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장을 사용하지 주장에 이용되는 존재가 아니다
자기주장이 강한 경우가 있다. 누구라도 그러길 원한다. 자기 자식도 그렇게 크길 원한다. 빌빌 거리며 다른 사람의 주장에 당하는 건 아무도 기꺼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 자기주장이 강한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아마도 본인은 대화에서, 주장에서, 행동에서, 실제 쟁취에서 계속 이길지 모른다. 그러나 생명이 들숨과 날숨의 호흡으로 유지될 수 있듯이 관계는 '주고 받음'으로 이루어진다. 받기만 해서는 결국 다 죽는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소위 '갑질'이라는 것도, 돈이나 권력 등 사회적 파워가 생기면서 '계속 받기만' 하려는 경우들이라 할 수 있다. 본래 성품이 그랬든 아니든 점점 병적으로 그리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보통 타고난 성품이 많이 좌우한다. 자기주장이 강한 경우가 말이다. 웬만하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타인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방이다. 사람이란 게 계속 일방적으로 주게만 되고, 지게만 되고, 타인의 주장대로만 느끼고 생각하고 움직이게 되면 점점 '미치게' 된다. 누구든 받아주는 데 한계가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은, 자신이 만족도를 높여가는 사이에 상대는 실제 미쳐 갈 수 있음을 눈치채야 한다.
그러므로 개인이든 집단이든 너무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하게 되는 건, 겉으론 자기가 유리하고 좋은 듯 하지만 아님을 알아채야 한다.
친구 간에, 연인 간에, 형제간에, 부부간에, 부모 자식 간에 한쪽 주장에만 치우침이 크면 클수록 나중엔 같이 죽는다. 집단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자기주장이 주로 먹히는 게 좋은 건 줄 알지만 결코 좋은 게 아니다.
왜냐하면 개인이든 집단이든 관계를 맺는 서로는 '완전히 분리된 둘'이 아니라 '극성이 둘인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 극성만 과도하게 살면 결국 전체는 부조화로 무너진다. 전체가 무너지면 그 안의 한 극성인 자신도 결국 같이 무너진다. 이걸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주장이 약한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항상 그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이 경우도 역시 전체가 무너지게 되고, 결국 각 극성들도 같이 무너진다. 그러므로 자기 성격이 그렇지 않더라도 필요할 때는 일부러 강하게 주장해 주는 게 의무이자 책임이다. 필요할 때 할 수 있도록 종종 연습 삼아서라도 해야 한다.
답은, 자기주장과 타인주장 모두를 잘 이용하는 것이다. 한 측의 것만 획일적으로 취하거나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필요에 의해 능동적으로,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다. 내 주장이 필요할 땐 내 주장으로, 타인의 주장이 필요할 땐 타인 주장으로.(물론 이것도 무조건 그냥 되는 게 아니라 훈련과 능숙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자신의 주장이 아니며
나아가, 주장을 사용하는 존재이지
주장에 이용되는 존재가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