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3. 《은여우 길들이기》
새 여우 실험 농장 덕분에 드미트리와 류드밀라는 불과 몇 년 만에 대단히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류드밀라는 매일 시시각각 자세하게 여우들을 관찰하면서 이미 여우들과 맺은 강한 유대감이 더욱 끈끈해지는 걸 느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여우들이 깊은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류드밀라와 작업자들뿐만 아니라 농장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감정적 변화를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었다.
류드밀라는 과학자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이 동물들이 점점 사랑스러워지고 있음을 느끼며 크게 놀랐다. 그리고 이 자체로 중요한 발견이며, 이 변화야말로 그토록 완벽하게 가축화되고, 그토록 끈끈하게 우리 인간과 유대감을 형성하며, 그토록 열정적으로 '그들의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개들의 특성이라는 걸 분명하게 깨달았다.
류드밀라는 생각했다.
연구의 속도를 달리하면 어떻게 될까?
점점 사랑스러워지는 이 동물의 매력을 거부하지 않고
이들의 감정적 표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탐구하는 데 몰두한다면 어떻게 될까?
마침내 류드밀라는 벨랴예프에게 대담한 제안을 했다. 여우 농장의 모퉁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집이 있었다. 류드밀라는 이 집으로 이사해 엘리트 여우 한 마리와 생활하면서 얼마만큼 유대감을 발전시킬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벨랴예프는 이 아이디어가 무척 마음에 들어 즉시 그녀에게 이 집을 써도 된다고 허락했다.
류드밀라는 자신의 노트와 데이터 차트를 꼼꼼히 살펴보며 엘리트 여우들의 스트레스 호르몬 지수와 행동에 관한 통합 정보를 평가하고, 그 가운데 가장 유력한 후보 몇 마리를 선택했다. 그런 다음 이 여우들의 우리에 가서 그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새롭게 평가했다. 여러 날 동안 평가가 이루어진 후 류드밀라는 마침내 자신의 여우를 결정했다.
길들여진 여우 '푸신카'의 탄생
이 여우의 이름은 쿠클라Kukla이며 러시아어로 '작은 인형'이라는 의미다. 쿠클라는 1년에 두 차례 가임기를 갖는(그러나 임신은 하지 않은) 소수의 길들인 암컷 여우 가운데 한 마리로, 어딘가 유독 끌리는 데가 있었다.
류드밀라가 쿠클라의 우리에 다가가면 쿠클라는 갑자기 활발해져서 힘차게 꼬리를 흔들고, 그야말로 순수한 기쁨의 소리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소리를 깩깩 질러대곤 했다. 한 가지 문제는 쿠클라가 다 자란 암컷 여우치고 몸집이 작다는 것이었다. 쿠클라는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들 중 왜소한 편이었는데, 류드밀라는 튼튼한 동물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직감을 따랐고 쿠클라가 선택되었다.
쿠클라의 짝은 쿠클라와 같은 세대의 길들인 여우로 이름은 토빅이었다. 쿠클라와 토빅은 무사히 짝짓기를 마치고 7주 뒤인 1973년 3월 19일에 네 마리의 건강한 새끼를 ― 수컷 두 마리와 암컷 두 마리 ― 낳았다. 새끼들이 완전히 눈을 뜨자마자 류드밀라는 그들을 보러갔다. 류드밀라는 여러 명의 작업자들이 새끼를 둘러싸고 모여서서 마치 자기 자식이나 손자를 대하듯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발견했다.
류드밀라는 털이 뭉실뭉실 부푼 작고 경이로운 새끼 여우에게 곧장 마음이 끌렸다. 작업자들은 이 여우의 이름을 푸신카라고 지었는데 번역하면 '작은 털 뭉치'라는 뜻이다. 류드밀라는 이후 며칠에 걸쳐 줄곧 푸신카를 관찰하면서 푸신카가 인간의 관심을 간절히 바란다는 걸 알았다. 푸신카는 이미 사람들과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었기에 류드밀라의 한집 식구로 제격인 것 같았다. 푸신카는 특별한 실험용 집에서 류드밀라와 함께 살게 될 터이므로, 작업자들은 이 경우에 한해 푸신카의 귀여움에 마음껏 항복해 푸신카와 얼마든지 즐겁게 놀아도 괜찮다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