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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Apr 17. 2016

존재성은 의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 존재 가치가 의존 대상에 의해 좌우된다는 착각에서 자유롭기

우리는 자신의 존재성을 스스로 확인하게 위해 여하간의 '대상'에 자신을 의존한다. 그 대상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소유한 물건이 될 수도 있고, 자기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이 믿는 종교, 주장하는 가치관이나 신념과 철학, 성취한 일, 쌓은 지식, 외모, 부모, 자녀 모두가 될 수 있다.


그 의존하는 대상의 가치나 의미만큼 자신의 존재성이 확보되고 확인되는 것이다. 당연히 그 대상의 가치나 의미가 크면 클수록 나의 존재성도 커진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게 있다. 바로 그 의존의 대상은 꼭 긍정적인 것, 좋은 것만 되는 게 아니란 부분이다. 즉 부정적인 것, 나쁜 것도 얼마든지 내 존재성 확보를 위한 의존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모두 말이다. 요는 좋은가, 나쁜가 혹은 긍정적인 것인가, 부정적인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의존할만한가'가 되겠다. 그 강도나 파워, 영향력이 클 수록 의존도도 높아진다.


그러면 이 의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많은 경우 그 반대인 '긍정적 나'를 강조하곤 한다. 긍정성을 키우고, 긍정적 자아상을 새롭게 확립하는 등으로 말이다. 물론 상대적인 측면에서는 이렇게 긍정적 나를 의도적으로 키우고 그에 자신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의존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므로 할 수 있다면 최대한 하도록 하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앞서도 말했지만 어느 대상에든 '의존하기'는 같기 때문이다. 즉 긍정의 나에게든 부정의 나에게든 나의 존재성, 나의 가치와 의의, 나의 정체성을 의존하는 구조는 같은 것이다. 그런데 긍정적 나에 의존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냐고 물을 수 있다. 그건 괜찮지 않냐고 말이다.


아니다. 왜냐하면 앞서도 말했지만 문제는 긍정이나 부정이냐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의존성이다. 나의 존재성, 가치, 의의 등을 무언가에 의존한다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의존을 하는 중에도 뭔가 불안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흔들리고 언젠가 그 의존은 부정적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왜? 나의 존재성은 그 어떤 내부와 외부의 대상에 의존해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성은 그 자체로 고유하고 의미 있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잘 하고, 성취하고, 열심히 하고, 자타의 인정을 받는 것 등에 나의 존재성을 의존하게 되면 이제 만약 그것들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나의 존재성도 같이 흔들린다. 심지어 내가 계속 잘 하고 있는 경우에도 겉으로는 그것을 즐기고 자타의 인정을 받으며 만족해 하지만 내심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드는 것을 멈추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실 잘 나갈 때에도 미래에 잘못 되거나, 실수나 실패를 하거나, 추락하는 것에 대해 미리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잘 될 때의 그 불안감은 꼭 이 미래의 추락에 대한 불안만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내 존재성을 의존하지 못할 '대상'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내면 깊숙한 곳에서 자연스럽게 느끼는 불안이다. 그 대상이 잘 나가는 긍정적 나일지라도 말이다.




일반적으론, 우리는 자신의 존재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 무엇에든 의존해야 한다. '일반적'이라 일부러 표현한 이유는, 우리는 본래 그런 의존 없이도 잘 살아가고 존재하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그걸 눈치채기 전에는 '의존함으로 존재함, 의존함으로 의미 있음'이 절대적이라 오해하며 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생존본능 혹은 자기유지본능, 자기보호본능이라 할 수도 있다.


이 본능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존재하는,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당연히 생존과 유지와 보호를 행해야 한다. 이건 자연적 패턴이다. 그러면 무엇인 문제인가? 잘못된 관점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그것을 하려 할때가 문제이다. 그럼 무엇이 그 '잘못된 관점과 방법'인가?


사실은 '의존' 그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 우리가 제대로 서려면 유용한 무엇에 기대거나 의지해서 제대로 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신 의존 기제가 절대적인 무엇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단지 하나의 유용한 도구이자 수단일 뿐이다. 우리의 생존과 유지, 보호를 위한. 그러므로 잘 사용하고 활용해 주면 된다. 문제는 그 의존과 의존의 대상을 절대화하거나 전부로 여길 때 발생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이제 우리는 '의존하는 대상이 없으면 나의 존재성도 무너지거나 없어진다'는 식의 이 어설픈 설정을 깨어 버려야 한다. 혹은 '내가 의존하는 대상의 가치나 의미에 의해 나와 내 존재성의 가치와 의미가 결정된다'도 마찬가지이다. 얼핏 그럴 듯 하지만 이것들은 사실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설정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설정을 절대시하고 전부시 하면서 여러 가지 혼란과 고통이 일어난다. 왜? 본래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는 이것이다.


내가 존재하는 것에는 아무런 의존이 필요 없다.


내 존재성은 내가 의존하는 대상과 상관없이 고유하고 당당하고 온전하다. 의존하는 대상이 무엇이든 혹은 있든 없든 상관없다. 나와 내 존재성의 가치와 의미는 내가 사용하는 의존 대상의 가치와 의미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존재성 '의존하기'를 넘어서기.

어떤 것에도 의존함 없이 존재하기.

(물론 '의존함 없음'에도 의존하지 않고)


그리고 모든 의존을 잘 활용하고 사용하기.


노력이 아닌 선택에 의해.

혹은 눈치챔에 의해 저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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