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후 연재] #02. 조선혁명정치군사간부학교가 있던 '난징 천녕사'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오
영화 <암살>에서 배우 조승우가 맡아 화제가 됐던 인물, 약산 김원봉. 그는 한마디로 정리하면 백범 김구보다 현상금이 컸던 유일한 인물이다. 지금 가치로 320억 원이 넘는다. 약산은 1920년대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의열단'을 창설한 인물이다.
이후에는 항일운동의 선봉을 맡았던 '조선의용대'를 창설해 총대장을 맡았다. 1942년, 조선의용대가 한국광복군에 편입된 뒤에는 광복군 부사령관 겸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역임했다. 단언컨대 약산 김원봉 장군은 대한민국 항일운동사를 이끈 태산 같은 사람이다.
<암살> 김원봉이 독립군을 양성했던 훈련소, 난징 천녕사
난징에 갈 때만 해도 사실 기대를 많이 했다. 김원봉은 난징에서 큰 발자국을 남겼기 때문이다. 의열단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김원봉은 1932년 7월, 중국 난징에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이하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세운 뒤 직접 애국지사를 길러냈다. 저항시인 이육사와 중국 인민군 군가인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도 이 학교 출신이다.
조선혁명간부학교는 제1기부터 3기까지 총 125명의 청년 간부들을 양성하였는데, 난징의 천녕사(天寧寺)는 1935년에 3기생들이 훈련받던 장소다. 난징 천녕사는 시내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다.
도착하면 눈물이 난다. 지금은 방치된 도교 사원으로 쓰이고 있지만 그 어디에도 조선혁명간부학교 학생들이 훈련받은 직접적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천녕사라 적힌 옛 건물과 다 쓰러져가는 가옥, 건물 앞에 덩그러니 놓인 우물이 흔적의 전부다.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아 폐허로 변한 것이다.
이런 곳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훈련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험난한 시대를 살았던 청년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차오른다. 무엇보다 당시 훈련을 받으러 온 청년 대부분은, 소위 말해 당대의 엘리트였다는 사실을 놓쳐선 안 된다. 고향에서 적당히 부역하면 별다른 근심 없이 편하게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많이 늦었지만 조선혁명간부학교 125명의 용기에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한다.
문제는 이러한 흔적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은 시민이 방문할 수 있도록 관리돼야 하건만, 천녕사를 찾아가려면 첫 길목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공장 건물 벽과 폐가 사이의 통로를 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이곳 또한 가림막으로 막혀있다. 천녕사가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발걸음을 옮기기 쉽지 않다. 길목에 작은 표지석 하나 없는 게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어렵게 산 중턱에 자리한 천녕사에 올라가면 헛웃음만 밀려온다. 솔직히 말해 천녕사는 말만 사원이지 수풀 속에 버려진 폐허와 다르지 않았다. 여기서 김원봉과 조선혁명간부학교 생도들이 훈련받았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취재팀이 무리해서라도 천녕사 외벽에 '김원봉과 애국지사들이 있었다'는 낙서를 남기고 싶을 정도였다.
김원봉, 남과 북에서 모두 버림받다
미안했다. 과연 우리가 김원봉을 이렇게 대하는 것이 온당하냐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실제로 '의열단' 의백이자 '조선의용대' 대장이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 등 굵직굵직한 직위를 역임했던 항일운동의 거두 김원봉은 해방 조국에서 뼈아픈 수모를 겪는다.
언젠가 약산이 중부경찰서에 잡혀 들어가 왜정 때부터 악명이 높았던 노덕술로부터 모욕적인 처우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몹시 분개했던 일이 기억난다.
평생을 조국 광복에 헌신했으며 의열단의 의백이었고 민혁당의 서기장을 거쳐 임시정부의 국무위원 겸 군무부장을 지낸 사람이 악질 왜경 출신자로부터 조사를 받고 모욕을 당했다는 소리를 듣자 세상이 아무래도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정정화, 『장강일기』
김원봉은 풀려난 뒤 사흘을 꼬박 울면서 "여기서는 왜놈 등쌀에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한탄을 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활동하며 단 한 번도 일제에 잡히지 않았던 항일운동의 거두가 해방 후 반공 투사로 변신한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붙잡혀 말도 안 되는 모욕을 당한 것이다.
결국 1948년 김원봉은 자발적으로 북으로 넘어갔다.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까지 그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으로 간 김원봉은 그곳에서도 버림받았다. 1958년, 김일성의 정치적 견제로 인해 숙청 당한 것이다. 죄목은 간첩 혐의였다.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나, 형무소에 끌려간 김원봉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넣어 자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항일운동의 거두였던 김원봉은 이렇게 남과 북 모두에게 버림 받은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행스럽게도 김원봉 사후 60년, 대한민국 탄생 100년을 앞두고 각계에서 약산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생기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김원봉 장군의 고향 밀양에 의열기념관이 건립됐다. 2019년 5월에는 MBC에서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이몽>이 방영될 예정이다. 김원봉 역할로는 배우 유지태가 캐스팅됐다.
어쩌면 남과 북 모두에게 외면받은 김원봉을 다시 우리 곁에 세우고, 대중과 이야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이번만큼은 약산 김원봉 장군을 우리 곁에 세워보자.
어떻게 갈까
주소: 江苏省 南京市 江宁区 天寧寺 (강소성 남경시 강저구 천녕사)
※ 四道堰水库(서탕녠 저수지)에 내려서 걸어 올라가야 한다.
지도를 자세히 보자. ➊ 서탕녠 저수지에서 아래쪽으로 50m 정도 내려오면 ➋ 입구가 보인다. 건물과 건물에 난 작은 길이라서 자칫 놓칠 수도 있다. 거기가 천녕사 입구다. 길을 따라 그대로 밀고 들어가야 한다. 20분 정도만 더 올라가면 산 중턱에 ➌ 조선혁명간부학교 3기생들의 훈련지 천녕사가 있다.
임정로드 유적지 중에서 찾아가기 가장 까다로운 곳 중 하나다. 독립기념관 국외독립운동 사적지에 나온 주소(江苏省 南京市 江宁区 上坊镇 长山林区 天寧寺)를 지도에 입력해봤자 엉뚱한 곳만 나온다. 지도에 차라리 천녕사(天宁寺)를 입력해 찾아가는 편이 더 빠르다. 책에 수록된 '임정로드 공용 지도' QR코드를 스캔한 후, 난징 외곽 천녕사를 확대하자. 첫 번째 줄에 정확한 주소가 나온다. 이를 복사해 자신의 구글 지도에 입력해 저장하자. 천녕사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 할 수 있다. 이동 시에는 자신의 위치를 계속 파악하며 움직여야 한다.
일단은 목적지인 서탕녠 저수지(四道堰水库)까지 이동해야 한다. 취재팀은 난징 시내에서부터 저수지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돌아올 때는 택시를 잡을 수 없어, 셔탕녠 저수지에서 2km 떨어진 버스정류장까지 히치하이킹을 한 뒤 운 좋게 지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돌아왔다. 택시에 탔을 때 천녕사에 가자고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 아무도 모른다. 지도를 정확히 보여주며 서탕녠 저수지시따오이엔수이꾸(四道堰水库) 입구까지 가자고 강조해야 한다. 거기서 내려 20분 정도 산을 타고 올라가면 김원봉 장군과 조선혁명간부학교 3기생들이 훈련했던 장소를 찾아갈 수 있다.
주의사항 및 팁
난징 시내에서 택시를 이용해 셔탕넨 저수지 입구까지 한 시간은 족히 걸린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이용할 경우 최소 2시간 이상 걸린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 시간과 예산, 멤버들의 컨디션을 고려해서 적절하게 판단하고 움직이자.
『임정로드 4000km』 취재팀의 경우, 천녕사를 답사한 때가 2018년 6월 말이었다. 중국의 3대 화로(충칭, 무한, 난징)라 불리는 난징의 열기가 실감났다. 천녕사에 오르기도 전부터 이미 온몸은 땀범벅이었다. 여름이라면 모기 기피제와 바르는 모기약을 꼭 지참하자. 살벌할 정도로 달려든다. 그래서 더 아쉽고 죄송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우리는 불과 몇 시간 머문 것뿐이지만, 열악한 천녕사에서 김원봉 장군과 조선혁명간부학교 학생들은 고된 훈련을 자청했다. 오직 제 손으로 독립을 이루겠다는 의지 하나로, 지금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가 된 절, 천녕사에서 훈련받으며 버틴 것이다.
표지석 하나 세우지 못해 죄송하다. 사람들의 걸음을 이어지게 만들지 못해 송구스럽다. 천녕사를 떠나면서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오면 꼭 표지석 하나 세워드리겠다고 다짐했는데, 그때로부터 수개월이 지났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아무리 고민해도 나 혼자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만 난다.
2019년 3.1 혁명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작
국내 최초 대한민국 임시정부 순례길 가이드북『임정로드 4000km』
"일생에 한 번은 '백범의 계단'에 서라!"
이 책은 국내 최초 임시정부 순례길 여행가이드북이다. 중국 상하이에서부터 충칭에 이르기까지 임시정부 요인들이 활동했던 지역을 그대로 따라가며 기억 속에 묻힌 장소를 꺼내어 소개한다.
대한민국이 탄생한 '상하이 서금이로'부터 영화 <암살>, <밀정>의 약산 김원봉이 독립군을 훈련시켰던 '난징 천녕사' 등 임시정부 사적지를 소개하며 독자들이 직접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걷지 않는 길은 사라진다." 역사의 진실이 아무리 귀중해도, 기억하지 않는다면 소용없을 것이다.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떠나는 임정로드 여행은 치열했던 우리 역사를 기억하는 가장 특별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