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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May 04. 2016

자기주장이 강한 경우와 자기주장이 약한 경우

우리는 주장을 사용하지 주장에 이용되는 존재가 아니다

자기주장이 강한 경우가 있다. 누구라도 그러길 원한다. 자기 자식도 그렇게 크길 원한다. 빌빌 거리며 다른 사람의 주장에 당하는 건 아무도 기꺼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 자기주장이 강한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아마도 본인은 대화에서, 주장에서, 행동에서, 실제 쟁취에서 계속 이길지 모른다. 그러나 생명이 들숨과 날숨의 호흡으로 유지될 수 있듯이 관계는 '주고 받음'으로 이루어진다. 받기만 해서는 결국 다 죽는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소위 '갑질'이라는 것도, 돈이나 권력 등 사회적 파워가 생기면서 '계속 받기만' 하려는 경우들이라 할 수 있다. 본래 성품이 그랬든 아니든 점점 병적으로 그리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보통 타고난 성품이 많이 좌우한다. 자기주장이 강한 경우가 말이다. 웬만하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타인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방이다. 사람이란 게 계속 일방적으로 주게만 되고, 지게만 되고, 타인의 주장대로만 느끼고 생각하고 움직이게 되면 점점 '미치게' 된다. 누구든 받아주는 데 한계가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은, 자신이 만족도를 높여가는 사이에 상대는 실제 미쳐 갈 수 있음을 눈치채야 한다.


그러므로 개인이든 집단이든 너무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하게 되는 건, 겉으론 자기가 유리하고 좋은 듯 하지만 아님을 알아채야 한다.


친구 간에, 연인 간에, 형제간에, 부부간에, 부모 자식 간에 한쪽 주장에만 치우침이 크면 클수록 나중엔 같이 죽는다. 집단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자기주장이 주로 먹히는 게 좋은 건 줄 알지만 결코 좋은 게 아니다.


왜냐하면 개인이든 집단이든 관계를 맺는 서로는 '완전히 분리된 둘'이 아니라 '극성이 둘인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 극성만 과도하게 살면 결국 전체는 부조화로 무너진다. 전체가 무너지면 그 안의 한 극성인 자신도 결국 같이 무너진다. 이걸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주장이 약한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항상 그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이 경우도 역시 전체가 무너지게 되고, 결국 각 극성들도 같이 무너진다. 그러므로 자기 성격이 그렇지 않더라도 필요할 때는 일부러 강하게 주장해 주는 게 의무이자 책임이다. 필요할 때 할 수 있도록 종종 연습 삼아서라도 해야 한다.


답은, 자기주장과 타인주장 모두를 잘 이용하는 것이다. 한 측의 것만 획일적으로 취하거나 포기하는 게 아니라 필요에 의해 능동적으로,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다. 내 주장이 필요할 땐 내 주장으로, 타인의 주장이 필요할 땐 타인 주장으로.(물론 이것도 무조건 그냥 되는 게 아니라 훈련과 능숙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자신의 주장이 아니며

나아가, 주장을 사용하는 존재이지

주장에 이용되는 존재가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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