는 실험의 성격에 대해 설명했다. 약간의 부지를 소유해야 하고 검사를 위해 수백 마리의 여우에게 접근해야 하지만 결국 그들의 실험에서 번식을 위해 선별할 수 있는 가장 얌전한 여우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이다.
민영 농장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왜 그런 일을 위해 굳이 시간을 들이려 하는지 의아해했다.
벨랴예프가 나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여자가 무슨 짓을 벌이려고 제일 순한 여우를 고르는 건가 하고 말이죠!
당연히 그럴 만하지요.
류드밀라는 재미있다는 듯 이야기한다. 하지만 류드밀라가 누구와 함께 연구하는지 이름을 대는 순간 그들의 태도는 백팔십도로 바뀌었다. 류드밀라는 이렇게 말한다. "벨랴예프 박사님 이름만으로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었습니다."
불을 뿜는 용을 만나다
류드밀라는 레스노이라는 거대한 상업용 여우 농장을 실험 부지로 결정했다. 이곳은 카자흐스탄과 몽골 국경 중간쯤에 있는 외딴 지역으로,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남서쪽으로 약 36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레스노이 농장은 익숙해지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거대한 단지로 조성된 농장에는 옥외 작업장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각각의 작업장 안에 수백 개의 우리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우리마다 여우가 한 마리씩 들어있는데 대개 안절부절못한 채 주변을 서성거렸다.
류드밀라는 지금까지 여우를 대상으로 실험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여우의 공격성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녀는 여우들을 '불을 뿜는 용'이라고 불렀는데, 여우들에게 제법 익숙해진 뒤에도 우리를 향해 다가갈 때면 자신을 향해 덤벼들며 으르렁대는 이 여우들이 과연 순해질 날이 오긴 할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드미트리가 실험에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릴지 모른다고 경고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1960년 가을에 시작된 다음 단계는 코힐라의 예비 프로젝트에서 번식한 약 열두 마리의 여우를 레스노이로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당시 니나 소로키나는 코힐라에서 8대째 여우를 번식시키고 있었다. 그들이 여우들에게 발견한 변화는 아직 기껏해야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다. 가장 온순한 여우 열두 마리가 레스노이에 보내졌는데, 대체로 이 여우들은 모피 농장의 일반 여우들보다 아주 약간 얌전할 뿐이었다.
그런데 코힐라에서 가장 최근 두 차례의 번식기에 태어난 여우 두 마리가 제법 두드러진 차이를 보였다. 이 여우들은 눈에 띄게 얌전했다. 류드밀라는 이 두 마리 여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심지어 안아 올릴 수도 있을 정도였다. 이 놀라운 생물체들은 농장의 다른 여우들에 비하면 이미 개와 닮아 있었고 류드밀라는 실험이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하게 됐다.
류드밀라는 이 여우들의 이름을 라스카Laska(순둥이)와 키사Kisa(야옹이)라고 지었다. 이후 류드밀라는 실험 과정에서 태어난 모든 여우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새끼의 이름은 항상 어미의 이름 첫 글자로 시작했다. 해가 거듭되면서 동료들과 관리인들이 류드밀라의 연구에 합류했고, 그들은 류드밀라와 함께 여우의 이름을 지으며 즐거워했다.
류드밀라는 매일 아침 6시에 우리를 각각 꼼꼼하게 살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니나가 코힐라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종류인 5센티미터 두께의 보호 장갑을 착용한 다음, 우리에 다가갈 때, 닫힌 우리 옆에 서 있을 때, 문을 열 때, 그리고 우리 안에 막대기를 집어넣을 때 각각의 여우들이 자신의 존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평가했다. 각각의 상호작용에 대해 1부터 4까지 등급을 나누어 점수를 매기고, 합산한 점수가 가장 높은 여우를 가장 얌전한 여우로 지정했다. 매일 50여 마리의 여우를 테스트했는데,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몹시 고단한 과정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얌전해졌던 여우들
류드밀라가 다가가거나 우리 안에 막대기를 집어넣으면 대부분의 여우들은 공격적으로 반응했다. 여우들은 기회만 주어지면 손을 물어뜯고 싶어 안달하는 것 같았다. 소수의 여우들은 겁을 내며 우리 뒤에 몸을 웅크렸지만, 역시나 얌전한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극히 소수만이 줄곧 얌전한 태도를 유지했고 류드밀라를 골똘히 주시하면서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류드밀라는 전체 여우 가운데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이런 부류의 여우들 가운데에서 선별해 코힐라에서 데려온 소수의 여우들과 맺어주어 다음 세대의 부모가 되게 했다.
하지만 류드밀라는 실험이 효과를 나타내리라는 확신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새로운 세대로 이어질수록 점점 많은 수의 여우들이 더욱 얌전해졌을 뿐 아니라, 농장의 몇몇 작업자들이 얌전한 여우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출처: 《은여우 길들이기》, 리 앨런 듀가킨·류드밀라 트루트 저, 필로소픽, 2018.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