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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Jun 08. 2020

사랑을 할 것인가, 계산을 할 것인가

모든 인간은 관계에서 계산을 한다. 

단 한 명도, 단 한순간도 예외가 없다. 


다만 차이는, 

상대방들에게 드러나 보이게 하는가

드러나 보이지 않게 하는가이다.


즉 

같은 '계산하기 행위'를 해도

뭔가 모르게 사람들에게 

드러나고 보이고 느껴지게 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누어진다.


결국 계산하는 행위는 같으므로 

그런 차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


그렇다.

결국 계산하는 행위는 같기 때문에

그런 차이가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다.




계산하는 의도나 행위가 

타인들에게 드러나느냐 아니냐는 

단지 표면적인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게 본질일 수도 있다.


모든 관계는 계산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산을 넘어서야 할 때는

넘어설 수 있는 것. 


계산을 쉽게 넘어서지 못하거나

계산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관계에 대한 불안함 때문일 수 있다.

관계의 과정과 결과 그리고 안전에 대한 

자신과 확신이 없으므로 계산에 의존하는.


그것이 위에서 말한 '차이'로 드러나는.




계산을 안 한다는 게 아니라

계산을 하지만, 그와 별개로

계산을 넘어설 수 있는 것.


계산이 빤히 나오지만

그 나오는 계산, 알고 있는 계산과 상관없이

관계를 나눌 수 있는 것, 사랑을 할 수 있는 힘.


명심하라!

우리는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없음을.

또 우리의 계산이 항상 정확한 것이 아님을.


계산이 필요한 곳에서는 아주 정확하고 적절하게 잘 쓰고,

계산을 넘어서야 할 곳에서는 넘어설 수 있음.


이것은 특정 관계에만이 아니라

'모든 유형의 관계'에 공히 적용되는 것.




어떤 경우는

계산과 상관없이 

맹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관계나 사랑이 이루어지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럼 이런 경우는 무조건 옳으냐?


아니다.


이 경우엔 

그 맹목적, 무조건적이 것이

하나의 계산이다.


즉, 

맹목과 무조건은

계산을 넘어선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계산일 뿐이라는 것.


많이 멍청한 계산.




관계에서의 계산은

교활함도, 나쁨도, 없애야 할 것도 아니다.


애초의 양태는 그냥 '드라이한 측정'일뿐.


이제 그 측정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삶과 관계가 플러스 혹은 마이너스로 펼쳐지는 것.


어떤 경우든

되도록이면 좀 더 잘 측정하고, 

되어진 측정은 좀 더 적절하고 유용하게 

잘 사용하기.


단,

측정에 매몰되거나

측정에 사로잡히거나

측정을 절대시 하지 않기.


측정은 측정일 뿐이므로.


'나'와 '너'는 그 측정도, 측정치도 아니므로.


측정을 사용하되,

모든 측정을 벗어나 있는 존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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