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되지 않은 본래의 나를 만나자
글의 제목이 '진짜 나'를 제대로 느껴보기이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진짜 나'는 마치 이제까지의 나는 진짜 나가 아니었고 그래서 뭔가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혹은 만나지 못했던 나를 만나고 느끼는 듯한 뜻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명백히 말하건대 그런 건 아니다.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그건 모순이고 자기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진짜 나'란 단지 하나의 편의상 지칭일 뿐이다. 일종의 임시적인 이름이다. 마치 현재의 나의 이름인 '아무개'가 언제든 자신이 원할 때 적절한 법적 절차를 거쳐 다른 이름으로 바꿀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진짜 나'는 무엇인가?
앞선 글 '9 정체성은 내용이 아닌 느낌이다' 글에서 말한 내용 그대로이다. 우리가 '나'라고 여기고 있는 나는 사실은 '나의 전부'도 아니고 '절대적인 나'도 아니다. 그 나는 과거의 기억, 경험, 관계들로 구성되고 그리고 부모님과 지인들이 붙여준 여러 특징들로 한정되고 제한된 결과로써의 나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언급은,
"나이기 하지만 '나의 전부', '절대적인 나'는 아니다"이다.
굳이 '내가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굳이 그런 부정의 방법을 쓸 필요가 없다. 불교 등에서 말하는 '무아(無我)'도 사실은 '내가 없다'기 보다는 '한정시켜, 제한해서, 결정적으로 나라고 할 수 없다'로 해석하는 게 좋다.
특히 부정적이고 소극적이고 제한적인 나가 그 대상이 된다. 그것들은 세상과 타인들이 혹은 나 자신이 나에게 붙여준 하나의 이름 이었을 뿐 나의 전부, 절대적인 나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나도 모르게 그저 그게 나인 줄 알고 그대로만 받아들여서 살아 왔지만, 이제 처음으로 마치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벗어 던져 버리듯 혹은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어 버리 듯 벗어 버리고 털어 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본래부터 그대로 있는 나, 가볍고 든든하고 멋있고 맑고 밝은 나를 느껴주고 알아 주는 것이다.
그 '제한되지 않은 나 느껴보기'를 한번 제대로 해 볼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가장 건강한 정체성으로서의 나'를 실제 느끼고 체험해 보는 것이다. 단지 설명과 이론으로서만이 아니라 실제 실습으로.
그것을 느껴보는 것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다.
지금 바로 눈을 감고(혹은 원한다면 눈을 뜬 채로 할 수도 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에게 쌓였던 모든 기억과 유무형의 덧붙여진 것들이 다 사라지고 없어져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존재감'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 덧붙여진 모든 것들을 다 지워버리라. 그냥 없다는 셈 쳐도 좋다. 없는 척 하는 것이다.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사용하여 그런 '자기에게 자기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듯한 감'을 만들어 보면 된다. 물론 실제론 그 모든 것은 여전히 그대로 존재한다. 하지만 이건 '상상 놀이, 상상 게임'이라고 여기면 됩니다. 그러므로 실제 현실과는 상관없이 상상으로 진행하면 된다.
그 '감'이 처음에는 아주 작을 수도 있지만 괜찮다. 자꾸 해 나가면 그에 대한 실감도 점점 더 커지고 선명해진다. 다시 주의하자면, 그냥 '감'이다.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아도 좋다. 아주 아주 미약한 감 이래도 가져보면 그것이 성공이다. 처음엔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에 대한 아무 내용, 제한, 한정이 없는 실감'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커질수록, 그에 비례하여 '붙어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그냥 이렇게 묵묵하게 당당하게 뭔가 모르게 든든하게 존재한 존재감'의 느낌도 점점 더 선명해지고 강해진다. 그 '존재감' 쪽으로 의도적으로 의식의 초점을 맞추어라. 나의 주의를 주는 것이다.
('주의'에서 '주'자는 '물댈 주'이다. 즉, 논에 물을 대 주듯이 그 대상에 내 의식의 물을 대 주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그리고 초반 어느 정도 기간 동안은 아무리 그 순수한 '존재감'을 느껴보려 해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거나 느껴져도 별로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는 오히려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회와 타인들이 나에게 오랫동안 주입하고 최면을 건 그 '가짜 나' 혹은 내가 나 자신에게 스스로 속여온 그 '일부분일 뿐인 나'를 '전체 나', '진짜 나'로 알아온 세월이 십 수년에서 수 십 년이다!
그것이 어떻게 단 몇 번의 훈련이나 연습으로 바로 사라지거나 지워지는 느낌을 강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그래서 초반의 그 실망감이나 미약한 '감(느낌)'에 실망하지 않고 위에서 말한 저 '그냥 존재하는 그대로의 존재감' 느끼기, 그리고 그 '존재감 속에서 편안하게 휴식하기(쉬기)'를 꾸준히 안정적으로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또한 혼자서만 할 때는 힘을 잘 못 받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힘이 되어주는 이들과 함께 혹은 그들을 따라서 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런 기회는 여기저기서 만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 위에서 말한 저 '그 어떤 내용, 설정, 한정 없이 존재할 때의 존재감'이 강하든 약하든, 있든 없든 당신은 '지금 있는 그 자체로 이미 고유하고 온전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 상태를, 그 자리를 떠난 적이 없다. 사실 그 상태가 아닌 것이 불가능하다. 당신이 그것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말이다. 단지 그 상태에 겉옷을 더 입었거나 먼지가 더 묻었던 것뿐이다.
(실제로는 이 사실에 대한 자기 확신감이 명확하면 위에서 말한 '존재감' 느끼기 훈련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