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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Jul 08. 2016

모든 창작은 집단 창작이다

창작자는 그 표현의 대리인일 뿐

저는 기본적으로 책과 글은 작자 혼자 쓰는 게 아니라 독자들과 함께 쓰는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일종의 집단 창작인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작자는 그냥 '대리인'일 뿐입니다.(물론 책만이 아니라 모든 창작, 창의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예술, 과학, 기술, 학문, 철학, 이념 등등 인간의 영역 모두가)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어떤 느낌과 생각들에 대해 그것을 공통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다소 무의식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개인과 집단의 무의식 수준에서 막 형성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어느 임계치 이상이 되면 이제 서서히 그 표현의 출구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어떤 개인이 그 역할을 맡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다소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그 개인은, 마치 어느 날 문득 자기가 그런 생각을 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것을 쓰거나 만든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나중에 창작자에게 물어보면 "그냥 그게 나에게 왔어요"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만약 솔직하게 말한다면 말이죠.


이 관점에서는, 이것은 겸손이나 농담의 말이 아닙니다. '실제 그런 것'이죠. 그 개인은 마침 그 집단적 무의식, 바람, 욕구, 욕망 등이 분출될 만한 어떤 요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재능, 능력, 의지, 욕구 등이 가장 '그것'을 잘 표현할 조건화가 되어 있던 것이죠. 비유하자면, 거대한 물이 담긴 댐이 있었는데 어느 곳에 구멍이 나면서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강하게 분출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예로, 아이폰을 만들어 지금과 같은 모바일 세상을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스티브 잡스'는 인류가 집단무의식적으로 원하고 있는 강력한 '사회적(소셜) 연결 욕구'를 먼저 느낀 것입니다. 아니, 그 집단무의식적 바람이 잡스를 선택한 것입니다. 둘은 같은 현상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여하튼, 그래서 잡스에게는 그것을 실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또 그 실현 방법이 떠오르고, 그리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이루기 위해 기업과 사람들과 협력했던 것입니다. 많은 경우엔, 이런 상황에서 잡스 개인의 능력과 선견지명, 성취 의욕, 강력한 의지 등을 찬탄하곤 합니다. 물론 그런 측면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잡스 개인의 과업'이 아닙니다. 그 바탕이 되는 거대한 집단적 기반이 먼저 그리고 함께 있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이 절대적으로 맞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모델로 해석해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잡스만의 경우가 아니라, 인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들이 같은 기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웅은, 그 한 사람의 영웅성도 분명 있지만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다른 인간들의 보이고 보이지 않는 '바탕, 뒷받침, 함께 함'이 실제 존재한다는 것이죠. 메타포가 아니라 실제로 말입니다. 


붓다, 예수, 노자, 공자, 칸트,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비틀즈... 수많은 이들이 대리자, 표현자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서로서로 하고 있구요. 그리고 꼭 특정한 이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요소가 갖추어지면 어떤 경우의 대리인, 표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규모의 크고 작음은 있겠지만 사실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구성 요소로서의 역할과 중요도는 모두 같으니까요. A가 하지 않으면 비슷한 조건이나 능력을 가진 B나 C가 하게 됩니다.


그렇게 누군가 대표로 혹은 대리인으로 그 집단무의식적 바람을 물현화, 구체화시켜 놓으면 이제 모두가 함께 감상하고, 느끼고, 누리고, 즐기고, 향유하는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그 집단 창작에 참가했던 이들과 참가하지 않았던 이들 모두 말이지요. 사실 인류라면 모두가 그 창작물의 '참가자'라고 해도 됩니다. 다만 각자 조금 더 관심과 에너지를 많이 준 경우와 아닌 경우의 차이만 있다 할 수 있지요. 


물론 창작자의 개인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건 아닙니다. 사실 개인성, 집단성이란 구분도 하나의 설정이지 둘 중 어느 것도 현상을 표현하는 데 절대적이거나 전부는 아니니까요. 두 특성을 모두 고려하면서, 동시에 포함하면서, 동시에 넘어서는 것이겠습니다.


또한 해당 개인은, 자신의 개체성과 개아성을 그 집단적 창작의 표현에 잘 이용하되 개체성과 개아성으로의 과도한 몰입이나 치우침이 그것을 왜곡하거나 가리지 않도록 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게 심할수록 창작의 집단성 혹은 정확성은 그 수준이 떨어질 것입니다. 


때로 시대나 문화, 문명을 많이 앞서는 창작물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집단적 창작의 결과물인데, 이런 경우는 그 깊이가 아주 깊은 것입니다. 표면적 의식층으로 올라오기에는 한참 전의, 심연의 것. 하지만 강력한. 그런 것을 예민하게 느끼고 표현하는 개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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