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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Nov 02. 2015

'많이 안다'는 것은 지식의 양의 문제가 아니다

필요할 때 기꺼이 '상대방의 언어'를 얼마나 잘 사용해 줄 수 있느냐

새로운 지식과 좀 더 깊고 정확한 지식을 탐구하는 경우를 제외한 일상의 대부분의 경우엔 '나의 언어'로만 상대방에게 주입,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내 언어를 주되게 사용하되) 필요할 때 기꺼이 '상대방의 언어'를 얼마나 잘 사용해 줄 수 있느냐가 그 사람의 지식, 지성의 힘을 나타내는 척도가 된다.

'많이 안다'는 것은 지식의 양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필요할 때 얼마나 능동적으로 '다른 사람의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해 줄 수 있느냐이다. 공통의 언어를 만들 수 있는 능력과 노력.


혹은 '서로의 언어'를 얼마나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사용해 줄 수 있는가. 어쩌면 공부의 주된 목적 중 하나이기도 하다. 즉 앎이란 타인에 대한 이해 확장의 도구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그 앎의 깊이나 정확도, 새로움 등에서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잘 전달해 주고 알려 주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외 대부분의 경우에서 우리는 대화와 관계 나눔을 위해 '상대방의 언어, 앎'을 사용해 말해 줄 필요가 있다. 물론 필요한 부분에서. '나의 언어, 앎'만을 가지고 말을 한다면 상대방은 잘 알아들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양 측이 모두 손해다.  


(물론 서로의 필요에 의해 정보와 지식의 전달, 노하우와 경험치와 통찰의 전달 등 내 앎을 전해 줄 때는 '나의 언어'로 선명하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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