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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픽 Oct 11. 2018

유럽 최고의 철학자들은
왜 전제 정치를 옹호했을까?

[미리보기]  #0.《분별없는 열정》 연재 예고


유럽 최고의 철학자들은 왜 전제 정치를 옹호했을까?


유럽인보다 유럽철학을 더 잘 이해한다고 평가받는 미국의 저명한 정치철학자 마크 릴라. 그가 유럽에서 가장 저명한 여섯 명의 사상가들을 철학의 법정에 소환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카를 슈미트, 발터 벤야민, 알렉상드르 코제브,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가 그들이다. 사상사에 한 획을 그은 존경받는 철학 거장으로서가 아니다. '전제 애호가' 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정치적 냉철함을 결여한 무책임한 지식인의 대표자로 호출된 것이다.  


2002년 출간 후 16년 만에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나온 《분별없는 열정》은 인류사에서 종종 볼 수 있던 어떤 현상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당대 최고의 사상가로 존경받는 지식인들이 어째서 전제정의 사악한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앞장서게 되는 것일까? 어떻게 고매한 철학자가 저열한 전제자를 찬미하는 합창단에 편승하게 되는 것일까? 권력이 그들의 생명을 위협한 것도, 글 쓰고 생각할 자유를 박탈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도대체 왜?  


《분별없는 열정》의 저자 마크 릴라 - 출처: 가디언


지식인의 심층 심리를 살피는 전기적 탐구 방법론  


마크 릴라는 이 질문에 대해 사상사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이 접근법에는 두 가지 유력한 해설이 있다. 하나는 계산적 합리성을 앞세운 근대 계몽주의 철학이 필연적으로 소련 계획경제의 무자비함, 나치의 섬뜩할 정도로 효율적인 유대인 절멸 계획 같은 현대 전제정의 잔혹성으로 귀결된다는 이사야 벌린의 관점이다.

다른 하나는 혁명적 천년왕국의 건설이라는 종교적 충동을 현대 전제정의 근원이라고 보는 노먼 콘과 야콥 탈몬의 비합리주의적, 메시아주의적 해석이다.   

마크 릴라는 이런 사상사적 해석이 현실의 일면만 설명할 뿐이라며 거부하고 양면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지식인 자신의 사회사를 탐구하는 길을 선택한다. 이것은 폴란드의 시인 밀로츠가 《사로잡힌 정신》에서 구사한 방법론이다. 밀로츠는 주인공의 젊은 시절에 드러난 성격의 일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훗날 주인공의 저술과 정치 참여 행위에 그 모습이 나타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약식 전기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마크 릴라는 이 방법이 인간 심리의 심층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보고, 20세기 유럽의 정치 사상계를 풍미한 철학자들의 전기적 삶과 그들 사상의 교차점을 면밀히 파고든다. 그리하여 명성과 열정에 비해 분별이 모자라는 어리숙한 지식인이 냉혹한 현실 정치와 만났을 때 어떤 우스꽝스러운 비극이 벌어지는지 능란한 솜씨와 유려한 문체로 생생히 그려낸다. 2차대전이 끝나고 얼마 안 돼 사르트르가 낭만적 이상 때문에 스탈린의 집단수용소를 옹호하는 냉혹한 변호사로 전락한 데서 보듯, 중대한 정치 사안에 직면할 때 이른 바 참여 지식인이 얼마나 무능하고 바보 같아지는지 입증해 보인다. 

지식인의 정치 참여에 관한 도발적인 진단  

《분별없는 열정》은 2002년 첫 출간 당시 보스턴에서 개최된 미국 정치학회(American Political Science Association)에서 원탁회의의 화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당시 많은 청중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던 이 책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식인 사회에서 꾸준히 인용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되는 개정증보판에는 냉전 종식 후 일어난 지식인 사회의 변화에 대한 릴라의 진단이 추가됐다. 또 초판의 모호한 표현과 오역으로 의심되는 부분들을 바로잡았고, 문장의 흐름을 매끄럽게 다듬었다. 

릴라는 세련되고 위트 있는 문체로 20세기 지식인들의 정신적 오만과 도덕적 엘리트주의를 비판한다. 하지만 릴라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이들을 역사의 재판정에 세우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지식인의 잘못된 신념으로 인한 현실 참여가 때로는 인류사회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역사는 언제든 다시 반복될 수 있음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저자 소개|  
  
지은이_마크 릴라 Mark Lilla  

마크 릴라는 컬럼비아대학교 인문학 교수이며 서구 사상사, 특히 정치와 종교의 관계, 근대 서구 계몽주의를 연구하는 세계적인 정치철학자이다. 1990년에 쓴 박사학위 논문 『비코에 붙이는 서문: 회의론, 정치학, 신정론』으로 미국 정치학회의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 상을 받았다. 『뉴욕 타임스』, 『뉴욕 서평』을 비롯한 전 세계 여러 매체에 기고하는 저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5년에는 미국 오버시즈 프레스 클럽Overseas Press Club of America의 국제 뉴스 최우수 논평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난파한 정신』, 『사산된 신』, 『G. B. 비코』 등이 있으며, 공저로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이 있다. 그의 저서들은 십여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옮긴이_서유경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부 인문·고전전공 교수이며 현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 20여 년간 한나 아렌트 정치철학 연구에 집 중해온 골수 '아렌티안Arendtian'으로서 『아렌트와 하이데거』, 『과거와 미래 사이』, 『아렌트 읽기』,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아렌트 '정치 행위' 개념 분석」과 「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에 비춰 본 1987년 이후 한국의 참여민주주의」를 비롯하여 다수의 논문을 출간하였다. 그 밖에도 『시민 사회』,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 『시민정치론』 등의 번역서가 있으며, 2016년 제24차 세계정치학회IPSA에 발표한 논문 "The Political Aesthetics"는 2017년 독일에서 영문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저서인 『제3의 아렌트주의』와 번역서 『책임과 판단』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연재 일정|  


01. 프롤로그 - "전제를 찬미하는 합창단에 편승한 지식인들" (10.12)
02. 정치가 갈라놓은 우정 (1) - 하이데거·야스퍼스 (10.15) 
03. 정치가 갈라놓은 우정 (2) - 하이데거·야스퍼스 (10.17) 
04. 나치에 부역한 '황제 법학자' - 카를 슈미트 (10.19)  
05. 에필로그 - "시라쿠사의 유혹"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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