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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Jan 18. 2020

'황금성'의 비유와 '한 여름 밤의 꿈'

- '황금성'의 비유

(이 이야기 속의 내용은 모두 비유(메타포)이다. 비유는 비유일 뿐이다. 특정 인물, 강한 주장, 실제 사실 등으로 볼 필요는 당연히 없다)


옛이야기에 '황금성의 비유' 이야기가 있다.


어느 스승과 제자가 있었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잘 따라서 이제 깨달음의 순간을 얼마 두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뭔가 마지막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며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스승이 알아보니, 제자가 이전의 생에서 왕국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황금으로 지어진 황금성을 짓기를 원했지만 결국 짓지 못하고 죽었던 삶이 있었다. 그때 이루지 못한 바람이 아직도 남아서 마지막 깨달음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승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제자가 황금성을 짓고 거기서 사는 환영을 경험시켜 준다. 물론 제자는 선명한 사실감으로 그 체험을 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황금성의 체험을 끝내고 나온 제자는 더 이상 깨달음을 방해하는 심연의 장애가 없게 되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


/


이 비유는, 잘못 이해하면 아무런 통찰이 있을 수 없는 비유이다. 오해를 할 수도 있다. 결국 이루지 못한 어떤 욕망을 성취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황금성의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이 비유는 우리의 깨달음 즉 의식 해방의 발목을 사로잡는 뭔가 어마어마할 것 같은 그 욕구, 욕망, 바람 등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님을 말해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실은 '한 여름 밤의 꿈'과 같은 것임을.

(잊지 말라. 이 문장마저도 그 꿈속의 꿈임을)


/


그 꿈을 경험하든 하지 못 하든 상관 없이 우리는 마음의 여정, 탐구의 여정을 끝낼 수 있다.


지금 당장. 지금 여기. 지금 이 순간에.

('상관 없음'이 핵심이다. 특정 경험을 하느냐 하지 못 하느냐는 둘 다 차이가 없다)


만약 그게 되지 않는다면, 내 안에 어떤 '꿈'이 남아있어서 내가 매여 있는지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바람들이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인간이면 모두가 가지는 공통의 욕구나 욕망, 바람이기도 하다.


그것을 근본적으로 눈치채든, 특정 욕구로 눈치채든 어쨌든 내가 사로잡혀 있는 것을 스스로 알아채는 것이다. 욕망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무지'일 수도 있고, '고집'일 수도 있고, '중독'일 수도 있다. 표면적인 알아챔도 유용하고, 되도록이면 좀 더 깊은 알아챔으로 가는 게 좋다.


모르면 계속 반복된다.

알면 멈출 수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무의식의 의식화'라고도 한다)


/


주의할 것은, 이 비유를 통해 우리가 그 '황금성'을 무시해야 할 것이거나 버려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무언가를 버려야 한다는데 집착한다는 건 여전히 그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준다)


황금성이라고 말하면 마치 특정 사건이나 특정 상황, 대상만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우리의 삶 전체' 혹은 '자기 자신'이 바로 그 황금성이기도 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두 가지다.


하나는, 마음의 여정, 탐구의 여정을 끝내는 것과 별도로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은 그것대로 충실히 잘 경험해 주면 된다는 것이다.


너무 대접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무시할 것도 없다. 무시 또한 집착의 다른 말일뿐 특별한 게 아니다. 지나고 나면 꿈과 같을 황금성이지만, 지내고 있는 동안에 최대한 잘 만들어 주고, 누려 주고, 나누고, 경험해 주는 것. 중요한 것은, 그러면서 동시에 이것이 다만 '황금성'일뿐임을 계속 알아채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 삶 전체'가 하나의 황금성이라는 측면.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이다. 삶 자체가 황금성이면, 그 안의 내용물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특정 사건, 특정 욕구와 욕망과 바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이 부분을 실감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이 안에 담긴 화엄적 측면을 착파하라.
'모든 것이 가짜이므로 모든 것이 진짜이다.
모든 것이 진짜이므로 모든 것이 가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 자체를 좀 더 가볍게 대할 수 있다. 삶뿐만 아니라 그 삶의 주체라고 하는 '나'마저도.('나'라는 것도 그 삶 속의 한 이벤트에 불과하므로)


/


이상이 '황금성의 비유'와 그에 대한 한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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