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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픽 Aug 08. 2018

개처럼 변한 여우

[미리보기] #4. 《은여우 길들이기》

류드밀라가 책상에서 일하고 있으면 푸신카는 류드밀라의 발치에 엎드려 있었다. 푸신카는 류드밀라가 놀아주고 농장 주변을 산책시켜주는 걸 무척 좋아했다. 푸신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류드밀라가 주머니에 숨겨놓은 간식을 찾아내는 놀이였다. 


여느 강아지들과 마찬가지로 류드밀라의 손을 장난스럽게 무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결코 세게 물지는 않았지만 제법 아팠다. 또 류드밀라가 자기 배를 쓰다듬도록 등을 대고 누워 발을 들어 올리는 걸 재미있어 했다. 푸신카는 주로 자기 집에서 잠을 잤지만 가끔은 밤에 살그머니 침대 위로 올라와 류드밀라와 함께 자곤 했다.  

푸신카는 오후의 휴식을 마치고 저녁이 되면 유독 장난이 심해졌고, 바닥에 공을 던지거나, 문질러 달라고 배를 보이거나, 입에 뼈다귀를 물고 류드밀라를 향해 달려가는 등, 같이 놀아달라고 류드밀라를 졸라댔다. 집 뒷마당에 데리고 나가면 때때로 공을 입에 물고 마당 한쪽으로 총총히 걸어가 경사지 위에 공을 내려놓은 다음 공이 굴러가면 쫓아가는 놀이를 수없이 반복하기도 했다. 마당에서 신나게 놀다가도 류드밀라가 부르면 언제나 깡충깡충 달려가 곧장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모습이 개하고 아주 흡사했다.

개와 흡사한 모습의 은여우 - 출처: Pixabay


푸신카는 4월 6일에 출산했다. 타마라가 류드밀라를 대신해 집에서 새끼들을 받았다. 양수가 터지기 직전, 푸신카는 타마라에게 다가왔고 타마라가 푸신카를 쓰다듬자 바로 그 자리에서 첫 번째 새끼를 낳았다. 타마라는 갓 태어난 새끼를 깨끗이 닦아 푸신카의 집에 넣어주었다. 푸신카는 자기 집에서 다섯 마리를 더 출산했다.  


류드밀라는 타마라의 전화를 받고 급히 집으로 왔는데, 놀랍게도 집에 도착하자 푸신카가 새끼 한 마리를 입에 물고 류드밀라에게 다가오더니 그녀의 발 앞에 가만히 새끼를 내려놓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여우의 어미들은 자기 새끼를 지키느라 열심이고, 출산 직후에 작업자들이 다가가면 엘리트 암컷 여우들조차 공격적으로 되었다. 류드밀라는 모성이 발동해 푸신카를 꾸짖었다. 


그러고도 네가 엄마니! 네 새끼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푸신카는 새끼를 입에 물고 다시 제 집에 데려다 놓았다. 푸신카가 새끼를 자기 보금자리에 데려다 놓자 류드밀라의 얼굴은 미소로 환해졌다. 갓 태어난 자기 새끼를 대하는 푸신카의 모습이 마냥 대견해 보였기 때문이다.   


류드밀라는 어미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푸신카의 모든 새끼들에게 P로 시작하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프렐레스트Prelest(멋진), 페스나Pesna(노래), 플락사Plaksa(울보), 팔마Palma(야자나무), 펜카Penka(피부), 푸쇽Pushok('작은 솜털'이라는 의미의 남성형, 엄마를 많이 닮아서) 

마침내 눈을 뜬 푸신카의 새끼들은 인간의 애정을 유독 간절하게 원했다. 류드밀라가 일지에 쓴 내용에 따르면, 특히 어린 펜카는 곧바로 다정한 모습을 보였고, "사람을 보면 쾌활해졌으며", 류드밀라의 목소리를 들으면 "굉장히 흥분해서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2주 남짓 안에 모든 새끼들이 똑같이 류드밀라의 목소리에 반응했고, 류드밀라가 방에 들어오면 모두들 자기네 보금자리 밖으로 달려 나왔다.  

푸신카와 류드밀라와의 유대감도 더욱 깊어졌다. 새끼들이 자라서 이제는 돌봐야 할 시간이 줄어들자, 푸신카는 다시 류드밀라에게 관심을 돌리며 줄곧 그녀와 함께 하길 바랐다. 류드밀라가 뒷마당 저쪽으로 건너가면 푸신카는 그녀에게 다가가 옆에 서서 같이 놀자고, 자기를 쓰다듬어 달라고 졸랐고, 그녀의 발치에 엎드려 그녀를 올려다보며 자기 목을 긁어달라고 재촉했다. 류드밀라가 연구소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해 집에 오거나 한동안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 푸신카는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문 앞에서 그녀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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