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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픽 Jan 16. 2019

한 달에 고작 7명 왔다는 임시정부 유적지

[출간 후 연재] #06. 자싱 임시정부 피난처

한번 상상해보자. 이름만 알던 지인에게 무려 현상금 200억 원이 걸렸다. 정권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다. 결코 가까운 사이도 아니다. 오히려 남남에 가깝다. 만에 하나 그 사람을 숨겼다 발각당하기라도 하면 내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런데 지인이 갑자기 나를 찾아와 "숨겨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혹자는 거절에 그치기는커녕 현상금 200억 원에 눈이 멀어 오히려 적극적으로 신고할지도 모른다. 1932년, 중국인 주푸청(褚輔成)에게 찾아온 선택의 갈림길이었다. 과감하게도 그는 200억 원의 유혹을 뿌리쳤다. 


주푸청 선생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가 일어나자, 김구 선생을 비롯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요 인사들은 일제의 탄압에 위기를 맞이했다. 그때 말 그대로 임정 요인들을 목숨 걸고 도왔던 사람이 바로 주푸청 선생이다. 혼자만 도운 것도 아니었다. 선생의 아들과 며느리, 심지어 양아들까지 나서서 김구 선생과 임정 요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중국말로 친구를 '펑요우(朋友)'라고 한다. 친구 사이에 한 번 맺은 신의는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뜻도 담겨있다. 주푸청 선생은 김구 선생을 펑요우로 여긴 것이다. 두 사람의 우정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김구 선생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머물렀던 피난처가 여전히 자싱에 사는 중국인들 손에 보존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싱에는 김구 선생 피난처뿐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들이 머물렀던 피난처까지 복원돼 있다.


1) 임시정부 요인들의 피난처 - 일휘교 17호

일휘교 17호는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 의거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항저우로 이동해 활동하면서 임시정부 주요 인사들이 피난 생활을 하던 장소다. 고맙게도 관리가 매우 잘 되어 있다. 


자싱 임정요인 피난처 '일휘교 17호' © 김경준


자싱 임정요인 피난처 '일휘교 17호' © 『임정로드 4000km』


자싱 임정요인 피난처 '일휘교 17호' © 『임정로드 4000km』


1층은 전시실로 보존돼 있고. 2층은 당시 임정 요인들이 살았던 모습대로 복원이 돼 있다. 김구 선생 가족들이 살았던 방을 비롯해서, 김의한 선생과 정정화 여사, 아들 김자동 선생이 함께 지냈던 방, 김구 선생의 오른팔이자 훗날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추모사를 낭독한 엄항섭 선생의 가족이 살았던 방, 이동녕 선생이 가족들과 머물렀던 방까지 비교적 깔끔하게 보존되어 있다. 


특히 1층 전시실에는 김구 선생을 비롯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과 자싱 피난 생활에 큰 도움을 준 주푸청 선생 가족들이 1932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전시돼 있다. 실물 사이즈 2/3로 전시된 만큼 함께 사진을 찍으면 도도한 역사 속에 함께 서 있는 듯한 마음이 일어난다. 

특히 피난이라는 어려웠던 시기에, 중국인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일제의 압박을 피해서 독립운동이라는 대장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점이 매우 감동적이다. 그러나 『임정로드 4000km』  취재팀이 현장을 찾았던 2018년 6월 23일 당시, 한 달 동안 자싱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피난처를 방문한 한국인은 고작 7명에 불과했다. 6월 9일에 3명, 23일에 4명만 방문했다. 아무리 애를 써서 지키더라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지 않으면 곧 사라지고 만다. 우리의 관심과 방문이 더 필요하다.


주푸청 가족들과 함께 한 임시정부 요인들 © 『임정로드 4000km』


2) 영화 <암살>의 무대가 된 장소 - 매만가 76호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김구 선생은 일단 미국인 피치 박사의 집에서 피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의 감시망은 더욱 심해졌고, 결국 그해 5월 말 주푸청 선생의 도움을 받아 다시 자싱으로 피신했다. 당시 김구 선생은 '장진구'와 '장진'이란 가명을 사용하면서 주푸청 선생의 수양아들이었던 첸둥성(陳桐生)의 별채인 매만가 76호에 머물렀다. 

지금은 옛 모습 그대로 거의 복원됐다. 그래서일까. 매만가를 따라 걸으면 만나는 김구 선생의 피난처가 유독 더 반가웠다. 건물 입구에는 '대한민국 김구 선생 항일시기 피난처'라고 쓰여 있는 한글 현판도 걸려있다. 


김구 선생 피난처 '매만가 76호' © 『임정로드 4000km』


김구 선생 피난처 '매만가 76호'의 비상탈출구 © 『임정로드 4000km』


김구 선생 피난처 '매만가 76호'의 비상탈출구 © 『임정로드 4000km』


입구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1층에 주 전시실이 있다. 전시실 우측에 별채 형태의 2층짜리 목조건물이 있는데, 바로 김구 선생이 피신했던 장소다. 지금은 선생이 사용했던 같은 형태의 침대와 옷장이 전시되어 있다. 

2층 한쪽 구석의 마루에는 나무로 만든 비상 탈출구가 있다. 선생은 일제의 수색을 피해 여기 비상구에서 1층으로 내려가 주아이바오(朱愛寶)의 배를 타고 호수로 피신했다. 원래는 침대 바로 아래에 비상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관람객 편의를 위해 침대를 옮겨 놓았다. 선생이 사용하던 배도 1층 비상구에 재현해 놓았다. 


김구 선생 피난처 밖에 자리잡은 호수 © 김경준


김구 선생 피난처 밖에 자리잡은 호수 © 김경준


실제로 선생은 낮에는 주아이바오와 함께 배를 타고 난후로 나갔다가 어둑해지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붉은 고추는 안전, 검은 적삼은 위험을 뜻했다. 선생은 선상에서 국무회의를 개최하는 등 위험한 피난 생활을 이어나갔다. 


영화 <암살>에서 배우 조승우가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오"라고 말하면서 김구 선생을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배경이 바로 자싱이다. 영화에서는 항저우로 나오지만 당시 선생은 자싱에 머물면서 도피 생활을 해나갔다. 영화에서도 자싱으로 나왔다면 완벽한 고증이 됐을 것이다.


영화 <암살> 스틸컷 © 쇼박스


어떻게 갈까



주소: 浙江省 嘉兴市 南湖区 环城南路 556号 (절강성 가흥시 남호구 배성남로 556호) 
         浙江省 嘉兴市 梅湾街 76号 (절강성 가흥시 매만가 76호)

➊ 일휘교 17호와 ➋ 매만가 76호는 모두 자싱의 가장 중심부에 있다. 자싱역에서 택시로 10분 정도 걸린다. 자싱은 작은 도시라 택시를 추천한다. 일휘교 17호는 김구가 피신했던 매만가 76호와 약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유의할 점은 <국외독립운동사적지>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지도는 위치가 좀 불확실했다. 근처이기는 하지만, 골목을 사이에 두고 다른 위치가 표시됐다. 『임정로드 4000km』 취재팀이 자싱에 도착한 첫날, 비를 맞으며 같은 위치를 돌고 돌다 결국 "오늘은 포기"를 선언했던 이유다.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지 않은 탓에 바로 근처임에도 불구하고 찾기가 어려웠다. <임정로드 공용지도>를 보고 정확한 위치를 찾아가길 기대한다. 자싱은 호수가 백미인 만큼 웬만한 거리는 (숙소를 어디 잡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걸어 다닐 수 있다. 특히 매만가 근처에 숙소를 잡을 경우, 임정 요인 및 김구 선생 피난처까지 난후(南湖)를 따라 걷는 호젓함도 맛볼 수 있다.


주의사항 및 팁


매만가 76호의 백미는 1층 전시관 우측에 있는 김구 선생의 피난처다. 미로 같은 길을 지나면 선생이 머물렀던 방과 주아이바오와 함께 탔던 배를 볼 수 있다. 만약 평일에 방문할 경우 월요일은 휴관이다. 주의해서 방문하자. 

무엇보다 김구 선생의 피난처는 주변에도 볼만한 곳이 매우 많다. 김구 선생 피난처를 둘러본 뒤, 바로 옆 주푸청 선생의 기념관도 함께 돌아보자. 기념관을 나와 난후 방향으로 난 골목길을 들어가면 난후에서 바라보는 김구 선생 피난처를 확인할 수 있다. 건물 안에서 볼 때와는 다른 색다른 감회를 맛볼 수 있다. 

적어도 하루 정도 여유 있게 머물렀으면 한다. 자싱을 감싸 안은 난후가 문어발처럼 도시 곳곳에 퍼져 있어 도시 자체가 갖는 매력이 대단하다. 

특히 임정 요인 피난처와 김구 선생 피난처가 자리한 매만가와 일휘교는 (주푸청 선생 기념관 때문에) 거리 자체를 상당히 멋들어지게 복원한 곳이라, 더욱 매력적이다. 두 곳 다 여유 있게 둘러본 다음 난후 근처에서 식사를 즐기면 더 좋겠다.




2019년 3.1 혁명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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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 번은 '백범의 계단'에 서라!"


이 책은 국내 최초 임시정부 순례길 여행가이드북이다. 중국 상하이에서부터 충칭에 이르기까지 임시정부 요인들이 활동했던 지역을 그대로 따라가며 기억 속에 묻힌 장소를 꺼내어 소개한다.


대한민국이 탄생한 '상하이 서금이로'부터 영화 <암살>, <밀정>의 약산 김원봉이 독립군을 훈련시켰던 '난징 천녕사' 등 임시정부 사적지를 소개하며 독자들이 직접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걷지 않는 길은 사라진다." 역사의 진실이 아무리 귀중해도, 기억하지 않는다면 소용없을 것이다.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떠나는 임정로드 여행은 치열했던 우리 역사를 기억하는 가장 특별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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