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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픽 Oct 12. 2018

철의 장막 뒤에서 사악한 권력을 쥔 지식인들

[미리보기]  #1.《분별없는 열정》

역사는 철의 장막 뒤에 산 사상가와 작가들에게 모종의 사악한 권력을 쥐어주었다. 즉 일부는 그 권력을 잘 사용해 가능한 한 독재자가 던지는 달콤한 미끼와 무서운 협박에 저항했지만, 다른 일부는 전제(專制)를 찬미하는 합창단에 편승했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서본 일이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들이 저지른 일을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지식인들이 그 어떤 위험 상황에도 처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경우에조차도 전제를 찬미하는 현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무엇이 지식인들로 하여금 현대 전제자들이 저지른 행위를 정당하게 만들도록, 또는 더욱 빈번한 예로, 전제정과 서구 자유사회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부정하도록 유인하는 것인가?  

20세기 서유럽 지성인들 다수가 군국주의와 공산주의 정권들이 등장하는 것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이런 전제 정권들은 수많은 민족해방운동이 이내 전통적인 전제정으로 돌변한 경우였으며, 지구상의 불운한 민족들에게 참혹한 상황을 초래하였다.  


계급해방을 목표로 일어난 러시아 혁명은 결과적으로 스탈린 전제정권을 탄생시켰다.


극단적인 표현을 쓰자면, 20세기에 서구 자유민주주의는 전제정의 실질적인 본거지로 묘사되었다―자본, 제국주의, 부르주아 순응주의, 형이상학, 힘, 그리고 심지어는 언어적 전제정의 본거지 말이다. 이런 사례들은 논쟁의 여지도 거의 남기지 않았다. 또한 신문을 읽고 도덕적 감각을 지닌 교양 있는 사람들에게도 너무나 명백했다. 아니, 뭔가 내밀한 것이 유럽 지식인들의 정신 속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어떤 분별없는 것. 사실 우리는 그런 분별없는 정신들이 작동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다. 그 정신들은 정치 속에서 무엇을 찾고자 하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런 질문들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려고 한다. 


지식인의 책임, 그 용어에 대한 성찰

지난 세기 동안 '지식인의 책임'이라는 무의미한 용어에 관해, 그리고 한 사상가의 사상이 그 사상가가 그 사상을 정치적으로 적용한 방식과 분리될 수 있는가에 관해 상당히 많은 문헌들이 쓰였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언제나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한 차원에서 보면 그 대답이 "분리될 수 있다"임은 틀림이 없다. 유클리드가 검증한 진리의 진위 여부는 그 수학자가 자신이 거느린 종복들을 다루던 방식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러나 완숙한 사람들은 중대한 사안을 논한 사상가들이 이런 식으로 기하학을 논하듯 탁상공론하지 않는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다. 사상가들은 세계 속에서 사태를 정확하게 판단하려 할 때 자기 체험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기반에서 논의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지식인들의 정치활동을 위시한 저술과 활동이 이런 여정의 흔적들이다. 만일 우리도 그와 비슷한 여정에 있다면 우리는 그 지식인들이 무엇을 했으며, 왜 그렇게 했는지 성찰해야 할 것이다. 

20세기 유럽 사상가들이라면 누구나 철학적·정치적 인물을 소개할 때 주제로 선택될 가능성이 있다. 독자들이 이 책 속에 언급된 문제들이 동유럽 공산주의가 무너진 1989년에 사라지지 않았다고 확신하게 되리라 희망한다.  

이를 전제로, 나는 그 사람들 가운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생명력이 있는 사상을 소유한 몇 명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이 사상가들을 경애하는 많은 이들이 계속해서 그 사람들의 정치적 분별없음을 무시하거나 정당한 것으로 여긴다는 사실도 그들을 선정하는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  

나는 라인강 양안(兩岸)에서 활동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리고 좌파와 우파를 망라해 사상가들을 몇 명 선별했다. 이는 그 사상가들이 표상하는 현상이 한 나라 또는 특정한 정치 경향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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