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여러 석학들이 인류 현 문명의 남아 있는 수명을 50년 정도로 잡는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물론 그들의 견해이겠지만 현재 지구촌이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가능성이 없지만도 않은 듯 하다. 만약 이들의 예측대로 50년 정도 후에 인류가 몰락 한다면, 그 이유는 다음 4가지 어리석음 때문일 것이다.
첫째, 지구의 거의 모든 부와 권력을 절대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극소수 최상위층의 어리석음.
둘째, 적당한(하지만 비교적 큰) 부와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소수 차상위층(최상위층 아래)의 어리석음.
셋째, 적당히 먹고 살 만할 정도의 상태에 있는 다수 중간층의 어리석음.
넷째, 먹고 살기도 빠듯하거나 아주 힘든 최다수 하위층의 어리석음.
첫째, 지구의 거의 모든 부와 권력을 절대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극소수 최상위층의 어리석음
- 이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조절하고 있다고 여긴다. 실제 그런 측면도 있다. 또한 자신들이 이미 지닌 부와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혹은 더 키우는데 모든 삶의 관심과 노력이 집중되어 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행할 것인가가 관건이지, 다른 다수의 인류의 안녕, 행복, 복지는 이들의 관심사도 목적도 아니다. 어떻게 기존의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거나 더 자신들을 위해 바꿀 것인가가 유일한 관심사이다. 다수 대중도 그것을 위한 도구로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암세포'가 결국 자신만 살기위해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몸체'를 죽여버리는 것과 같이 이들의 욕구와 행동은 결국 자신들을 포함한 인류 전체를 죽이게 될 것이다. 결국 지구도 죽인다.
그러나 이들도, 자신들이 속한 부와 권력의 거대함 속에서 그리고 그 비슷한 조건을 지닌 인간의 무리들 속에서 결국은 모든 인간이 가질 수 밖에 없는 공통된 갈등, 그리고 나름의 고통과 불만족과 불안감을 지닌 채 살다 죽는 입장인 것은 다른 층의 인류와 똑같다. 단지 가진 재력과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이 많을 뿐 똑같은 인간이라는 말이다.
이들도 인간 공통의 근본적인 함정, 한계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는 것은 동일하다. 설사 줄기세포, 나노 기술 등의 과학 기술이 발달해서 기술적으로 영생이 가능하게 된다고 해도, 그와 별도로 인간으로서 가지는 욕망, 분노, 감정, 어리석음의 경험을 여전히 경험하며 고통을 겪을 것이다. 항성과 항성 사이, 은하계와 은하계 사이의 우주를 여행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둘째, 적당한(하지만 비교적 큰) 부와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소수 차상위층(최상위층 아래)의 어리석음
- 이들은, 자신들의 수준 위의 부와 권력층들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보고 욕망한다. 그래서 한 개인, 한 가족의 기준으로 보면 이미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부를 누리고도 남을 것이지만 자기 위에 보이는 '좀 더 큰 부와 권력'을 향한 그 '마음의 갈망과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지금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가질 수 있는가가 가장 최고의 관심사이자 삶의 목적이다. 부와 권력을 향한 중독이다. 더 많이 가질 수록 더 많이 가지려 한다.
10억을 가진 이는 100억을 가지고 싶어하고, 1000억을 가진 이는 수 조원을 가지고 싶어 한다. 끝이 없는 무저갱이다. 결국 첫째 층 무리의 아류로서, 현재의 부조리를 더 심화 시키고 그들이 원하는 질서와 흐름을 만드는데 크게 일조하며 이용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도, 자신들이 속한 부와 권력의 환경 속에서 그리고 그 비슷한 조건을 지닌 인간의 무리들 속에서 결국은 모든 인간이 가질 수 밖에 없는 공통된 갈등과 고통, 그리고 나름의 불만족과 불안감을 지닌 채 살다 죽는 건 똑같다.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들도 인간 공통의 근본적인 함정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는 것은 동일하다.
셋째, 적당히 먹고 살 만할 정도의 상태에 있는 '다수 중간층'의 어리석음
- 이들은, 그 어느 정도 확보한 '적당히 안정적으로 먹고 살만함'의 감옥에 갇힌다. 왜냐하면, 그것을 달성하기도 어려웠지만 이제 그것을 유지해 살아가는 것도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첫째와 둘째 무리가 계속 사회를 그렇게 만들어 가기도 하지만, 셋째 무리가 스스로의 만들어 가기도 한다. 이들은, 사회 구조적 문제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일단 자기 개체의 생존과 가족들의 현상 유지라는 이 과제를 해결하기에 버겁게 된다. 첫째, 둘째 무리들이 만든 거대한 구조 속에서, 그 거대한 톱니바퀴들의 시스템 속에서 튕겨져 나오거나 분리되어 버려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한다.
이들의 숫자는, 만약 서로 뭉치기로 한다면 세상을 능히 바꿀 수 있을 정도의 다수이지만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임하고 있는 '각개 전투'와, 일부의 '집단 전투'에 강하게 붙잡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잘못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런 인간의 한계일 뿐이다.
이들도 인간 공통의 근본적인 함정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는 것은 동일하다.
넷째, 먹고 살기도 빠듯하거나 아주 힘든 '최다수 하위층'의 어리석음
- 인류 구성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을 이들은, 삶에서 다른 생각이나 목적을 가질 물리적(시간과 공간) 여유가 거의 없다.
이들의 삶의 고통은 이들 개인의 책임 이전에 사회와 사회 구조적 문제의 1차적 요인에 대부분 기인한다. 다수를 차지하는 셋째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이 넷째 무리의 사람들은 첫째, 둘째 무리가 행하는 의도적인 여러 조정에 의해 여러가지 삶의 요소들이 좌우된다. 물질적 측면만이 아니라 정신, 심리적 측면도 그렇다.
또한 인류가 오랜 세월을 투쟁해서 쟁취한 비교적 투명한 '선거, 투표 제도'에 의해 제대로 자신들을 위해 일해 줄 정치인이나 세력들만 선출해도 해결될 수 있는 역사적 환경을 획득했지만, 여전히 그 '반대의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왠만큼 선택을 잘 해도, 결국 그 선택된 세력들에게 배신을 당하곤 한다. 왜냐하면 첫째와 둘째 무리의 '카르텔'이 이미 시스템적으로 너무나 곤고해져서 그런 시스템을 깬 일부 현명한 몇몇 국가들를 제외하고는 그것을 깰 수 있는 세력의 구축과 그 실천이 결코 쉽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제는 한 국가나 사회의 그러한 세력들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지배력을 확장시킨 극소수 첫째(둘째) 무리들 전체들의 영향이 거의 모든 사회, 국가에 그물처럼 드리워진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이들이 선거와 투표에서 선택한 세력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경우보다는, 애초에 '잘못된 선택(첫째와 둘째 무리들을 위하는 세력을 선택하면서 자신들을 위한 선택을 한다는 오판)'을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선거와 투표의 기회마저 없는 사회와 국가들도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
이들도 인간 공통의 근본적인 함정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는 것은 동일하다
결국 인류의 자멸은, 비록 그 책임의 크기에서는 상대적 차이가 있겠지만 특정 무리들만이 아니라 현 문명을 구성하고 있는 인류층 모두의 어리석음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리라.
모두가 함께 지닌 인류 공통의 근본적 어리석음과 각 층마다 지닌 자신들 고유의 상대적 어리석음이 있다. 이 두 가지 어리석음에서 모두 자유로워지는 게 필요하겠다.